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기억의 잔재
츠구미가 휘청거리며 침대로 돌아와, 머리를 감싸고 있자, 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추운 듯이 입가의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치도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 깨어났구나. 갈아입을옷을 가져왔는데, 이거면 돼?"
발그스름하게 볼을 붉힌 채, 치도리가 옷――주로 속옷이 들어있는 손가방을 추구미에게 건냈다.
그것을 받으면서, 츠구미는 미묘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감사의 말을 했다. 평상시에는 옷 세탁 등은 따로따로 하고 있으므로, 아무리 남매라고 해도 이렇게 속옷을 보이는 건 조금 부끄럽다.
"응, 괜찮아. 일부러 고마워."
"신경 쓰지마. ――아직 안색이 안좋아 보이는데, 괜찮아? 더 쉬어야 하는거 아냐?"
"문제 없어. 오히려 너무 많이 자서 몸이 뻐근할 정도라고."
츠구미가 익살스레 말하자, 치도리는 안심한 듯 웃었다.
"츠구미가 일주일이나 입원하는건 외롭지만, 제대로 몸이 나아야지. ……정말로, 츠구미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야."
"치도리……"
――눈 앞에서 가족이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그게 얼마나 두려웠을까. 만약 츠구미가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몸이 떨린다.
츠구미는 살며시 그녀의 오른손을 잡았다. 치도리의 손에 있는 굳은 살은, 마치 그녀의 지금까지의 노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약간 버석거리는 그 손이, 츠구미에게는 무엇보다도 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걱정을 끼쳐서 정말 미안. ……하지만 난, 아마 치도리에게 위험이 닥치면 또 같은 일을 할지도 몰라."
바쁜 치도리에게 너무 걱정을 끼칠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일은 츠구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전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몇번이나 마음속에서 반복해 온 말을, 자신에게 타이르듯이 들려주었다.
"나는 치도리를 잃는 것이 무엇보다도 무서워. ――왜냐면, 치도리는 나의 유일한 가족이니까."
츠구미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치도리의 눈동자가 부자연스럽게 흔들린 것 같았다. 그리고 치도리는, 얼버무리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번 건은 정부의 시스템 불량이었던거지? 저렇게 말려드는 일은 또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어떠려나……"
벨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 라돈은 하코네의 땅에 남아있는 신화 전승을 바탕으로 나타난 존재라고 했다.
본래라면 자랑할 일이지만, 이 일본에는 괴물, 신화 전승은 그야말로 산처럼 많다. 라돈이라는 전제가 있는 이상, 향후에도 예측 시스템으로 파악할 수 없는 마수가 출현하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렇게 되면 거리의 피해도 지금보다 늘어날 것이다.
지금은 아직 검증중이겠지만, 확증만 있다면 그 사실은 민간에게도 발표될 것이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다소의 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보다 마수에게 사람이 해를 입을 확률이 높아지면, 치도리가 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온종일 그녀를 지켜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츠구미는 치도리를 위해서라면 강대한 적에게라도, 거의 없는 용기를 가지고 분발할 수 있는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치도리를 잃는 것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하고 있다. 치도리라는 정신적 지주가 없어지면, 츠구미는 자신이 어떤 식으로 변할지 전혀 상상할 수 없다.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
……그것은 가족애라기보다는, 의존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도 가능한 한 무리하지는 않게 조심하겠지만, 치도리도 이제부터는 지금보다 더 주의하길 바라."
그렇게 말하고 기도하듯이 눈을 감은 츠구미의 머리에, 탁 하고 뭔가가 부딪힌다――그것은 치도리의 머리였다. 치도리는 비어있던 왼손으로 츠구미의 손을 잡고,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서, 치도리가 말했다.
"괜찮아. ――나는 츠구미의 곁에서 없어지거나 하지 않으니까. 무슨일이 었어도, 옆에 있을거야."
"……그건 조금 심할지도."
"에엣, 츠구미가 처음에 그렇게 열렬히 말해왔는데? 그건 좀 너무힌거 아냐?"
"하하, 농담이야. 기뻐――고마워."
"진짜, 깜짝 놀랐잖아!"
그렇게 말하며, 둘이서 얼굴을 마주보고 키득거리며 웃었다.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이런 일이 전에도 있었던 것 같았다. 어릴적, 무서운 꿈을 꾸고 벌떡 일어났을때 달려와 준 누나. 그 사람은 울고있는 츠구미를 상냥한 얼굴로 위로해 주었――
――욱신, 하고 머리와 가슴이 아파온다. 살짝 시야가 한순간 흔들렸다.
……지금 무언가를 생각해 낸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기분탓이었을까?
"……그러고 보니, 아까 메부키 선배가 이상한 말을 했었어."
치도리의 손을 놓으며, 한숨 돌린 츠구미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래――마치 우스운 이야기라도 하듯이.
"『과거를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너희들은 서로를 남매라고 판단하는거야?』라고 말야. 이상한 걸 물어본다니까, 선배도. ……치도리? 왜 그래?"
"아,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좀 잠이 부족한 거 같아서."
기분탓인지 표정이 어두워보이는 치도리는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쓰러진 츠구미가 걱정돼 잠을 설쳤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죄책감이 조금 고개를 내민다.
딱히 라돈과 싸운 것을 후회하는건 아니지만, 치도리에게 이런 얼굴을 시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말아줘. 치도리가 건강한 것이 내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 게다가 이 이상 치도리에게 폐를 끼친다면, 또 검도부의 후배에게 불려갈테니……"
그 떄 일을 떠올리며, 츠구미는 쓴웃움을 지었다. 올 해 7월경――츠구미가 벨과 만나기 조금 전의 이야기이다.
치도리가 츠구미를 필요 이상으로 돌보는 것을 안 그녀의 동아리 후배들이, 「선배의 손을 귀찮게 하지 마세요!」 라고 교사 뒤에서 츠구미에게 직접 이야기 해 온 것이다. 그 자리에 갑자기 나타난 메부키가 폭소하면서 수습해 주었지만, 츠구미의 마음의 상처는 비교적 깊었다. 순간 고백이라고 생각했던 츠구미의 순정을 돌려줬으면 했다.
츠구미가 그렇게 말하자, 치도리는 뺨을 붉히며 입을 삐죽거렸다.
"그 애들에게는 제대로 말했으니까. ……게다가, 나는 민폐라고 생각 안해."
"일단 나도 대충은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까지 신경쓰지 않아줘도 된다고? 뭐하면 치도리가 바쁜 만큼, 집안일 할당같은것도 내 쪽으로 더 줘도 되고."
"진짜, 그런 건 지금처럼대로가 좋아. 왜냐면 동아리 활동은 내가 좋아서 하는거니까, 그런걸로 츠구미에게 의지하면 불공평하잖아?"
"그런가? 딱히 치도리가 좋다면 그걸로 좋지만."
납득이 가지는 않았지만, 츠구미는 떫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도리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치도리는, 잠깐동안 이야기를 한 뒤에 이별이 섭섭한 듯 츠구미의 병실을 나섰다. 그 등을 배웅하면서, 츠구미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저 상태라면, 치도리는 츠구미의 변화를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있다, 라고 할까 눈치채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츠구미 역시 메부키에게 듣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달라졌다고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레벨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츠구미는 아까부터 느끼고 있던 낌새의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벨 님은 어떻게 생각해?"
"뭐야, 눈치채고 있었나."
"뭐, 왠지 모르게."
병원에서 눈이 떴을 때부터, 뭔가 감각이 예민해져 있는 것 같다. 아무도 없을텐데, 낌새를 느낄 때가 가끔 있는 것이다. 여기가 병원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깊게 생각하면 조금 두렵다.
자신의 얼굴을 살짝 쓰다듬으면서, 침통한 표정으로 벨에게 물었다.
"저기말야, 내 몸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몸의 손상은 차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싸워서 다치는 것은 아직 괜찮다. 그만한 각오는 되어있다. 하지만, 이것만은 이야기가 다르다.
……혹시 이대로 완만하게 여자의 몸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후유증이라면, 츠구미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데미지가 클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수와 싸우는 것과는 다른 방향의 무서움을 느끼고 만다.
"결계를 풀 때, 라돈전에서의 부상은 문제없이 나았다. 당신이 쓰러진 것은, 급격한 치유를 몸이 견디지 못하고, 영혼의 상처가 시간차로 반영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기엔 경증이긴 하지만."
"지금은 어때?"
"그것을 지금부터 조사한다. ――네녀석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두 번 다시 그 방법을 쓰는 것은 허가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어째선지 경증으로 끝난 것 같지만, 다음엔 확실히 죽는다. 그것도, 참혹한 꼴로."
"……명심할게."
벨은 츠구미를 응시하든 노려보고는,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쉰다. 아무래도 아직 의심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츠구미 역시, 그런 짓은 가능한 한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잠시 무언의 교환을 계속하자, 벨은 불만에 코를 킁킁거렸다. 아무래도 더 이상의 추궁은 포기한 것 같다.
가볍게 츠구미의 눈 앞에 온 벨은, 허공에서 보석이 새겨진 오페라 글라스 같은 것을 꺼냈다.
"이것은 어떤 신으로부터 빼앗아――으음, 빌려온 영혼의 모습을 보는 도구다. 이걸 통해 보면 네 상태도 대충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벨은, 오페라 글라스의 시커먼 렌즈를 통해 츠구미를 보았다. 섬뜩, 하고 기묘한 감각이 몸을 시쳤다. 마치 피부의 민감한 부위를 간질이는 듯 한 기분이다.
복잡한 얼굴을 하고, 벨은 언짢은 듯 입을 열었다.
"흠. ……흥, 확실히 말하지. 네녀석의 영혼은 틀림없이 결여되어 있다. 원상태로 돌아갈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만, 그것을 보충하고도 남을 만큼의 무언가가 네녀석의 영혼을 덮고 있다. 이것은 본래,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는 형상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어떤 가호라도 받은거냐?"
매우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벨은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츠구미가 어떤 존재에게 간섭받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츠구미는, 가호라고 말을 들어도 짐작되는건――
"……아, 그 여자애."
"짐작되는 것이 있나?"
"짐작이라고 할까, 꿈 속 이야기인데――"
그리고 츠구미는, 쓰러지기 전에 꾼 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벨은 츠구미의 이야기를 다 듣고, 생각에 잠기듯 팔짱을 꼈다.
"과연. 그 꿈도, 아마 이번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네녀석에게는 무당의 적성이 있다. 꿈 건너편에 가까운 것이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아. ――게다가, 지금 네녀석에게 달라붙어있는 그 무언가는 음기가 강하다. 원래 음양중 음은 여자를 가리킨다. 육체는 기본적으로 영혼에 따라 복구되기 때문에, 네녀석의 얼굴이 다소 여자에 가까워진 것은 그것이 원인일 것이다."
"즉 나의 부족한 영혼은, 그 여자의 영혼으로 보완됐다는 거야? 그리고 보완된 만큼, 몸이 회복될 때 여성으로서 치유가 되어버렸다. ……저기, 어째서 내가 그렇게 되는거야?"
"내가 알거라고 생각하는게냐?"
"그렇겠지……"
츠구미는 욱식욱신 쑤시는 머리를 누르면서, 괴로운 듯이 신음했다. 자기자신의 일인데,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겠다. 애초에, 그 여자는 대체 뭐야.
"영혼의 형질을 보는 한, 그 무언가에는 명확한 의사는 없어 보인다. 만약 침식이 진행되었다 해도, 인격을 빼앗길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은 것 같군."
"……그런 걱정까지 해야되는거야? 용서해줘."
"하지만, 이 상태로 보아 이 무언가가 네녀석에게 붙은 것은 최근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군. 그야말로 수년, 아니 이 상태로 보면 10년은 확실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빨리 익숙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실제로 별다른 거부반응도 없이 지내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10년, 인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츠구미는 희미한 위화감이 남는 왼쪽 눈을 만졌다. 라돈과 싸웠던 그 때――츠구미의 왼쪽 눈에는, 불가사의한 것이 담겨 있었다. 라돈의 온몸에 휘감겨, 요란하게 타오르는 붉은 실. 그 실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움직이면, 너무도 간단하게 라돈은 잘려나갔다.
그 광경을 보고 떠올랐던 것은, 역시 10년 전의 대재해이다. ……어렴풋이 눈치채고는 있었지만, 츠구미가 잃어버린 과거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슬슬 마주보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온 걸까."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잊고 있는 편이 행복해, 라고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제 도망만 갈 수는 없다.
――우선은, 한 걸음만 앞으로 나아가 볼까.
츠구미는 벨 쪽을 향해, 무언가를 결의한 듯 꾹 작게 주먹을 쥐었다.
"그러고보니, 계속 벨 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어."
"뭐냐, 말해봐라."
츠구미의 말에, 벨은 불손하게 그렇게 대답했다. 언제나와 같은 태도에 쓴웃음을 지으며, 츠구미는 입을 열었다.
"――벨 님의 이름, 슬슬 가르쳐 줘. 자신의 신의 이름도 모르는 건, 볼품 없잖아?"
갑작스런 말에, 벨은 멍한 얼굴을 하고 눈을 깜빡였다. 그 조금 멍청해보이는 모습에 츠구미는 웃었다.
――이 상냥하고 완고하지 않은, 거만하고 유쾌한 신을, 츠구미는 정말로 좋아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비록 이 자리에 숨어있는 또 다른 신에게, 나중에 『그 때의 넌 마치, 각인된 어린 새와 같았다』라고 비난을 받더라도, 분명 그 마음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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