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예언과 소녀
――그곳에 있던 것은, 하얀 입원복을 입은 초등학생 정도의 소녀였다. 그 소녀는 부스스한 머리 사이로, 츠구미를 무기질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소녀는 소파에 깊숙이 앉아, 바닥에 닿지 않는 다리를 흔들며 놀고 있었다.
……다리가 있다는 것은, 귀신은 아닐지도 모른다. 미아나 뭔가라면, 츠구미로서도 그 편이 다행일텐데.
츠구미가 소녀에게 어떻게 말을 걸까 고민하다가, 서서히 소녀가 소리 없이 일어섰다.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며 후퇴하려 했지만, 발이 마치 땅바닥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어, 어째서, 큿."
힘껏 다리를 움직여 보지만, 움직이기는 커녕 점점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영문 모를 괴기현상에 츠구미는 초조했다.
――그리고 츠구미가 소녀로부터 눈을 뗀 한순간에, 바로 눈 앞까지 거리를 좁혀온다. 소녀는 잔잔한 표정으로, 츠구미를 쳐다보았다. 소녀는 아무 말 없이 오른손을 뻗어, 츠구미의 왼쪽 가슴――심장 위에 손을 얹었다.
조급함과 공포, 그리고 당혹스러움이 사고를 지배한다. 경종처럼 울리는 심장이, 불쾌하게 시끄러웠다.
싱긋, 하고 소녀가 웃는다.
"――좋은지고."
――그 목소리는, 마치 노파처럼 잔잔했다.
"그대에게 예언하마. 뭐, 대가는 확실히 받을테지만."
속삭이듯이, 소녀의 모습을 한 무언가는 말을 이어간다. 그것은 마치, 여신의 신탁처럼 보였다.
"봉인은 이제 풍전등화. 재앙의 짐승들은 곧 해방될 것이다. 하지만, 불 속에서야말로 활로는 있으니――마음에 새기는게 좋다. 뭐, 내일이면 잊어버리겠지만 말이다."
껄껄 하고, 노파의 목소리를 낸 소녀가 웃었다.
"너는, 대체 누구야."
츠구미가 어리둥절하며 그렇게 물었더니, 소녀는 천천히 눈을 가늘게 떴다. 반짝하고, 보라색 눈동자가 수상하게 빛난다.
"뭐, 조만간 알게 될 것이야. ――때가 되면, 부디 이 아이를 도와주게. 아아, 그것을그대가 치뤄야 할 대가로 칠까."
"기다려, 무슨 이야기를 하는거야……!"
소녀의 어깨를 잡는다. 그 너무나도 연약한 몸에 조금 뒷걸음질 쳤지만, 츠구미도 양보할 수 없었다.
――돌연 예언같은 말을 들어도, 납득할 리 없다. 애초에, 이 소녀가 누군지도 알 수 없는데.
"떨어져라, 무격의 아이.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했지?"
어깨를 잡은 손을 뿌리치며, 강한 어조로 소녀가 말한다. 자수정 같은 눈동자가, 똑바로 츠구미를 꿰뚫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흔들 하고 시야가 일그러진다. 비틀대던 츠구미가 벽에 손을 대고 다시 앞을 향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츠구미는 방을 둘러보고, 어디에도 소녀가 없는것을 확인하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길, 여우한테 홀린 기분이야……"
그렇게 말을 하며, 츠구미는 벽을 등지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선 채로 꿈을 꿨다, 고 말하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츠구미에게는 조금 전의 사건이 현실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녀가 무언가 츠구메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을 말을 했던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대화를 오래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어째선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양 손을 쳐다본다. 소녀의 어깨를 잡았을 때의 감촉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벨 님은……부르지 못하는걸. 이상한 결계같은게 방에 펼쳐져 있어."
츠구미는 혀를 찼다. 이래서는 제대로 상담할 수 없다.
결국 그 소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무엇을 하러 왔을까. 어짜피 아침에는 잊어버릴 것이라면, 딱히 오늘이 아니어도 좋을텐데.
"……소용없을지도 모르지만, 혹시 모르니 메모라도 남겨둘까."
봉인, 재앙의 짐승. 그리고, 불 속(かちゅう)――아마 위험(渦中)이나 불 속(火中)이라고 쓸 것이다――에서야말로 활로가 있다는 말. 너무 추상적이어서 의미를 알 수 없으나, 분명 그리 좋은 종류의 예언은 아닐 것이다.
뭔가 터무니없는 일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과 츠구미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정체불명의 불안이, 가슴속 깊은 곳을 찌른다.
――게다가, 그 소녀의 말을 전부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일까?
애초에, 그 예언이라는 것이 정말 진실인지조차 츠구미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자자."
이럴 때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 어차피 방에서는 나갈 수 없고, 내일이면 다 잊어버릴 것이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걸까."
침대에 누워서,츠구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제까지, 자신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보통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츠구미의 불투명한 과거나 영혼의 이상,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그 사실을 조금씩 부정해 간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자신의 일인데, 그것을 가장 모르다니, 우스갯소리도 되지 않는다.
멍하니 떨어질 것 같은 의식 중에서, 츠구미는 무의식중에 입을 열었다. 본인도 의도치 않은 말이, 속삭임처럼 흘러 나온다.
"그래도 나는, 그저 츠구미인 채 있고 싶어――누나……"
――정신이 들면, 츠구미는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어난 츠구미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기묘한 메모를 발견했다.
"뭐야 이 메모는. ――누가 쓴거지?"
츠구미는 메모를 손에 들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그대로 메모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도중에 생각을 고쳐, 살며시 손을 되돌린다.
"하지만, 어쩌면 선배가 잊은 물건일지도 몰라. 만약을 위해 가지고있자."
그렇게 말하며, 베갯머리에 놓여 있던 소설 뒤에 메모를 끼웠다. 여기라면, 메모의 존재를 잊었다고 해도 다 읽었을 때에는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츠구미는 작게 기지개를 키고, 느린 동작으로 침대에서 일어섰다. 일어선건 좋았지만, 할 일이 없다.
어제 밤에 음료수를 사러 밖에 나간 것 같은 기억이 있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위가 망가져 입원해 있는 츠구미가 평범하게 마실 수 있을 리가 없다. 분명 꿈인가 무엇인가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잠이 덜 깼거나, 무언가 불가사의한 것에 의식을 조종당한 것이 틀림없다.
그런 걷잡을 수 없는 생각을 하면서, 츠구미는 링거를 질질 끌며 방 박으로 나왔다. 너무 잠만 자기만 하면, 가끔은 바깥 공기를 느끼고 싶어진다.
――추울지도 모르지만, 옥상으로라도 가볼까. 츠구미가 그렇게 생각해서 복도를 돌려고 했을 때, 쿵, 하고 힘차게 무언가와 부딪쳤다.
"앗, 윽, 아야야……"
강하게 배를 부딪쳤다. 아픔이 복부를 중심으로 쑤셔온다. 그 충격에, 츠구미는 자신도 모르게 웅크려 신음했다.
츠구미가 눈물어린 눈으로 위를 보니, 거기에는 입원복을 입은 한 소녀가 서있었다.
"아읏, 그, 죄송합니다!!"
그 부스스한 긴 머리를 한 소녀는, 허둥지동 양손을 방황시키면서 츠구미를 보고 있었다. 겁을 먹었는지, 살짝 떨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검은 눈동자에는, 눈물이 맺혀 있다.
……왠지 내가 괴롭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츠구미는 기분 나쁘면서도, 배를 움켜잡고 일어섰다.
"확실히 확인하지 않은 나도 잘못이지만, 처음부터 복도를 달리지 마. 위험하잖아?"
츠구미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아이에 대해 무조건 화를 낼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주의 정도는 해야 한다.
이번에는 일이 커지지 않았지만, 부딪힌 상대에 따라서는 부상이나 병세가 악화될 위험성도 있다.
츠구미가 그렇게 주의하자, 소녀는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오빠. 나, 아빠가 만나러 온다고 해서 빨리 로비로 가고 싶어서, 그래서 달려서……"
"별로 화내는 건 아니야. 다음부터는 조심해."
츠구미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하고, 살며시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아이가 왜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을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은 츠구미도 잘 알고있다.
소녀와는 그 자리에서 바로 갈라졌지만, 츠구미는 아까부터 어딘가 이상한 기시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아이, 어디선가 만난 것 같은데, 기분탓인가?"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해도, 딱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뭐, 분명 기분탓일 것이다. 이런건 흔히 있는 일이다. 다소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을 느꼈지만, 츠구미는 그렇게 자신을 납득시켰다.
――그리고, 일주일동안의 입원 기간은 아무일도 없이 지나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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