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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번역/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3장 60. - 꽃을 고르는 자

by 린멜 2019. 10. 31.


60. 꽃을 고르는 자





"――어떻게 할 수가 없군. 계약자 이외의 인간에 대한 간섭은 기본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역시 그렇구나…… 규칙이란건 귀찮네."



학교가 끝나고 바로 집으로 온 츠구미는,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벨에게 설명했다. 그 이야기중에, 스즈네의 이능을 어떻게 할 수 없느냐고 벨에게 물어봤지만, 역시 현재 상태로서는 이능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벨 왈, 하계에 강림한 신들에게는 엄격한 규칙이 정해져 있어, 계약자 이외의 인간에게 힘을 행사하는 것은 굳게 금지되어 있는 것 같다. 개중에는 예외가 있는 것 같지만, 이번 스즈네의 케이스에 관해서는 그 예외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애초에, 그 여자에게는 육화의 지인이 있겠지? 그런 연줄이 있는데 아직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니, 상당히 뿌리깊은 것일것이다. 무리를 해서 제거하려고 한다면, 최악의 경우 영혼에 영향이 갈 것이다. 그런 류의 시술을 잘하는 신이 아니라면, 여자의 목숨마저 위태롭다고 생각한다."


"신도 만능이 아니구나."



츠구미가 진지하게 그렇게 말하자, 벨은 눈을 치켜뜨고 큰소리로 소리쳤다.



"바보녀석, 하계에서는 힘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완전체의 내가 이 곳에 있었다면, 지형을 바꾸는 것 정도는 가볍게 해 보였을 것을!!"


"네 네, 알았네요."



분개하는 벨을 달래며, 츠구미는 쓴웃음을 지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신의 힘이 제한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신 모두가 자기 좋을대로 멋대로 기적을 일으킨다면, 기적의 가치가 떨어진다.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빈발하지 않기 때문에 귀한 것이니까.


게다가 곤란한 일이 생기면 바로 신에게 부탁하려는 것은, 일본인의 나쁜 버릇이다. 아무리 이렇게 가까이에 신(벨)이 있기는 하지만, 너무 의지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아무래도 좋은 여자보다, 네 마안이 더 중요하다. 왜 더 빨리 말하지 않았지?"


"타, 타이밍이 나빠서……"



벨의 질책에, 츠구미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치도리의 일이나, 흰토끼 때문에 이야기할 틈이 없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확실히 이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은 츠구미의 실수다.



"흥. 원래부터 이능의 편린은 있었던 것 같지만, 조금 묘하군."



그렇게 말하고 벨은 츠구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에, 뭐가? 혹시 또 영혼에 영향이 끼친거야?"


"아니, 그렇지 않다.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벨의 말에 츠구미는 고개를 갸웃했다. 영향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좋은거 아닌가?


그런 츠구미의 의문을 표정에서 읽었는지, 벨은 큰 소리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능이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일부에 어떠한 변이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강한 이능을 가진 자일수록, 사람의 이치에 벗어나지. 그렇게 되면 힘이 반발하여 무녀의 그릇으로서는 부적격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운이 좋았군, 나와의 계약이 강제로 해제되지 않아서."


"……이해했어."



츠구미는 가볍게 몸을 떨고, 아련한 눈을 했다. 설마 자신이 그런 위험한 다리를 건너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벨의 설명으로 간신히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 있다.



――역시, 이 이능은 내 자신의 능력이 아니구나.



놀이공원에서 느꼈듯이, 분명 이 죽음으로 이끄는 마안은, 츠구미의 영혼에 정착한 하얀 소녀의 것일 것이다.


그 소녀는, 대체 누구일까. 그 정체의 열쇠를 쥐는 것은, 아마 10년 전의 재해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 정보는 모두 정부에 의해 은닉되어 있다.



지금의 츠구미에겐, 그 정보를 얻을 수단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 정부에 소속되지 않는 한은.


츠구미는 고개를 숙였던 얼굴을 들고, 벨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기, 벨 님. 그러고보니 정부에서 『십화』의 참여 제의는 있었어?"


"응? 아아. 어제 연락이 왔다. 지금은 대답을 애매하게 했지만, 희망하는건가? 이번 제의는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니, 네놈이 결정해도 상관없다."



벨은 아무래도 좋은 듯 말하고, 판단을 츠구미에게 맡겼다. 아무래도 벨에게 있어 육화의 덤인 『십화』자리는 흥미가 없는 것 같다. ……차라리 강제로 정해주는게 마음에 편했는데.



――사실은,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츠구미의 사정을 생각하면, 거절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다. 십화로서의 활동에 얼마의 시간을 낼지 모르는 데다가, 노출이 늘어남으로써 정체가 들키기 쉬워진다고 하는 리스크가 있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치면, 츠구미가 정부에 잠입할 기회는 평생 오지 않을 것이다.



……치도리처럼 평소 행실과 성적이 좋다면, 정공법으로 정부에 근무할 수도 있었을텐데, 지금 츠구미의 성적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다. 솔직히, 이대로 마법소녀로서의 활동에 시간을 빼앗기면, 대학시험도 위험할 것 같다.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하얀 소녀. 그리고 10년 전의 재해의 일을 밝히고 싶은 마음은 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하가쿠레 사쿠라에 관한 것을 들켜 일상이 무너져 버리는 것이 두렵다. 벨 역시, 자신의 계약자가 남자라는 것이 발각되는 것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츠구미가 그런 약한 소리를 하자, 벨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자신의 식구를 위해 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할 수 있는 남자가, 꽤나 나약하구나. ――나에 대한 의리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 많은 결과를 낸 자에게 불만을 내뱉는 녀석은, 제대로 된 신이 아니라 그냥 쓰레기일 뿐이니까."



그리고 벨은, 작은 손을 츠구미의 머리에 얹고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말했다.



"결코 부러지지 마라. 안이한 타협을 하지 마라. 명예로운 나의 계약자에, 겁쟁이는 필요없다. ――그러니, 후회없는 선택을 해라. 뭐, 그래서 세상에서 질책받았을 때는, 그런 배은망덕한 녀석들은 전부 버려버리면 된다. 그 땐, 내가 질릴때까지 함께 있어주겠다."



돈이면 썩을정도로 있으니까 말이다, 라고 벨은 웃었다.


츠구미는 입을 벌리고, 이윽고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웃기 시작했다.



"훗, 큭, 마치 프로포즈같은 말을 하는걸."


"하아? 기껏해야 100년 정도의 이야기로 거창하긴…… 우쭐해 하는것도 적당히 해라. 나는 사용하기 편한 하인을 놓치기 아쉬울 뿐이다."



휙 하고 고개를 돌리면서 벨은 말했다. 아마 말 그대로의 의미겠지만, 츠구미에게는 그것이 부끄러움을 숨기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우스워서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아아, 그래도, 벨 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있어주는구나.



정체가 들켰을 때에, 치도리나 다른 모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지만, 벨 만은 계속 함께 있어준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마음의 버팀목이 된다.



"아니, 응. 고마워. ――덕분에 결심했어."



분명 어느 쪽을 선택해도 후회할 것이며, 잘 풀릴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하얀 소녀의 슬픈 듯한 얼굴을 떠올리면, 스스로도 어찌 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휘청거린다.


괴로울 정도의 그리움과,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슬픔. 지워져버린 기억을 원망하고 싶을 정도로 선명한, 사랑스러움. 이대로 소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있는 것은, 너무나도 괴로웠다.



"나는――하가쿠레 사쿠라는 『십화』에 소속되려고 생각하고 있어. 나는 어떻게 해서든, 10년 전의 재해에 대해 알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내부로 파고들어 신뢰를 얻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해."


"……예의 인재(人災)인가. 잘 풀릴 지는 장담할 수 없다."


"무리할 생각은 없어. 물러날 때도 제대로 물러날거야. ……하지만, 나 혼자서는 정부로부터 정보를 끌어낼 수 없다고 생각해. 만약의 경우에는, 벨 님도 협상역으로 협력해 주었으면 좋겠어."



……형편좋은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정부로서도, 만일의 경우 전이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마법소녀를 손에 넣었다 생각하면, 약간의 양보는 해줄지도 모른다.


게다가 츠구미의 말을 떠나, 힘이 센 신인 벨의 말이라면, 분명 정부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호랑이 위세를 빌리는 여우같아 한심하지만, 벨이 협력해 준다면 매우 든든하다.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인 츠구미에게, 벨은 눈을 가늘게 뜨고 츠구미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아얏! 뭐, 뭐야?"


"흥. 이럴때만 기특한 태도를 취하는구나, 네놈은."



그리고 벨은 머리를 놓고, 능글맞게 웃었다.



"예의 인재에 대해서는 나도 다소 흥미가 있다. ――뭐, 마음이 내키면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벨 님…… 정말, 고마워."


"그러니까, 마음이 내키면이라고 말 했을텐데."



벨은 그렇게 말했지만, 츠구미에게 있어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실은, 등을 밀어주길 바랬을 뿐일지도 모른다. 일상이 무너지는 공포는, 딱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발 내디디기 위한 용기는 이미 받았다. 지켜봐 주는 것이 이 소중한 신이라면, 이제 주저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벨 님은 역시 대단하네."


"무슨 소릴 하는거냐. 당연한 소리 하지 마라."



벨은 가슴을 펴고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평소와 같아서, 츠구미도 같이 웃고 말았다. 알고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천연인건지. 어느 쪽이던, 츠구미에게 있어서 고마웠다.



일단 앞으로의 방향성은 정해졌기 때문에, 나머지는 그에 맞춰 움직일 뿐이다.


십화로 활동하기 시작하는 것은 몇 달이 지나야 하겠지만, 그 사이에 『하가쿠레 사쿠라』는 지금 이상으로 연찬을 쌓아야 한다. 최소한, B급 마수를 여유롭게 썰어버릴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이야기가 될 것이다. 가능하다면, A급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는 성장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실력파 마법소녀 속에 섞이기는 조금 힘들 것이다.



그런 대화를 하고 있다가, 치도리가 귀가했기 때문에 벨과의 대화는 끝이 났다.



――그리고 시계는, 심야에 바늘을 가르켰다.





◆◆◆





삐삐삐삐, 하고 울리는 핸드폰의 알람을 끄고, 츠구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간은 밤 10시 45분. 유키타카와의 약속시간까지, 15분 남았다.



"일단, 가기는 가고 없으면 돌아올까……"



집을 나설 때는, 치도리에게 들키지 않도록 전이로 벗어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문 여는 소리에 깨버리면 불쌍하다.



"하아,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거지."



츠구미는 옷을 갈아입고, 귀찮은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미리 방에 준비해둔 신발을 신고, 전이를 사용해 밖으로 나왔다.



――심야 23시. 아무도 없는 깜깜한 공원. 호출하는 쪽도, 향하는 쪽도, 좀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어쩐지 거절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와 버렸다.



츠구미는 나무벽으로 둘러싸인 공원 안으로 들어서, 유키타카의 모습을 찾았다. 그러자, 멀리 보이는 그네 위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아마 유키타카일 것이다.



유키타카는 츠구미를 눈치챘는지, 그네를 타며 손을 크게 흔들었다. ……아무리 얼굴이 잘생겼어도, 남자 고등학생이 그네를 타는 모습은 상당히 위화감이 있다.



츠구미는 양손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유키타카가 기다리는 쪽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 나이에 그네라니, 애냐."


"좋잖아, 꽤 재밌다고?"



그리고 유키타카는 츠구미에게 옆 그네에 앉으라고 가르키고, 기쁜 듯이 웃었다.



――그것은 정말로 아이처럼 순수한, 즐거운 듯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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