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사람의 명예
벨은 귀신같은 형상으로, 츠구미를 노려보고 있었다.
외모가 고양이라서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지만, 주변의 공기는 벨의 위압 때문에 몹시 무거워 보였다.
……꽤 화가 난 모양이네, 하고 츠구미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그런건 츠구미 자신이 가장 잘 알고있다.
"정부와의 연락은 벌써 끝났어. 이젠 여기서 적을 기달리 뿐이야. ……자, 이거. 가지고 있던거 돌려줄게."
츠구미는 그렇게 말하고, 손에 들고 있던 단말기를 벨에게 던졌다. 츠구미가 사용할 일은 이제 없겠지만, 다음부터는 땅에 던지지 말고 아껴주길 바란다.
벨은 단말기를 받고, 칫, 하고 크게 혀를 찼다.
"하고 싶은 말은, 그것 뿐이냐?"
"……벨 님에게는, 정말로 나쁜 짓을 했다고 생각해. 사과로 끝날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그래도――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츠구미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벨에게 있어서 츠구미는 장기말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사용하기 편리한 도구를 잃는 것은 벨에게 있어서도 타격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이런 사과따위는 아무런 가치도 없을것이라 자조했다.
아무리 츠구미가 사과하더라도,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벨이 용서하던 용서하지 않던, 츠구미는 앞으로 5분 뒤에는 사지로 향해야만 한다.
결국 이 사과행위는, 츠구미가 편해지기 위한 이기심에 불과하다.
벨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차가운 눈으로 츠구미를 바라볼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완전히 나쁜건 츠구미지만, 큰 은혜를 입은 저 신에게 미움을 받는건, 역시 견디기 힘들다.
약간의 정적 뒤에, 벨은 진심으로 어이없다는 듯 큰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들어라. 그런 것, 보고 있어도 재미있지 않아."
그런 말을 듣고, 츠구미는 고개를 들었다.
……분명 그것은, 말 그대로의 의미일 것이다. 딱히 용서받거나 한 것도 뭣도 아니다.
"단말의 로그는 봤다. 돌이킬 수 없는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네놈은 어쩔 셈이지? A급 상대에게 몇십분의 시간을 벌고, 그걸로 끝이냐?"
벨이 그렇게 말을 건네자, 츠구미는 조금 불편한 듯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되는 걸까나…… 확실하게 말하면, 30분도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절대 해내고야 말겠어."
츠구미에게도, 나름 이 세달동안 노력하고 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어떤 상대든, 도망치는 전법을 취한다면, 츠구미의 스킬이라면 그 정도의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싸움이 두렵지 않다, 라고는 결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대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면, 츠구미는 분명 평생을 후회할 것이다.
――치도리가 죽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몸이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행복한 일상이 영원히 계속될 수 없다는 것 쯤은, 츠구미 역시 알고 있다. 이별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온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때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사는 것 정도이다.
그렇기에, 츠구미는 자신이 마법소녀라서 다행이다. 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츠구미가 마법소녀가 아니었더라면, 치도리를 구할 방법은 분명히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때를 위해 자신은 마법소녀가 되었다, 는 말을 들어도 납득할 수 있다.
――그래, 그렇기에 츠구미는 『죽고싶지 않아』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츠구미가 그렇게 말하자, 벨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이, 개만도 못한 패배주의자가!!"
"므읍!! ――아, 다, 달아!"
눈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혀와, 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입에 물린다. 무심코 일부를 삼켜버렸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뇌가 따라오질 않는다.
입가에 손을 대, 넣어진 것을 뺴낸다.
――푹신푹신한 반죽에, 진한 맛의 카스타드 크림. 아무리 봐도 아까까지 벨이 먹고있던 슈크림이었다.
츠구미는 몹시 놀라서, 벨과 슈크림을 번갈아 쳐다봤다. 벨은 도대체 뭘 하고 싶었던 걸까.
"가, 갑자기 뭘――"
"흥, 아까까지의 썩은 눈보다는 낫군. ――아아 그런가, 과연. 어째서 이렇게 화가 나는지 이제야 알겠군."
벨은 그렇게 말하고, 화가 난 눈으로 츠구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 분노는 조금 전 이 장소에 나타났을 때와는 느낌이 달라서, 츠구미는 이유를 알지 못하고 혼란해했다.
"3달 전의 그 날, 당신은 죽어가고 있었다. ――내가 왜 네놈을 주웠는지, 알고있나?"
"……여자가 싫었으니까?"
적어도, 츠구미는 그렇게밖에 듣지 못했다. 하지만, 벨은 그 답변이 불만스러웠던것 같다.
"그것도 있지만, 그것만일 리 없잖나."
바보녀석, 하고 평소대로의 상태로 힐책한다. 그 목소리가 어딘가 상냥하게 느껴져서, 츠구미는 말을 꺼낼 수 없게 되었다.
"――그 날, 나는 네놈이 다쳤을 때부터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계속 관찰하고 있었다. 약한 인간이 꼴사납게 죽어가는 것을 비웃어주려고 생각했지. ――하지만, 네놈은 포기하지 않았다. 한계를 넘어서, 살아 남으려고 계속 발버둥쳤지――나는 그 마음가짐을 산 것이다."
"……그건, 그 때는 죽을 수 없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것과, 지금과, 무엇이 다르지?"
벨의 그 말에, 츠구미는 입을 다물었다. 비교할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그 본질이 가깝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 때 만약 츠구미가 죽었다면, 치도리는 진상을 찾아 위험한 일을 하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정부에 협상하기 위해, 죽음과 가까운 마법소녀가 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오늘의 싸움 후에, 츠구미가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치도리는 진상에 다다라 버릴 것이다. 치도리는 지금, 메부키 선배와 같이 있다. 그녀의 협조만 있다면, 츠구미의 실종이 하가쿠레 사쿠라와 관계가 있다는 것 정도는, 간단히 간파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츠구미가 치도리를 지키다 죽은 것이 발각된다면, 그녀는 어찌할 것인가?
만약 입장이 반대였다면, 츠구미는 제정신일 자신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서 울 것만 같다.
별로 츠구미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츠구미는 이 행위가 최선이라고 믿었다. 그 뿐이다.
입을 다문 츠구미에게, 벨이 더욱 몰아쳤다.
"지키고, 죽고, 그걸로 끝인가. ――웃기지 마라, 이기주의자. 결국 네놈은 자신이 괴롭지 않은 쪽으로 움직였을 뿐이다. 나나 네놈의 누나를 업신여기면서, 누구를 위한다는 둥 잘도 지껄였군."
"그렇지만……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잖아! 아아 그래, 나는 그저 자신이 치도리가 죽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그것이 뭐가 나쁜건데!! 내가 시간을 벌어서 원만히 해결된다면, 그걸로 된 거 아냐!"
츠구미는, 고함지르듯이 외쳤다. 더 이상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론 따위, 이제와서 말해봐야 소용없다. 지금부터 죽을 놈에게 재차 잔소리를 할 필요는 없잖아. 모처럼 각오하고 온화한 기분으로 있을 수 있었는데…… 마치 분풀이마냥 그렇게 생각했다.
"자살 지원도 극에 달했다, 인가. 소리칠 짬이 있으면 대책을 하나라도 짜는게 어때? 시간은 앞으로 몇 분밖에 남지 않았다. 상대를 쓰러뜨린다, 정도의 마음이 없어선 어쩔 셈이냐."
"……내가 A급을 대적할 수 있을 리 없잖아. 그런 짓을 해도, 아무런 의미도――"
거기서, 츠구미의 말이 끊겼다. 아니, 말을 할 수 없었다.
――벨이 뺨을 때린 것이다.
벨로부터 이렇게 직접 접촉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너무 어처구니 없어서, 멍하니 벨을 올려다보고 말았다.
"――나나세 츠구미!! 네놈은 그 때, 살고 싶었으니까 내 손을 잡은 것이겠지!!"
저 벨이, 츠구미의 이름을 불렀다. 그 충격에 무의식중에 눈을 크게 떴다.
"이길 수 없다, 대적할 수 없다, 실력이 부족하다―― 그게 어쨌다는 거냐. 어디에 포기할 이유가 있는거지? 죽고싶으면 모를까, 처음부터 도망치려는 태도로 어쩔 셈이지!? 그런데도 네놈이 나의 계약자냐!!"
"……아,"
3개월 전 그 날의 일을 떠올린다. 그 때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이 있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던 츠구미를 고른, 악마와 같은 신. 츠구미의 고집이 움켜쥔, 유일한 기적. 그 신이―― 지금도 츠구미를, 봐 주고 있다.
"네놈의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고, 인간의 가능성을 믿어보려고 한 나의 판단이 틀렸다고는 결고 말할 수 없어! 조금이라도 내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앞으로도 살아서 섬기겠다 말 하는게 어때!"
벨은 그렇게 말하고, 불손하게 팔짱을 끼고 츠구미를 내려다봤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라고 말하는 듯한 모습이다. 벨은, 츠구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아아, 어째서. 이런 상황인데, 이렇게도 기쁜 것일까.
서서히, 시야가 뒤틀린다. ……눈물 따위, 몇 년이나 흘리지 않았는데.
――신 님, 나는 살고싶어 라고 생각해도 되는걸까?
"……만약 이기면, 벨 님은 칭찬해 줄거야?"
"우쭐해하지 마라. 어떤 상대라도, 내게 승리를 바치는 것이 네놈의―― 하가쿠레 사쿠라의 일이겠지."
"……박정하네."
헤헤헤, 하고 츠구미는 희비가 엇갈리는 듯한 미소를 띠었다.
츠구미의 멘탈은 이미 너덜너덜하다. 치도리를 위해서 라는 명목으로, 필사적으로 이해하는 척 헀지만, 그것은 이미 옛적에 벗겨졌다. 지금은 이미, 죽는게 서워서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마음은 가벼웠다.
실력차는 절망적. 이길 수 있는 요소따윈 어디를 찾아도 발견할 수 있을것 같지 않다. 그러나 츠구미는 아직 죽지 않았다. 설령 거미의 실처럼 가는 가능성이라 하더라도,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거기에 걸 것이다.
――왜냐하면 츠구미의 신은, 츠구미를 믿어주고 있으니까.
"――나는, 이길게. 이겨 보이겠어. A급――신화의 재현이 뭐 어쩌라고. 어느 시대던, 괴물은 인간에게 토벌당하는 것이라고, 정해져 있으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자신을 고무한다. 지금만큼은 호언장담 해 주마.
딱히 엉망처럼 보여도 상관없다. 촌스럽고, 한심하고 보기 흉해도, 마지막으로 서 있는 쪽이 승자이다.
――나나세 츠구미는 한탄하지 않는다. 가야 할 길은, 이미 정해졌으니까.
'소설 번역 >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1장 24. - 별들의 빛 (2) | 2019.08.27 |
---|---|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1장 23. - 미소의 의미 (4) | 2019.08.24 |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1장 22. - 신대(神代)의 괴물 (1) | 2019.08.21 |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1장 21.5 - 『사쿠라』라고 하는 사람- (2) | 2019.08.19 |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1장 20. -감정의 행방- (1) | 2019.08.17 |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1장 19. -천칭이 기우는 쪽에- (2) | 2019.08.15 |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1장 18. -화면 너머의 그대들- (4) | 2019.08.08 |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1장 17. -차가운 겨울 하늘 아래에서- (3) | 2019.07.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