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 번역/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5장 125. 비대칭의 거울

by 린멜 2020. 12. 2.


125. 비대칭의 거울





――토노가 말하는 『아는 얼굴』이란, 과연 어느 쪽을 의미하는 것인가. 유괴사건 때 우연히 만난 나나세 츠구미와, 마법소녀인 하가쿠레 사쿠라. 어느 쪽이라도, 성질이 나쁘다.


――토노 스미레는, 하가쿠레 사쿠라의 정체가 나나세 츠구미인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마법소녀로 활동하고 있는 츠구미의 존재를 눈치챈 야타가라스가 그녀에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왜 이런 곳에서 토노가 접촉해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기서 하가쿠레 사쿠라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좋지 않다.

여긴 남의 눈에 띄는데다, 잠시 후면 츠구미의 친구들이 온다. 만약 거기서 친구들과 토노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큰일이 날 게 분명했다.

……지금까지 숨겨온 일들이 전부 엉망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불안을 억누르면서, 츠구미는 냉정하게 표정을 수습하고 입을 열었다.


"……목적이 뭐죠?"

"아까도 말 했잖니. 우연히 발견해서 말을 걸었을 뿐이야. 후후, 하지만 이런 만남이 있을 줄이야, 야타가라스의 눈을 피해 밖으로 나온 보람이 있는걸. ――하가쿠레 씨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게 말하며 점잖게 웃는 토노에게, 츠구미는 초조해하며 소리를 질렀다.


"윽, 여기서 그 이름을 꺼내는 건……!"

"어머,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도 생각이 있는걸. 밖에 나왔을 때부터 계속 인식 저해의 술을 쓰고 있으니까, 내가 뭘 하든, 무슨 이야기를 나누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이른바 투명인간 같은 거지. 지금은 당신도 효과 범위에 포함시켰으니까, 소리를 지르지만 않는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야."


타이르는 듯한 말을 들은 츠구미는, 주위를 힐끗 둘러보고, 겸연쩍은 얼굴을 하고 작은 목소리로 토노에게 물었다.


"토노 씨는, 저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글쎄. 대화재 건과, 당신의 성장 과정, 그리고 이 1년간의 활동에 대해서 정도려나?"

"……그렇군요. 거의 전부라는 건가요."


그렇다면, 꽤나 전부터 주목받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츠구미는 정체를 숨기고 있을 생각이었는데, 실은 그녀들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그들이 일부러 그런 귀찮은 짓을 해서, 츠구미의 기억을 되찾게 했는진 알 수 없으나, 어쩐지 그건 물어봐도 대답해 줄 것 같진 않았다. 선이 그어져 있다――기 보단, 이 이상은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 그런 압박을 느꼈다.

하지만, 그들이 츠구미를 문제 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에 대해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출신이고 성별이고 츠구미가 떠안고 있는 문제는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의 행동에 휘둘리는 것은, 쓸데없이 정신이 피폐해진다. 뭔가 요구가 있다면 빨리 전해줬으면 하는 것이 츠구미의 진심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토노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네가 큰 문제라도 일으키지 않는 한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아. ――그래도 좋지 않니? 가족에 대한 기억이 돌아왔잖아?"

"……하?"


――어느 입으로. 그렇게 속으로 내뱉으면서도, 츠구미는 양 손을 힘껏 움켜쥐었다.

치도리와 불꽃――트라우마를 자극해 강제로 기억을 되살린 주제에, 뭐가 좋다는 것인가. 비꼼에도 정도가 있다.


그런 위험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토노는 가볍게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야타가라스는 네게 강제로 기억을 빼앗는 벌을 줬어. 즉 기억 회복은, 네게 주는 벌의 끝이기도 해. 적어도, 야타가라스는 더 이상 당신을 비난하지 않을 거야. 그것만은 장담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나도, 당신이 마법소녀로서 아마테라스 님께 공헌하고 있는 동안은 대등한 동료로서 대할 거야."


토노의 그 말에, 츠구미는 눈을 크게 떴다.

츠구미는 계속, 기억을 되돌린 것 자체가 벌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다. 야타가라스의 진의를 살피면서도, 츠구미가 고통받기를 바라는 줄로만 알았다.

뭐, 이 의견은 어디까지나 토노가 본 의견이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야타가라스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그녀가 그렇게 말하니,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볍게 처리해도 괜찮은 건가요? 그리고 이제 와서 말하는 것도 뭣하지만, 남자가 마법소녀를 하고 있는 건 문제 아닌가요?"

"괜찮아. 너와 같은 애는 또 있으니까."

"엣, 또 있다고요!?"


토노는 시원스레 그렇게 말했고, 츠구미의 반응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듣고 싶지만, 이번에는 참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네게 이 이상 간섭을 하면, 또 네 계약신이 불호령을 내릴 것 같으니까. 그 후 수습하는 거 조금 큰일이었다니깐?"

"……그땐 폐를 끼쳤습니다."


츠구미는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작게 고개를 숙였다.


――치도리의 유괴 사건 이후, 벨은 츠구미에 대해선 관대한 대응을 취했지만, 역시 다른 신이 자신의 계약자에게 간섭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는지, 그 길로 정부――야타가라스에게 항의하러 간 것이다.

그 결과, 냉정을 잃은 벨이 힘을 쓰려했고, 결국 벨에게 1개월의 근신이 내려진 것이다. ……뭐, 야타가라스에게 시비를 걸어 퇴거를 명령받지 않은 게 다행이다.

현재 벨은 정부 지하에 있는 반성 방에 봉해져 있어, 거기서 일절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계약자인 츠구미는 면회를 허락받았지만, 날이 갈수록 벨의 기분은 나빠져, 비위를 맞추는 것도 꽤나 고역이다.


"애초에 난, 네게 너무 관여하지 말라고 야타가라스에게 한 소리 들었어. 맘대로 혼자 나갔다가 이런 곳에서 널 만난 걸 알면 혼날걸."

"그런가요?"

"그래. 이유는 너도 잘 알겠지?"


토노가 그렇게 묻자, 츠구미는 생각에 잠기듯 눈을 내리깔았다. ……짐작 가는 게 너무 많았던 것이다. 대화재, 자신의 출신, 누나의 소행, 그리고 츠구미의 성별이 남자라는 것. 그 어느 것도, 정부의 이미지 걸인 희대의 무녀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야타가라스가 츠구미와 관여하지 말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츠구미는, 멍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의 햄버거들을 바라보았다. 감자튀김은 거의 다 식어버렸고, 못 먹는 건 아니지만 맛이 없어진 것은 확실하다. 햄버거도 이 이상 뒀다간 식어서 맛이 없을 것이다.

……토노와 만나고 나서 위가 지끈거려서 어쩔 수 없었는데, 긴장 탓인지 배고픔 탓인지 이젠 잘 알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츠구미가 크게 한숨을 내쉬자, 토노는 흥미진진한 듯 츠구미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있잖아, 그거 혹시 햄버거니?"

"에? 아아, 그런데요, 그게 왜요?"


갑작스러운 물음에 츠구미가 당황하면서 그렇게 답하자, 토노는 부끄러운 듯 볼을 붉히며 말했다.


"나, 항상 시중드는 사람들이 말려서, 그런 건 별로 본 적이 없거든. 그래서 좀 신경 쓰여서……미안, 우울해졌나 보네."

"아뇨, 별로 상관은 없는데요. 역시 신직들은, 이런 정크 푸드가 금지되어 있는 건가요?"

"가능한 한 먹지 않도록, 이라고 다른 무녀에게 들었어. ……하지만, 전에 유키노 씨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난센스라고 코웃음을 치던걸. 현대에 있어선 별 의미 없는 계율이라면서. 야타가라스도 식사 정도는 원하는 대로 해도 된다고 했지만, 남의 눈이 있으면 아무래도 사양하게 돼서……"


그렇게 말하며, 토노는 침울한 듯 눈을 내리깔았다.

……일반인인 츠구미는 이해가 가질 않지만, 신직에 오른 토노에게는, 츠구미가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제한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츠구미는 무심코 제안했다.


"흐음. 별로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면, 하나 먹어보실래요? 조금 식긴 했지만."

"에?"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드는 토노의 앞에, 봉투에 담겨 있던 햄버거를 하나 내밀었다.


"하지만, 그, 정말 괜찮은 걸까?"

"계약신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다면 괜찮겠죠. 뭐, 싫으면 어쩔 수 없지만."


츠구미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몫의 포장을 풀고 햄버거를 물었다. 여전히 덤덤하고 저렴한 맛이지만, 나름대로 맛있다.

그리고 토노는 츠구미와 포장된 햄버거를 번갈아보고, 드물게 시선을 방황하다, 이윽고 결의를 한 듯 햄버거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조심조심 포장을 풀고, 천천히 입을 가져다 댄다.


"……왠지, 이상한 맛이 나는걸."

"뭐, 인공 조미료가 많이 들어갔으니까요. ――맛이 없나요?"


츠구미가 그렇게 묻자, 토노는 풋 하고――마치 어린아이 마냥 웃으며 「생각했던 것보다 맛없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한 입마다 불평하며, 햄버거 하나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말하는 것과 반대로, 의외로 맘에 들은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살벌하다고는 할 수 없는, 잘 알 수 없는 훈훈함 속에서 식은 감자튀김을 둘이서 찌르고 있는데, 멀리서 츠구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친구들이 마중 나왔나 보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기, 정말 제게 볼일이 있었던 건 아닌 거죠?"


――결국, 토노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요구도 없고, 특별히 충고를 하는 것도 아니다. ……츠구미는 처음부터 의심하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로 우연히 만나 말은 건 것일지도 모른다.

츠구미가 확인하듯 그렇게 묻자, 토노는 예쁜 미소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츠구미는 그 모습에 안심하며 작게 고개를 숙이고, 「의심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 길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친구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앗, 나나세 어디 있었던 거야. 한참 찾았잖아."

"미안. 잠깐 화장실에 갔었어. 원하던 건 샀어?"


그러자 한 친구가 전리품처럼 종이봉투를 머리 위에 올리고는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오우! 노래방 개인실에서 다 같이 패션쇼를 할 거야!"

"아니, 남자 놈들의 옷을 갈아입는 건 보고 싶지 않거든……"

――돈을 줄 테니까 용서해 줘. 그렇게 말하고 싶은 듯한 츠구미의 싫은 얼굴을 보고는, 친구들은 즐거운 듯이 웃었다. 그렇게 놀림조로 떠들면서, 츠구미들은 푸드코트를 떠났다.





◆◆◆





"――좋겠네."


테이블에 혼자 남겨진 토노는, 즐거운 듯 걷는 소년들의 등을 바라보며, 작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같은 태생인데, 저 아이는 매우 자유롭고 행복해 보여. 왜 그럴까."


――토노는 어떠한 목적을 위해 조정된, 특별한 인간이다. 철이 들기 전부터 토노에게 자유는 없었고, 일거일동에 이르기까지 계속 엄격한 감시와 지도를 받아 왔다.

야타가라스와 계약한 이후는 다소 자유로워지는 시간이 늘었지만, 그래도 감시량은 줄지 않았다.


감시당하고, 묶여, 원하는 대로 인형처럼 행동한다. 가끔 고삐가 풀린 마냥 분방하게 굴 때도 있지만, 그것도 결국은 크게 길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것이 토노 스미레의 인생이었다.


……그렇기에 본래는 이렇게 나나세 츠구미와 둘이서 만나는 일 같은 건,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어째선지, 바깥공기를 좀 쐬고 싶어서. 아무에게도 아무 말 없이, 비틀비틀 먼 역까지 멀리. 거기서, 또래 소년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나나세 츠구미를 발견했다. 발견해 버린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제물로 살다가, 영혼을 사신에게 침범당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불쌍한 남자아이. 토노에게 있어서 나나세 츠구미는 【자신보다 불쌍한 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제대로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과 허물없이 웃으며, 마치 평범한 사람처럼 지내고 있다. 그 모습에, 토노는 머리를 방망이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어째서, 하고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맴돌면서 뒤를 따라가다, 츠구미가 혼자가 된 순간을 가늠해 말을 걸었다. 분명, 그것이 실패였을 것이다.

감정이 풍부해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에, 조금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면 간단하게 마음을 허락하는 소탈함. 언행 하나조차도, 자신과는 닮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그는 자유로웠다.

토노가 무의식 중에 건널 수 없었던 것을, 무턱대고 손을 잡고 끌고 간다. 첫 혼란과 암묵적인 양해를 깨는 것에 대한 공포. 그것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먹은 것은――맛있고 죄의 맛이 났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같은 게 아니야. 토노 스미레와 나나세 츠구미는, 압도적으로 다르다.


서서히, 마음속에 검은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어째서 저 아이만, 하고 부러움이 멈추지 않는다.


"……바뀌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작게 중얼거리고, 토노는 깜짝 놀란 듯 입을 다물었다. ――그런 건, 절대로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돌아가자. ……분명,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을 테니까."


토노는 여느 때처럼 미소를 지으며, 훌쩍 일어섰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포장지를 살며시 손가락으로 만지고, 살짝 띄워 불을 붙였다.

연기도 내지 않고 타는 파란 불꽃은, 조용히 출렁이고 있다. ――마치, 토노의 마음을 비추는 듯.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