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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번역/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1장 10. -남매-

by 린멜 2019. 6. 30.


10. 남매




챙, 하고 작게 잔을 부딪쳐 건배흉내를 낸다. 내용물이 오렌지 주스인건, 조금 모양이 깨지만.



"그러면 다시 한번 더. ――생일 축하해, 치도리."


"츠구미도 17살 생일 축하해. 후후, 왠지 좀 쑥쓰럽네."


"괜찮잖아. 년에 한 번 정도 이렇게 축하해도."


"그렇네. ――그럼, 저녁 먹을까?"



그렇게 말하고, 츠구미와 치도리는 미소를 지었다.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이렇게 치도리와 함께 웃는것이, 츠구미에게 있어서 최고의 행복이다.



"게를 먹는건 오랜만이네. 비싼거 아냐?"


"세일중이라서 저렴했어. 괜찮아, 예산은 넘지 않았으니까."



벨과의 데이트 비스무리한 것에서 돌아온 뒤 츠구미는 동아리활동에서 돌아온 치도리와 함께 평소보다 손이 더 가는 요리를 함께 만들었다. 꺼낸 토산물을 보고 치도리는 놀라했지만, 역 건물 백화점에서 샀다고 하니 어떻게든 납득해 주었다. 조금 위험했다.



"이러고 있으면, 10년 전의 대재앙이 꽤나 옛날처럼 느껴지는걸."



문득, 치도리가 중얼거리듯 그렇게 말했다.


――10년 전의 대재앙. A급을 넘는다고 보는 마수가 일으킨, 도시 하나가 소실된 미증유의 생물재앙. 인구 5만명의 도시가 순식간에 돌로 변한 그날, 츠구미와 치도리는 서로를 제외한 모든것을 잃어버렸다.


기억을 잃고, 집도, 부모님이나 친척들도 떠오르지 않고, 유일하게 기억하는것은 자신의 이름뿐.



――그 날 두사람이 불바다를 달렸던 건, 지금도 어제 일처럼 기억난다. 그것이 츠구미의 가장 오래된 기억이었다.



"10년은, 눈 깜짝할 사이였지. 어렸을 때는 매일 어떻게 될까 하고 불안했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지내고 있어서 다행이야. 할아버지가 받아주지 않았다 생각하면, 지금도 무섭지만."


"그렇네. 요즈루 할아버지껜 감사해야겠지."



요즈루는, 10년 전에 츠구미들을 맡아 입양해 준, 자산가 노인이다.


그 노인은 30년 전 혼란할 때에 혈연을 모두 잃어버렸고, 지금도 산 속의 집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데, 10년 전에 무슨 변덕인지, 피난소에서 만난 츠구미들을 맡았다. 게다가 이렇게 생활을 위해, 집 한 채를 주고, 생활비와 학비를 내주고 있다.


처음에는 워낙 위심이 갔지만, 이제는 익숙해졌고, 그 선의를 감사히 누리고 있다.



"언젠가는 보답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있을까……그 사람, 돈으로는 곤란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사람을 싫어하니까 도움받는것도 거절하겠지?"



치도리는 그렇게 말하며,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요즈루는 이 집에 1년에 한 번 얼굴을 보이기는 하지만, 이쪽에서 만나러 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애초에 츠구미들은 요즈루가 어디서 사는지도 모른다.


요즈루는 가족이라고 부르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정말로, 불가사의한 사람이다.



"그러고보니 치도리는 옛날 기억이 생각 나?"


"……왜 그런걸 물어봐?"



츠구미는 그냥 묻기만 했을 뿐인데, 치도리는 왠지 조금 딱딱한 목소리로 그렇게 반문해 왔다. 의외의 반응에, 츠구미는 조금 당황했다.



"아니, 그냥. 10년이 지났으니까, 우연한 순간에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라도 이상하진 않잖아?"


"……아니. 아쉽게도 난 아무 생각이 안 나. 츠구미는 뭐 생각나는거 있어?"



치도리는, 마음 탓인지 진지한 얼굴을 하고 그렇게 물었다. 그 모습에 츠구미는 살짝 당황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나도, 특별히 생각나는건 없어. ……미안. 혹시 싫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거야?"



어쩌면, 치도리는 츠구미와는 과거에 대한 사고방식이 다를지도 모른다. 츠구미 자신은 딱히 자신의 부모님이나 과거의 기억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치도리는 상냥하니까,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악감을 안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가족이란건, 본래 매우 소중한 것이다. 츠구미에게 있어서 치도리가 그렇듯이, 치도리는 분명 기억나지 않는 부모님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아니야, 조금 감상적이 됐을 뿐이니까. ――그래, 기분전환할 겸 선물 교환하자? 내 몫도 제대로 마련해 뒀지?"


"아, 아아. 물론이지."



아니나 다를까 츠구미는 밝은 목소리로 그렇게 잘라냈다. 그 모습을 츠구미는 조금 의아해했지만, 치도리는 그저 어두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츠구미는 이상한 이야기를 꺼낸것을 반성했다. 꼭 좋은 날에 해야 할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주는건 이거. 수첩과 자명종. 츠구미는 지각도 잦고 분실물도 많지?

이걸 쓰면서 앞으로는 조심해야해?"


"아하하, 선처하겠습니다…… 하지만, 고마워. 소중히 쓸게."



요전날 마침 자명종이 망가져 버렸으므로, 타이밍적으로는 딱 좋았다. 수첩은 지금부터 마법소녀로서 생활하는데, 스케줄 관리에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츠구미는 먼저 유키타카에게 받은 티켓을 치도리에게 내밀었다.



"뭐야, 이건?"


"유키타카에게 받은 선물. 여성한정 온천여행 티켓이라고 하니까, 누군가 친구를 데리고가면 좋을거야. ――내 건, 이거. 열어봐."



그렇게 말하며, 츠구미는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꺼냈다.


어제 벨에게 「서투르군」이라며 놀림당하며 노력했던 걸작이다. 포장이 바로 벗겨지는 것은 알고 있지만, 기뻐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좋다.



"온천여행! 괜찮은걸까, 그런 비싼 물건을 받아도…… 츠구미 건, 어라, 왠지 귀엽네."



치도리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포장지를 찢지 않고 벗겨나간다. 그리고 안에 있는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안데르센 동화집…… 그것도, 덴마크어네? 원본에 한없이 가까운 문장을 손에 넣을 수 있다니, 믿을 수 없어!"



치도리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30년 전의 혼란기와 재해 등으로 인해, 도서관 등 대부분은 불타 사라졌다. 국가 소장 서고라면 아직 남아있는 것이 있겠지만, 이들은 일반 시민이 쉽게 볼 수 있는것이 아니다.


게다가 쇄국상태에 빠진 영향으로 일본 국민의 외국에 대한 심상은 최악이다. 분서 취급까지는 아니지만, 외국의 도서, 그것도 그 나라의 언어로 쓰여진 책은 좀처럼 손에 넣기 힘들다. 그래서 외국 도서 수집이 쉽지 않다.


치도리는 떨리는 손으로 책을 꽉 끌어안았다. 저렇게까지 기뻐하는걸 보니, 고생한 보람이 있다.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서 다행,――에?"



엉겁결에, 말이 막혔다.



――눈 앞에서, 치도리가 훌쩍거리며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우, 울 필요는 없어. 초판 원서도 아니고, 가치 자체는 그렇게까지 높지 않다고?"



츠구미는 당황하며, 슬며시 티슈를 내밀었다. 치도리가 우는 모습이라니, 몇 년 만에 본 것이다. 동요하지 않는게 이상하다.



"틀려. 츠구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기억해 준 게 기뻐서…… 정말로, 고마워."



그리고 치도리는, 울면서도 예쁘게 웃었다.



――그 얼굴이, 팟, 하고 누군가와 겹쳐진다. 이전에도, 이런 식으로 웃는 누군가가 있었던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건 아무래도 괜찮겠지.



"기뻐해 줘서 다행이야. 자, 식기는 내가 치울테니까 좀 가라앉히고 와. 눈 부으면 큰일이잖아?"


"……으응. 미안해, 어린애처럼 울어버려서. 먼저 방에 돌아가도 괜찮아? 아직,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미안해, 곤란했지? 라고 말하며, 치도리가 눈물을 닦는다. 별로 곤란하진 않지만, 아무리 남매라도 우는 얼굴을 계속 보이는 건 치도리라고 해도 싫을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츠구미는 흔쾌히 치도리를 방으로 보냈다.



――아아, 기뻐해 줘서 정말 다행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츠구미는 흐뭇하게 웃었다.



◆◆◆



치도리는 문을 닫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투명한 물방울이 흘러내린다.


――기뻤다. 너무, 기뻤다. 그것이, 치도리는 괴로워서 어쩔 수 없었다.


치도리는 때때로, 자신이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도 되는건가 불안해진다. 츠구미와 함께 산다. 그것은 너무 감미로워서, ――그래서 죄가 무겁다.


치도리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는 작은 나무액자 사진이 하나 들어 있었다. 치도리는 그 사진을 꺼내 슬며시 사진 표면을 쓰다듬었다.



"죄송해요."



그러면서 치도리는, 비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해요, ――사쿠라 언니."



툭, 하고 손에 눈물이 떨어진다.



――그 사진에는, 두 사람이 찍혀있었다.



다섯살 정도의 어린 모습을 한 츠구미와, 바짝 달라붙어 웃고 있는, 츠구미를 닮은 얼굴을 한 중학생 정도의 여자아이. 그 사진의 뒷면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가장 사랑하는 남동생, 츠구미와. 사쿠라』




――츠구미는,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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