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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번역/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5장 137. 순수한 악의

by 린멜 2021. 3. 24.


137. 순수한 악의





어느 빌딩가에 늘어선 맨션의 한 방에,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눈 아래 펼쳐진 야경을 바라보고 있다.


"――아아, 다음 주 수요일에 이야기할 수 있게 조정해 놨어. 이쪽에서 어느 정도의 사정은 설명해 뒀으니, 나름대로 지위가 있는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을 거야. 뭐, 자세한 건 추후에 연락을 하지."

『하나부터 열까지 미안하네. ……정말, 은혜를 입었어』

"아니, 딱히 감사인사를 할 필욘 없어. 소중한 친구에게 협력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렇지? ――나나세"


그렇게 말하는 남자――아사쿠라는 웃었다.


아사쿠라는 전화를 끊고,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으쓱하고 가죽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책상 위에 있는 주먹만 한 돌――마른 피 같은 거무튀튀한 빛깔의 석류 열매 같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백에 가까운 소녀들의 생명에 의해 만들어 진, 악의의 열매. ……원래였다면 좀 더 힘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 유능한 일꾼인 츠구미 군은 좀 곤란하다니까."


그렇게 말하며, 아사쿠라는 지친 듯 웃었다.


――많은 피해자를 낸 이레귤러 마수에 의한 습격사건. 그것은 이 남자가 주범이 되어 일으킨 인위적인 재해이다.

11년 전 혹시모를 때를 위해 사쿠라가 창고에 감추어 두었던 마수 종자를 싹 틔워, 호시탐탐 기회를 찾다, 마침내 악의를 꽃피운 것이다.

아마도 정부는 그 마화를, 적정자를 공격할 뿐인 것이라 여기겠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아사쿠라가 소속해 있던 종교 조직 【여명의 별】의 교주인 시카바네 사쿠라가 조정한 이것은, 소녀들의 생명을 빨아들여 고통을 힘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본체에 축적된 힘이 응축되어――이윽고 커다란 열매가 된다.


소녀들의 절망과 고통이 구현된 그 돌은, 여느 마핵보다 더 꺼림칙한 기색을 띠고 있다.


"11년 전 일을 다시 한 번 이어가는 거야, 사쿠라 군. 이번에야말로 절대 실수하거나 하지 않을 걸세. ……난, 내 나름대로의 고집을 관철하겠어."


아사쿠라는 그렇게 말하고, 석류같은 돌을 집게손가락으로 살짝 눌렀다. 어슴푸레하게 빛나는 그것은, 하늘하늘 요염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사쿠라라는 남자는, 복받은 인간이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머리도 좋아, 순조로히 의사가 되어,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친구도 있고, 확실히 순조로운 삶을 살고 있던 어느 날――그 완벽한 생활은 무너졌다.

31년 전부터 갑작스레 시작된 마수의 습격. 일본의 쇄국화. 물자가 없어져가는 물안. 그런 가운데, 아사쿠라는 의사로서 필사적인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 무렵의 아사쿠라는, 누군가를 위해서 몸이 가루가 될 때까지 일하는 성실하고 선량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의사로서, 책임 있는 어른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아사쿠라는 동란의 시기를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올곧은 심사가 뒤틀린 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필연이었다 봐도 좋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부상자의 치료 활동을 끝낸 아사쿠라가 오랫만에 집에 돌아오니――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이 죽어 있었다. 원형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찢긴 아내와, 팔다리가 갈기갈기 찢겨 움직이지 않는 어린 딸. 어딜 봐도 죽은 게 분명했다.


……그 후 얼마간의 일은, 그다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근처에 살던 친구, 나나세 요즈루가 매장을 도와준 것은 간신히 기억하지만, 그 밖의 기억은 모호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나나세는 일본에서 탈출할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나나세의 행동도 허망하게 일본에서 나가기 전에 그의 가족도 마수에게 당하고 말았다. 현장인 집은 아사쿠라 때와 마찬가지로 처참한 모습이었고, 친구인 나나세는 그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마음을 부쉈다.

아사쿠라는 이전의 은혜를 갚듯 울적해 하는 나나세를 헌신적으로 도왔지만, 어쩌면 그것은 병든 친구의 모습에 자신을 겹쳐보고 있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 마법소녀라 하는 존재의 대두로 비교적 평화로운 생활을 되찾고, 간신히 마음의 정리가 될 듯한 무렵――아사쿠라는 잃어버렸을 망령과 만났다.

죽은 물고기 같은 눈을 하고, 사람이 없는 친구의 집 앞에 서 있는 한 소녀. 먼 과거에 본 아이의 면모를 가진 그 소녀는, 자신의 이름을 『나나세 아카네』라 밝혔다.

――처음에는, 마냥 기뻤다. 아카네에 대한 정부의 대우에 분노해, 울고 기뻐하는 나나세의 모습에 감격을 받고, 서서히 웃는 얼굴이 늘어가는 아카네에게 안도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일까, 그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 괴로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나나세가 즐거운 듯 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카네가 웃으며 아사쿠라에게 인사할 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먹물을 드리운 듯한 분노가 치민다.

처자를 잃고, 절망의 늪에서 살며, 평생 지워지지 않는 고통을 가슴에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친구와 자신.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그 녀석만이 구원을 받아 행복한 것인가. ――그걸 차마 허용할 수 없었다.

물론 아사쿠라 자신은, 그것이 단순한 질투이며 화풀이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렇게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타협하지 못한 채, 계속 미워했다.


그런 때, 아사쿠라는 환자에게 이끌려 온 어느 집회에서 ――운명과 마주친 것이다.

그녀――여명의 별의 무녀인 사쿠라는 순식간에 아사쿠라의 고민을 간파해, 여명의 별로 오라 권했다. 그렇게 여명의 별에 입회한 아사쿠라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은 것이다.

증오스러운 마수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나날의 삶. 쓸데없이 소비되어 가는 마법소녀들. 아마테라스의 독선에 힘입은 정부는, 이미 부패해 의지할 게 못 된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마수에 겁을 먹는 생활은 잘못됐다. ――그렇다면, 우리와 같은 아픔을 아는 선인이 일어서야 한다고 사쿠라는 말했다.


――앞으로, 무위한 희생을 내지 않기 위해 힘쓰겠다. 그것이 비록 옆에서 보면 잘못된 방법이라 해도, 결과가 따라오면 반드시 호평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희생된 사람들, 무참히 마수에게 죽임을 당한 아내와 딸도, 분명 기뻐할 것이다. 아사쿠라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에 감화된 자들이 여명의 별로 모여, 사쿠라의 주도로 「쿠나도 강림 의식」 계획을 추진했다.

경계를 관장하는 신을 인간의 그릇에 내려 묶어 둠으로써 그 권능을 인위적으로 행사한다. 그럼으로써 마수의 출현율을 억제하고, 나오는 마수의 랭크를 강제로 낮추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고 사쿠라는 말했다.

그리고 연구자들의 시행 착오 끝에 강림 의식 시스템이 완성되었고, 남은 건 몇 달 후에 신의 동화뿐이었다.


――하지만 그 빛나는 희망에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항상 초연하게 행동하던 사쿠라가, 생각에 잠긴 듯 눈을 내리깔거나, 초조해하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아사쿠라는 그런 사쿠라의 모습을 의문스럽게 생각했지만, 의식이 가까워져 예민해 진 것일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의식 당일, 아사쿠라는 사쿠라가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렀단 것을 깨달았다.

사쿠라는 당초의 예정을 멋대로 변경해, 아사쿠라의 친구의 손녀인 나나세 치도리를 본래의 그릇――츠구미와 바꿔치기한 것이다.


물론 아사쿠라는 반대했다. 이전에 사쿠라에게 친구의 사정――사쿠라 아카네의 이야기를 한 적은 있었지만, 이런 이레귤러를 일으키기 위해 가르쳐 준 것은 아니다.

……게다가 아무리 미워한다고는 해도, 그들의 아이에게 죄는 없다. 그런 아이를 희생시키는 것은 잘못됐다 주장했지만, 사쿠라는 고개를 저으며 아사쿠라의 의견을 기각했다.

그럼에도 한층 더 반항하는 아사쿠라는, 의식 동안 본부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창고에 들어가게 됐고, 그 후의 전말은 전문으로 들은 이야기밖에 모른다.

……결국, 의식은 실패로 끝났다. 치도리를 데려오는 바람에 의식 당일 사쿠라 아카네의 습격을 받아, 의식은 어중간하게 실행돼 미증유의 대재앙을 일으킨 것이다.

의식의 중심지에서 멀리 있었던 점과, 조직의 높은 지위에 있던 아사쿠라는 사쿠라의 시술로 신에 대한 내성이 어느 정도 심어졌기에 어떻게든 목숨을 잃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사쿠라의 마음에 남은 것은 허무뿐이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죽는 편이 더 편했을 것이다.

――뜻을 두었던 정의는 무참히 꺾여,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 그 어쩔 수 없는 사실은, 아사쿠라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웠던 것이다.

그 후 아사쿠라는, 주위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며 죽은 듯 하루하루를 보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단조로운 나날. 찬란해 보이던 과거가 마치 거짓말 같았다.


――그리고 의식 실패로부터 5년 뒤. 대형 병원의 부원장으로 취임한 아사쿠라에게, 한 소녀가 찾아왔다.

조직의 동료였던 젊은 부부의 모습이 남아있는 그 소녀는, 반짝반짝한 눈으로 아사쿠라를 바라보며, 내뱉듯이 말했던 것이다.


"전 도저히 그 날을 용서할 수 없어요. 그러니 내게 협조해 주세요. 아사쿠라 선생님."

"이 늙은이가 말이냐? 내가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제 신이 가르쳐 줬어요. 선생님, 창고 안에 있던 것을 꺼내갔죠? 그걸로 힘을 모아, 다시 의식을 치러요."

"……그것은 원래 사용해선 안 될 것이야. 넌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희생될 진 알고 있는 거냐?"


아사쿠라가 타이르듯 그렇게 말하자, 소녀는 격앙된 듯 소리치며 말했다.


"――그런 것쯤은 알고 있어!!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 의식을 성공시키지 않으면, 아버지들의 죽음은 헛되어 버린단 말이야!! 두 사람의 연구가, 노력이, 전부 헛수고가 된다고!! 그런 건 절대 싫어!!"


그러니까 무엇을 희생해서라도 의식을 실행시킬 것이라고, 소녀는 미친 듯 말했다.


"대의는 있어, 의미도 있어!! 의식이 성공하면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 ――아사쿠라 선생님도, 실은 그날의 일을 후회하고 있는 주제에."

"그, 건……"

"다시 한번, 나와 같이 노력하자. 다행히 본래의 그릇은 아직 살아 있어. 내겐 선생님의 협력이 필요해."


그 미쳤지만 올곧은 눈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


――꼴사납게 끝날 거라 생각했다. 의의도 없고, 의미도 없이, 무위하게 소비되는 인생. 감당 못할 죄는 이미 태산과도 같다. 그 죄를 늘려서라도, 구할 수 있는 생명이 있다면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사쿠라가 남긴 유산을 사용하면, 적잖은 희생자가 생긴다. 하지만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생명이 있다면, 생각할 가치는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대의와, 사건 때문에 무지러진 윤리감. 부서져가던 천칭은, 이윽고 한쪽으로 쏠렸다.

――그렇게 아사쿠라는 소녀의 손을 잡았다. 그것은 결코 스스로가 과거에 원했던 정의가 아닌, 악의 가시밭길임을 자각하면서.

아사쿠라가 그렇게 옛날 일을 회상하고 있는데, 찰칵하고 방문이 열리며 한 소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선생님― 저녁 사 왔어요. 치즈 추가한 피자로 사 왔는데 괜찮나요?"

"……저기 말일세, 자네는 내가 몇 살인지는 제대로 알고 있는겐가? 기름진 음식은 이제 속이 더부룩해서 많이 못 먹는단 말일세."

"에―, 그럼 선생님은 덤으로 준 샐러드라도 드세요. 그럼 건강하겠죠?"

"음― 여전히 취급이 너무하군. 뭐, 상관없네만. 오늘의 MVP는 자네――스오 군이니까."

"에헤헤, 당연하죠!!"


그렇게 말하며, 마법소녀 측에 속해, 정부를 속이고 마화의 마핵을 회수해 온 소녀――아가츠마 스오는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이들의 최종 목적은, 경계를 관장하는 신의 재강림. ――즉 그것은, 나나세 치도리의 실질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아가츠마의 계약신의 협력과, 후에 나타난 사쿠라의 지원자를 자칭하는 신 볼바의 선견의 힘을 빌려, 마핵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남은 것은 나나세 츠구미를 확보해, 의식을 성공시키는 것뿐.


"그 아이를 구하려 했던 사쿠라 군에겐 미안하지만, 당초 예정대로 될 뿐이다. ――여신 볼바의 이야기로는, 츠구미 군 안에 그녀의 정신이 숨어있는 것 같다는 군. 음, 그녀와 이야기하는 게 벌써부터 기다려지는걸."


그렇게 중얼거리듯 말하고, 아사쿠라는 훗 하고 평온한 미소를 지었다.


그릇된 대의를 품은 자들의 밤은, 그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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