17. 차가운 겨울 하늘 아래에서
다음날 점심시간, 츠구미는 혼자 옥상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이른바 혼밥니다.
옥상은 다른 학생들에게도 개방되어 있는데, 이 12월 중순의 추위에서는 옥상에 올라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평상시에는 빵 같은걸 구매해 교실에서 먹겠지만, 오늘은 교실에 있을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오늘은 치도리가 도시락을 싸줬기 때문이다. 동아리 활동의 아침연습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몫을 만드는 김에 츠구미의 몫도 만들어 준 것이다.
치도리가 속한 검도부는 전국대회의 단골이었고, 그만큼 훈련도 가혹하다. 부장이자 에이스인 치도리 역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원래라면 아무런 동아리활동에 들지 않은 츠구미가 도시락을 만드는 게 순리겠지만, 솔직히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고역이다. 그런 점이 주위로부터 「못난 동생」이라 칭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추워."
젓가락을 든 손이 덜덜 떨린다. 왠지 날씨도 좋지 않고, 눈이 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츠구미도 실은 난방이 잘 된 교실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츠구미의 반 애들에게 치도리의 도시락 같은걸 보여주면, 분명 쌀알 하나 남지 않을 것이다. 빠짐없이 서로 빼앗을게 분명해.
치도리도, 모처럼 만든게 츠구미의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는걸 알게 된다면 슬퍼할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무리를 해 옥상으로 온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추위때문에 맛을 느끼지 못하겠다. 이럴 줄 알았다면 스즈네 선생님에게 이유를 밝히고 빈교실을 빌렸으면 좋았을텐데.
"……잘 먹었습니다."
그렇게 말함, 츠구미는 양 손을 맞댄다. 하아, 하고 하얀 숨을 내쉬는 것 만으로도 체온을 빼앗기는 것 같다. 너무 추워서 빨리 교실로 돌아가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츠구미는 도시락 상자를 치우고 일어서려고 했다. ――만, 그럴 수 없었다.
"이렇게 추운데 혼자서 뭐 하고 있어?"
――그 목소리의 임자는, 배후에서 츠구미의 등을 오르듯 껴안았다.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등에 퍼진다.
"우와, 위험. ――갑자기 뭘 하는 거에요, 메부키 선배."
발을 헛디디며, 그런데도 간신히 넘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문다. 사람 한 명을 태운 채 쓰러지다니, 가혹한 결과밖에 보이지 않는다. 주로 츠구미만.
"에헤헤. 츠구미 군이 옥상에서 외롭게 있는게 보였으니까, 나도모르게 그만!"
"별로 외롭지 않은데요…… 사람을 고독한 녀석마냥 말하지 말아주시겠어요?"
그렇게 대답하면서, 신중하게 등에서 내려보내려 했지만, 메부키는 전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츠구미는 포기하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무리 가벼운 여성이라고 해도, 계속 업고 있는것은 힘들다.
"그래그래, 젊은이는 포기가 중요하다구? 그건 그렇다 치고 츠구미 군은 몸이 아주 차가워져있네. 이대로 당분간 내가 따뜻하게 해 줄게!"
"에, 감사합니다?"
"뭐야, 그 반응은? 젊디젊은 여자가 껴안아 주고 있으니 좀 더 기뻐하라구."
그런 말을 들어도 반응하기 곤란하다. 츠구미를 놀리는것이겠지만, 솔직히 두근거리고 있으므로 빨리 그만두어 줬으면 한다.
"흠 흠. 과연, 오늘은 치도리의 도시락이었구나. 그래서 교실에서 여기로 피난해 온 거구나."
"어째서 설명하지 않았는데 전부 알 수 있는건가요……이래서 천재는."
메부키는 츠구미가 손에 든 도시락통만 보고, 지금 상황을 완벽하게 알아맞혔다. 매번 그렇지만, 명탐정 같은 사람이다.
이런 상태지만, 그녀는 전국 모의시험 한자릿 수 단골이다. 단순히, 머리 회전이 다른 사람들보다 빠를 것이다.
츠구미가 그렇게 말하고 한숨을 내쉬자, 메부키는 일어나서 츠구미의 앞에서 돌았다. 그녀가 입고 있는 빨간 코트가 따뜻해 보여서 조금 부럽다.
"그게 나니까! 좀 더 칭찬을 해도 좋아!"
살짝 그녀의 긴 금발이 바람으로 인해 흩날린다. 태양을 등에 업고 환하게 웃는 그 모습은, 마치 천사 같아 약간 넋을 잃었다. 그녀는 회색빛의 유리알 안경으로 카츄사 대신 앞머리를 위로 올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눈동자가 잘 보였다.
깊은 녹색을 한, 아름다운 광채. 그 모습은 어딘가 이국정서를 느끼게 해, 보기만 해도 외국의 피가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메부키 케이는 영국과의 쿼터이다. 외할머니가 영국인이었던 것 같다. 모친은 아시아 계의 생김새였는데, 격세 유전으로 그녀 혼자만이 이러한 색채로 태어났다고 한다.
옛날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일본은 그녀같은 모습을 한 사람은 조금 살기가 어렵다. 쇄국 상태가 된 지 3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외국에 대한 악감정은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있다.
츠구미가 알고 있는 메부키 선배는, 늘 이렇게 사람을 놀리는 듯 웃는 모습이 대부분이지만, 분명 모르는 곳에서 고생도 많이 했을 것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그녀 같은 용모를 기피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지만, 츠구미는 마치 훌륭한 인형 같아서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뭐 이것은 연애적인 의미가 아니라, 예술로서의 견해가 강하지만.
"그러고 보니, 꽤 인기가 있는거 같던데. 너를 쏙 빼닮은 마법소녀 짱."
"……위 학년까지 퍼졌나요, 그거. 저로서는 민폐라구요."
츠구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낯선 하급생으로부터 「혹시 하가쿠레 사쿠라 씨의 오빠인가요?」라고 들은 것이다. 확실히 실손이 나오고 있다.
"인터넷 게시판에도 꽤 정보가 올라오고 있어. 나도 가끔 보지만, 그 아이는 좋겠네. 인기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어."
"왠지 아주 복잡한 심경입니다만……"
인터넷 게시판. 여러가지로 제멋대로 쓰여져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우울해진다. 하지만, 있다고 하면 신경이 쓰이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돌아가면 한번 보자, 하고 츠구미는 몰래 결심했다.
츠구미가 험악한 얼굴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메부키는 킥킥 웃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상태를 보아하니 정말로 관계가 없는 것 같네. 하지만 그렇게까지 닮았으니, 혈연을 의심해볼만 하기도 해. 정말로, 너와 치도리의 친척은 어디에 있는걸지도 모르지? 이참에 정부를 경유해 접촉해 보는 게 어때?"
메부키는 타이르듯 츠구미에게 말했다. 아마 츠구미와 치도리를 걱정해서 말 해 주는 것일 것이다.
츠구미들에게 친척이 없다는 것은, 친한 사람이면 누구라도 알고있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쓸데없는 참견을 하고 싶어지는 것도 안다. 여하튼, 메부키는 츠구미도 치도리도 잘 알고 있다.
――애초에, 메부키와 츠구미의 관계는 치도리를 경유해 생긴 것이다.
검도부의 전 부장과, 그 후배 치도리. 치도리에게 부탁받아 운반하는 것을 도와주는 등 부실에 실례하는 사이에, 왠지 마음에 들어 버린 것이다.
그런 관계이긴 하지만, 이렇게 신경을 써 주는 것은 정말로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접촉이고 뭐고, 하가쿠레 사쿠라는 츠구미 자신이다. 그런건 그냥 매치 펌프일 뿐이다.
츠구미는 미안하게 생각하면서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연락을 한다고 해도, 사기로 오해받을 뿐이에요. 유명해지면 자칭 친척이 늘어난다고 하잖아요. ……게다가, 제게는 치도리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뒷부분은 츠구미에게 있어서도 본심이다. 설령 하가쿠레 사쿠라가 실재하고 있다 해도, 츠구미는 연락을 하고 싶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조차 기억하고 있지 않은데, 이제 와서 피가 이어진 친척이 나온들 무슨 상관인가.
"흐응. 치도리에게도 비슷한 소리를 들었어. 하지만, 그 애는 확인하는 것이 무서운 느낌이었지만. 뭐, 너희들이 그걸로 좋다면 나는 좋아."
메부키는 그렇게 말하고, 츠구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츠구미의 얼굴을 아래에서 들여다보듯이 미소를 지었다.
"나도 진로가 정해져 여유가 생겼으니까. 귀여운 후배의 뒷바라지를 하고 싶었어."
"아아, 벌써 추천이 결정됐나요? 축하드려요."
"응. 반년 전에 낸 논문이 평가를 받은거 같아서, 꼭 자신들에게 와 달라고 열렬한 제의가 있어서. 실은 이미 연구실까지 준비되어 있어. 굉장하지?"
메부키는 자랑스러운 듯 가슴을 폈다. 입학 전부터 연구실이 마련되다니, 상당히 좋은 대우 아닌가.
그렇다고는 해도, 논문이라. 하는 일의 스케일이 너무 달라서 질투할 마음도 들지 않는다.
"무엇에 대한 논문을 썼어요? 연구실이 생긴다는 건 이과계열 같은데요."
츠구미가 묻자, 메부키는 잘 물어봤어! 라고 말하듯 입을 열었다.
"그건말야, 【아티팩트】의 운용에 관한거야. 몇년전에 가족의 연줄로 작은 마핵이 손에 들어와서. 시간을 두고 검증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실용할 수 있는 수준의 이론을 발견했어. 이권의 문제도 있기 때문에 전부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실장되면 마법소녀들의 싸움은 비약적으로 편해질거야!"
메부키는 그렇게 소리높여 말했다. 치도리는, 단지 아연실색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 아닌가.
"마법소녀가 사용한다는 건, 혹시 그건 결계의 내부로 반입할 수 있단 건가요? 굉장하네요. 지금까지 칼 한 자루 정도밖에 반입할 수 없었는데, 그것이 가능해지면 상식이 바뀌는거잖아요. 그런 공적이라면, 국민영예상도 바로 받을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어떤 도구를 반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샷건 하나라도 있으면 E급의 마수와 충분히 싸울 수 있을 것이다. 【스킬】에 익숙하지 않은 마법소녀의 사망률도 뚝 떨어질 것이다.
"그치 그치! 나도 이렇게 생겼지만 이 나라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이 쓸데없이 좋은 머리를 가지고서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어. 이야, 지난번 정부에서 마법소녀 후보생에 응모했을 때는 『적성 없음』이라고 했을 땐 절망했지만, 주저앉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서 다행이야."
에헤헤, 하고 기쁜 듯이 웃으며 메부키는 쑥스러운 듯 볼을 붉혔다.
――그런 그녀가, 츠구미에게는 매우 눈부셔 보였다.
츠구미는 아무것도 몰랐다. 이 언제나 마음이 편해보이는 선배가, 이렇게나 가슴에 뜨거운 것을 품고 있었다니.
가슴이 찡 하고, 말로 할 수 없는 감정이 넘친다. 아아, 굉장히 부럽다.
"……선배는 멋지네요. 저하고는 크게 다르게."
"뭐야, 갑자기. 너답지 않게."
자조하는 츠구미에게, 메부키가 신기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이런 것은 평소의 츠구미답지 않다. 조금은, 그녀의 열의에 받쳐버린 것 같다.
"――메부키 선배는, 이런 저라도 언젠가, 선배처럼 누군가의 도움이 되는 인간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엉뚱한 일로 마법소녀가 된 탓에 착각을 하고 있었지만, 츠구미는 원래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노력하는 선량한 인간은 아니다.
츠구미는 지금까지, 그다지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왔다.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아는 사람뿐. 그 이외의 불행은, 쭉 못 본 체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왠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분명 츠구미는, 자기희생의 덩어리같은 영웅은 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그렇게 생각한다.
"――너라면 될 수 있어. 내가 보장할게."
그 소리에, 번쩍 고개를 든다. 그녀는, 매우 다정한 눈으로 츠구미를 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츠구미의 말을 무엇 하나 의심하지 않고 긍정해 주고 있는 것 같아서, 왠지 마음이 근질근질하다.
츠구미는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잠시 망설이며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도 싸구려처럼 들릴것만 같았다.
그래서 츠구미는, 슬며시 두 손을 메부키에게 내밀었다.
"우앗, 뭘 하는거야!"
개를 어루만지듯 그녀의 부드러운 금실 머리를 휘젓는다. 지금은, 아직 얼굴을 보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분명 츠구미의 뺨은 빨개져 있을테니.
"――진짜, 머리카락이 엉망이 됐잖아."
"평소와 다르지 않는데요."
"달라! 이래서 츠구미는 안되는거야. 좀 더 여성의 사정에 민감하지 않으면 인기 없을거야!"
"윽…"
마음에 확 와닿았다. 그 언어폭력은 츠구미에게 효과가 굉장하니 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침울해하는 츠구미를 보고 만족한 듯, 메부키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오늘은 이쯤에서 용서해 줄게. 난 마음이 넓으니까. ――아아, 그리고 다음주 여행인데, 츠구미 군이 티켓을 준비해줬다며? 치도리가 내게 권해준건 기쁘긴 한데, 남매 둘이서 안가도 괜찮겠어?"
그렇게 말하며, 메부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츠구미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해, 골똘히 생각했다.
――혹시, 유티카타에게 받은 투어 티켓을 말하고 있는 걸까?
주륵, 하고 식은땀이 흐른다. 설마 치도리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메부키를 여행에 권유한걸까.
아니, 백보 양보해서 그녀에게 권하는 것 자체는 별로 상관없다. 메부키와 치도리는 동아리활동 이외에도 사이가 좋고, 부장이 된 것으로 상담하고 싶은 일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키타카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확실히 메부키와 유키타카는 견원지간이다. 그 티켓이 유키타카에게 받은 것인걸 알았다면, 메부키는 분명 여행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설마 이야기하지 않았을 줄은……
그리고 츠구미는 자신의 양심과 치도리의 심정을 저울질해, 이대로 잠자코 있는 것을 택했다. 침묵이 금이다라는 말도 있다.
유키타카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번만큼은 눈감아 주었으면 한다.
"……저는 신경쓰지 마세요. 음, 즐기고 오세요."
"아아! 선물 기대하고 있어!"
애매하게 웃는 츠구미에게, 메부키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왠지 속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슬슬 교실로 돌아가죠."
츠구미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옥상에 있어서, 몸은 완전히 차가워져 있다. 가는 길에 자판기에서 따뜻한 차라도 사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렇구나. 츠구미 군도 제대로 공부에 힘쓰는구나. 그럼 이만!"
그렇게 말하고 메부키는 옥상에서 나갔다. 정말로 기운넘치는 사람이다.
――그건 그렇고, 벌써 다음주가 여행인가. 이 시기의 하코네는 매우 춥다는 것 같다. 치도리는 온천이나 신사를 다닌다고 했는데,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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