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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번역/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1장 26. - 하얀 방의 소녀

by 린멜 2019. 9. 2.


26. 하얀 방의 소녀





새하얀 방 안에, 소녀가 인형을 껴안고 울고있다. 소녀의 얼굴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잘 보이지 않는다. 그 팔 속의 인형은 손발이 하나씩 빠져 없었다.


소녀는 열심히 없는 부분을 고치려 하지만, 빠진 팔과 다리의 파츠를 찾지 못하는 한,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왜 저 인형은 저런 심한 상태가 되어버렸을까. 츠구미는 뭔가를 잊은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머리가 멍한 탓에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츠구미가 소녀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침내 소녀는 무언가를 결의한 것처럼 눈을 감았다.




――암전




――새하얀 방 안에서, 소녀가 인형을 들고 웃고있다. 인형의 손발은 깨끗하게 고쳐져, 마치 신품처럼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신경쓰이는 점이 하나 있다. 소녀의 몸이 한층 작아진 것이다. 원래 열 살 정도였던 그 몸은, 이제 일곱 살 정도의 체구가 되어 버렸다.


츠구미는 그걸 보고, 왠지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만. 부탁할테니까 그만둬!! ――어째서 당신이 그렇게까지 하는거야!!"



츠구미 자신이, 어째서 그런 소리를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직감으로 알았다. 소녀는 그 인형을 고칠때마다 줄어들어 간다. 저런 인형에 그렇게까지 할 가치따윈 없는데.


그런 필사적인 츠구미의 목소리가 들린건지, 소녀는 일어서서 츠구미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다가올수록 그림자가 드리웠던 소녀의 얼굴이 드러난다.



――소녀는, 『하가쿠레 사쿠라』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줄어 어려진 만큼, 하가쿠레 사쿠라보다 인상이 부드럽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 눈이다. 아름다운 루비처럼 붉은 그 눈동자는, 상냥하게 츠구미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도 보는 듯이.



그리고 소녀는, 소중한 듯이 안고 있던 인형을 츠구미에게 살짝 내밀었다. 이것을, 받으란 것인가.



――하지만 츠구미는 살짝 소녀를 밀어내고, 고개를 저었다.


이 인형을 받아 버린다면, 분명 소녀는 앞으로도 인형이 파손될 때마다 고쳐, 자신을 희생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한이 들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초조와 상실의 공포. 눈 앞의 소녀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 그저 무서웠다.



그런 츠구미를 보고 소녀는 슬픈 표정을 짓고, 소녀는 인형을 강제로 츠구미에게 쥐어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머리 속에서 경종이 울린다. 그 말을 들으면 안된다.





[ ]





――그 말을 뇌가 인식하기 전에, 츠구미는 벌떡 일어났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콜록, 콜록"



의미 없는 고함소리가 자신의 목에서 나왔다. 갑자기 큰소리로 소리를 질러서 그런지, 기침에 피가 섞인다. 츠구미는 천천히 호흡을 진정시키며, 아픈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아, 하아, ……꿈, 인가?"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낯익은 그 곳은, 츠구미의 방이었다. 어느 틈에 자신은 방으로 돌아왔을까.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일어났나. 몸 상태는 어떻지? 뭔가 불편한 것은 없나?"



츠구미의 큰 소리를 알아차린건지, 벨이 전이로 츠구미의 방에 나타나 그렇게 물었다. 그 벨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근심이 묻어나왔다.



――그리고 츠구미는, 자신이 저지른 일은 그제서야 떠올렸다.



"벨 님, ……나, 살아있는거야?"



츠구미는 갑자기 아파오는 머리를 누르면서 그렇게 물었다. 그때 라돈에게 얼음을 떨어뜨린 뒤의 일을, 츠구미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어난 순간에도, 사실 자신이 살아 있는지조차 반신반의했다.


――생명을 요란하게 계속 활활 태우는 듯한 그 전투.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무섭다. 까놓고 말해, 지금 이렇게 숨쉬고 있다는 것조차 신기하다.



츠구미는 살짝 떨리는 몸을 껴안았다. 이제 와서 떨리다니, 정말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다.


그런 츠구미를 보며, 벨은 훗 하고 웃으며 말했다.



"아아. 네가 이겨서, 살아남았다. ――잘 했다."



그 말을, 제대로 곱씹는다. 라돈을 쓰러뜨려, 츠구미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야말로 승리의 징표라고.


――아아, 그렇지. 나는 해낸 것이다.



"그런,가. ……다행이다."



그렇게 말하며, 츠구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도박에 승리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피로가 느껴졌다. 게다가 몸이 무겁고, 가슴에도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온몸이 아프고, 가슴도 아파. ……근육통 같은 느낌일까."


"……그 정도로 끝났으니 다행이지. 오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기억의 혼탁이 있거나 하진 않으냐?"


"으음, 딱히 없는것 같은데."



최악의 경우 현실에서도 손발이 떨어질 정도의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별 문제는 없다. 조금 맥이 빠졌다.



……혹시 아까 본 꿈이 관계가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석연치 않은 기분만이 남는다.



――그 소녀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츠구미가 싸울 때에 잃은 손발과 같은 곳이 뜯긴 인형을 가지고 있던 소녀.


나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기묘한 그리움을 느꼇을 정도다. 하지만 츠구미는, 그 소녀에 대해,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하가쿠레 사쿠라와 닮았다――즉 츠구미와도 닮은 소녀는, 그 때 츠구미에게 뭔가를 호소하려 했는데,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흠, 여러가지 다른 것도 묻고싶은게 있지만, 당분간 상태를 볼 수 밖에 없나. ……나중에 아는 녀석에게서 검사할 수 있는 도구를 빌려오지. 녀석에게 고개를 숙이는 건 짜증나지만, 어쩔 수 없지."


"……미안, 폐를 끼쳐서."



츠구미는 죄송한 표정을 지으며, 벨에게 고개를 숙였다. 애당초 그 싸움은 츠구미의 제멋대로에서 비롯된 것이다. 벨을 무모한 싸움에 끌어들인 것은, 정말로 죄송한 일이다.


하지만 벨은 딱히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뭐, 상관없다. ――이번 건은, 나에게도 이익이 있었으니까."


"무슨 말이야?"


"어느 시대나, 신들은 『영웅의 싸움』이란느 것을 좋아하지. 이번 네놈의 싸움은 나름대로 평판이 좋았으니까. 계약신인 나의 위상도 높아졌다."



벨은 그렇게 자랑했지만, 마치 검투사처럼 다루어지는 것은 조금 복잡하다. 그러나 벨의 평판이 신들 사이에서 올라갔다면, 츠구미로서도 기쁠 따름이다.



"……맞다, 치도리는 어떻게 됐어?"



핫 하고 츠구미는 말했다. 결계는 문제없이 펼쳐졌기 때문에 피해는 나오지 않았을거라 생각하지만, 피난 시에 사고에 말려들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지금 시간은 밤 9시 반. 츠구미가 싸움을 시작한 것이 낮이니까, 아홉시간 가까이 자고 있었다.


서둘러 휴대 전화를 확인하자, 몇 건의 착신 이력이 표시되었다. 맨 위의 통지는 50분 전. 거기에는 여행이 취소됐으므로, 한시간 뒤에는 집에 돌아간다, 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다행이다. 치도리들은 무사한 거 같아."



츠구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것으로 치도리가 크게 다쳤다면, 무엇을 위해 노력했는지 알 수 없게 될 뻔했다.


앞으로 10분이면 집에 돌아온다면, 마중나가는 편이 좋겠지.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무시한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더 이상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는 것은 좋지않다.



"잠깐 내려갔다 올게. 치도리와 이야기 해야겠어."


"내일로 하는게 어떻느냐? 오늘은 아직 쉬는게 좋다고 생각한다만."



벨이 걱정스러운 듯 말하지만, 츠구미로서는 그렇게까지 몸에 이상이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래에 내려가 치도리하고 조금 이야기하는 정도라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밤에 머무르라는 벨을 살짝 뿌리치고, 츠구미는 현관으로 향했다. 그러자,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중에, 딱 좋게 현관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다녀왔습니다―.……왜 이렇게 깜깜한거야?"



츠구미의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불을 켤 틈도 없어서, 1층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이다.


츠구미는 복도의 불을 켜고, 현관 앞에 섰다.



"우왓, 깜짝이야. 있다면 말을 걸지. 전화도 안 받아서 걱정했다고?"



여행 가방을 질질 끌며 문간에서 복도로 들어온 치도리가, 나무라듯 말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츠구미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치도리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모든 사고가 날아간 것이다.


어슬렁어슬렁, 츠구미를 향해 걸어간다.



"……치도리"


"어떻게 됀 거야, 츠구미. 얼굴색이 나쁜걸? 에, 어 왜?"



꽈악, 하고 치도리의 등에 손을 감듯이 껴안는다. 그 아련한 따뜻함에, 츠구미는 울 뻔했다.



――살아 있어. 치도리는 살아 있어!!



그 사실이, 그저 기뻤다. 이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보상받는 느낌마저 들었던 것이다.



"상처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싸우기 전에, 사실은 각오하고 있던 것이다. ――이제 두 번 다시는 그녀를 만날 수 없게 되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한 번 더 만날 수 있는 것이 기뻐서 어쩔 수 없다.


그런 츠구미의 불안한 모습을 깨달은건지, 치도리는 살짝 염려하듯 츠구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응, 걱정 끼쳐서 미안해."



그 말에, 츠구미는 조금 더 세게 껴안았다.


――치도리. 츠구미의 단 하나뿐인 가족. 그녀를 잃는 것은, 츠구미에게는 생각할 수 없다.


왜냐면 츠구미에게 남아있는 것은, 이제 그녀 뿐이니까.



"무사하다면, 그걸로 좋아."



츠구미가 그렇게 말한 다음 순간, 쿨럭, 하고 큰 기침을 했다. 가래가 엉켜져 나왔나 하는 생각에 입에 손을 대자, 손바닥이 이상하게 붉었다.


치도리에게서 손을 떼고, 그대로 복도에 주저앉는다.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콜록콜록 하고 단속적인 기침―― 토혈은 멈추지 않는다.



"……츠구미? 아니, 거짓말이지? 츠, 츠구미!!"



사태를 살펴본 치도리가 다급하게 비명을 지르며 츠구미를 흔들어보지만, 입안의 피 때문에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어슴푸레하게 시야가 뒤틀린다.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지만, 그것을 판단할 기력도 없다.


――그렇게 츠구미는, 스스로의 의식을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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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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