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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번역/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2장 46. - 악마의 속삭임

by 린멜 2019. 10. 10.


46. 악마의 속삭임




종종걸음같은 스피드로, 츠구미는 스즈시로의 뒤를 쫓았다. 미로의 길은 사람이 엇갈릴 정도로 넓지만, 나름대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간단하게 놓쳐버릴 것 같다.


츠구미는 달리면서, 그녀의 뒷모습을 관찰했다. 스즈시로의 체격은 치도리보다도 연약하고, 평소 싸움에 몸담고 있는 인간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며, 츠구미는 자신이 한심해졌다.



――결국, 나는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구나.



츠구미의 서브스킬은 이번 상황에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부작용 때문에 스킬을 사용하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자신이 마법소녀임을 그녀들에게 알리지 않는 것은, 하가쿠레 사쿠라의 정체를 숨기는 것이라기보다도, 그런 이유가 더 컸다. 제대로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면, 머릿수에 넣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년배의 소녀들이 문자 그대로 살을 깎아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죄책감 같은 것이 생긴다. 마치, 혼자만 꾀를 부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다음 막다른 곳을 왼쪽으로 가서, 당분간 직진! 마지막에 계단을 오르면 옆에 놓여있는 양동이를 들고 대기! 도깨비가 올라오면 물을 뿌려!"



길 도중에, 스즈시로가 그렇게 외쳤다. 아무래도, 목표지점이 가까운 것 같다.



"알았어. 그 후에는 어떻게 해야돼?"


"내 왼손을 잡고 있어. 스킬을 사용했을 때 비틀거리면, 강하게 잡아줘. 그렇게 하면 스킬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으니까. 아, 손이 피투성이가 되는건 참아줘. 남자잖아?"


"하지만 그 손, 지금도 많이 아프잖아? 잡아도 괜찮은거야?"



스즈시로는 꽉 잡으라고 했지만, 손가락 끝의 상처라는 것은 다른 부위보다 훨씬 아프다. 달린 덕에 체온이 올라가기도 해서, 현재의 아픔도 상당할 것이다. 거기에 자극을 가하면, 고문에 가까운 격통이 일어날 것임에 틀림없다. 츠구미가 그렇게 물었더니, 스즈시로는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참는게 당연하잖아. 아―아, 다친게 오랜만이니까 그런지 조금 울 거 같고. ……하아, 이러니저러니 해도 네가 있어서 다행일지도. 역시 혼자라면 조금 불안했었고."


"……미부 씨를 봤을때도 생각했지만, 아무리 『육화』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무리를 할 필요는 없잖아. 뭣하면 일반인의 보호를 이유로 무시했어도 좋았을 텐데. 그래서 한 명의 마법소녀가 죽었다고, 너희들에게 잘못이 있는것도 아니잖아."



……만약 이 자리에 육화 두 사람이 없었다면, 츠구미는 확실히 상처를 입은 마법소녀를 방치했을 것이다. 그것은 그저 단순히,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츠구미 혼자 그 도깨비를 상대해봤자,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겨우 도망다니면서 시간을 버는게 고작이다. 어쨌든, 츠구미는 그 마법소녀를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츠구미가 그렇게 말하자, 스즈시로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뭐. 그건 나도 생각했어. 수지가 안 맞기도 하고."


"그렇다면, 왜?"


"도망을 가면 멋이 없으니까. 신 님에게 그런 꼴을 보이고 싶지 않은걸."



스즈시로는 그렇게 말하고, 호탕하게 웃으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츠구미도 그 뒤에 이어지듯 발을 내디딘다. 목표로 하고 있는 장소까지, 앞으로 조금 남았다.



"――내게는 말야, 목표가 있어."


"목표?"



계단을 올라서자, 스즈시로는 느닷없이 그렇게 말을 꺼냈다. 츠구미는 물이 담긴 양동이를 들고, 계단 밑을 들여다보며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 츠구미의 모습을 신경쓰지 않고, 스즈시로는 말을 이어나갔다.



"내 계약신은 말야,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간주된 신 님이야. 그래서 평소에는 그다지 힘도 세지 않고, 신 님이 타인과 접촉하는 것을 싫어해서 이름을 말하는 것을 싫어하니까, 지금도 지명도가 거의 없어. 나는 그런 신 님을, 어떻게든 해주고 싶어."



그 스즈시로의 이야기를 듣고, 츠구미는 벨을 떠올렸다. 벨 또한, 사람의 업에 의해 잊혀진 옛 신의 일주이다. 어쩌면, 스즈시로의 계약신과는 공통점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 신 님의 권위를 되찾고 싶다는거야?"


"그렇게 되나? 내가 열심히 마수를 쓰러뜨리면 신 님의 힘도 늘고, 다른 신들에게 약하다고 바보 취급을 당하는 일이 없어져. 그래서말이야, 언젠가 허락을 받아 신전을 세워줄거야! 그러면 내가 마법소녀를 그만둬도 계속 함께 있을 수 있겠지?"



그렇게 말하고, 스즈시로는 꿈을 말하는 소녀같은 미소를 띄웠다. 츠구미는 그 말을 들으면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도꺠비를 주시한다. ――물을 뿌릴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분명 이룰거야. ――그러기 위해선, 우선 여기서 살아 돌아가야만, 하겠지!"



츠구미는 양동이를 뒤집고, 일어서서 스즈시로의 손을 잡았다. 도깨비가 미친 듯이 포효를 지르며 쇠몽둥이를 휘두르지만, 그것은 계단 위까지는 닿지 않는다.



그리고 계단을 뛰어 올라온 도깨비의 얼굴이 겨우 보이는 순간, 스즈시로는 스킬을 발동시켰다.



"――나야말로, 진실을 배제하고 허식을 긍정하는 사람일지니."




◆◆◆




스즈시로 란이라는 인간은, 마법소녀라는 힘을 빼면, 기본 스펙은 거의 범인에 가깝다.


어릴 때는 공부도 운동도 잘 못하고,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이 없는 평범한 아이였다. 부모님도 맞벌이로 그녀에게 흥미가 없었고, 지금은 친구가 많지만, 당시에는 거의 친구도 적었기 때문에, 아주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공허한 나날 속에서, 란은 우연히 받은 병원의 검사에서, 마법소녀로서의 적성이 상당히 높다고 진단받았다. 그리고 부모님의 말에 따라, 마법소녀 후보생으로서의 생활을 보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기다리던 것은 더욱 고통스러운 날들이었다.


특별나게 뛰어난 데가 없는 란은, 많은 후보생 중에서도, 성적이 나빴다. 주위로부터 바보 취급을 받고, 사사건건 실패를 멸시받았다. 그런 생활이 반년 정도 계속 되었을 무렵, 교관도 더 이상은 소용없다고 판단했는지, 제적을 선고했다.


그리고 최후의 기념으로, 여러 신이 마법소녀를 찾으러 오는 『카미노마(神の間)』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무도 란이 신에게 선택받을 줄 몰랐고, 그저 추억만드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란은, 『운명』을 만났다.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져 역사로부터 매장된 신은, 불출의 소녀를 선택했다. 그것을 운명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그날부터, 란의 인생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자신에게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교우관계도 현격히 넓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노력이 결실을 맺어, 육화라는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란은 언제든 신에게 감사하며, 신앙에 가까운 경의를 갖고 있다. 그야말로――신의 심증을 위해서 목숨을 걸 정도로.



"미로 안에 뿌려진 것. 그것은 【물이 아니니】 ――모든 것을 불태우는 【업화】이다!!"



란의 계약신은, 허식과 혼돈을 관장하는 이집트의 신이다. ――그 이름은 『게레그』. 정의와 진실을 관장하는 마트의 대극에 위치한 자이다.


그 권능을 모티브로 한 스킬의 이름은 『사상개변』. 세계의 이치를 일부 바꾸는 가공할 능력이다.



란의 선언과 함께, 물이 흔들리듯 파란 불꽃으로 변해간다. 동시에 미로 곳곳에서 검은 연기와 나무 타는 냄새가 퍼지면서, 순식간에 주변을 불길이 가득 메웠다.


불덩이가 된 도꺠비가, 소리를 지르며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다. 그 계단에도 불이 옮겨붙어, 저래서는 더 이상 오르기 어려울 것이다.


흔들, 하고 란의 몸이 기운다. 이 스킬은 매우 강력하지만, 힘의 소비가 꽤 크다. 그런 고로 부작용――수마는 순식간에 란의 의식을 앗아간다.



"――읏, 아, 파아."



완전히 의식이 떨어질 뻔했던 순간, 란의 왼손에 격통이 달렸다.



"일어나!! 빨리 도망치자!!"



초조해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츠구미가 외쳤다. 란은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며, 지금의 상황을 파악했다. 불길이 엄청나, 이대로 가다가는 둘 다 타죽을지도 모른다. 멍해 있을 틈이 없었다.



"아, 하하. 그렇구나, 도망가야지."



그렇게 말하고, 란은 또 하나의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와 동시에 닥쳐오는 졸음을, 츠구미의 손을 강하게 잡음으로써 참으면서, 불꽃 속으로 한 발 내디뎠다.



"어이, 거기는 벌써 불이――"



츠구미가 란의 어깨를 붙잡으려 할 때, 불바다가 길처럼 둘로 갈라졌다.



아연실색하며 불의 길을 바라보고 있던 츠구미의 손을 놓고, 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내 또 다른 스킬은 『행운』. 발동하는 한 이 불꽃은 완전히 무효화 할 수 있어. ――하지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짧으니까, 이제 갈게!!"





◆◆◆





활활 타는 불바다에서, 도깨비는 온몸의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단단했던 푸른 피부는 불타오르고, 불타 떨어진 목재가 도깨비의 몸을 깎아낸다. 그 모습은 더 이상 도깨비라 부를 수 없고, 검붉은 육괴(肉塊)와 같았다.



반사반생의 도깨비의 머릿속에는,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최초로 성가신 마법소녀를 제압했는데, 이 꼴은 무엇인가. 그것도 다, 저 인간들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도깨비는 신음소리를 높인다.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마법소녀라는 최대 전력을 배제하고, 뒤는 말려든 인간――마법소녀의 적성자를 사냥할 뿐인 간단한 일이었는데, 완전히 봉쇄당했다. 결정타의 부족과, 발이 느린 것이 큰 패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 밖이었던 것은 그 세 명――현역의 마법소녀들이다. 그녀석들만 없었다면, 일이 잘 풀렸을텐데.



도깨비는 점점 탄화해가는 자신의 몸을 안타까워하면서, 포효했다.



――아아! 다시 한 번 기회를 얻는다면, 반드시 그놈들을 죽여버릴텐데!!



원망의 소리를 지르면서, 도깨비의 숨이 끊어지려고 하는 그 때――천계(天啓)가 도깨비의 머릿속에 울렸다.



『그런가. 그럼, 다시 한 번 다녀와라.』



그것은, 마치 악마의 속삭임 같았다. 도깨비의 몸을 태우던 불길은 어느새 검은 안개가 되어, 단단한 피부로 변해간다. 마치, 새로운 몸이 만들어 바뀌고 있는 듯 했다.



『자아, 가라. ――역할을 다 해라.』



불가사의한 목소리에 이끌리면서, 검은 도깨비는 무너지는 미로를 걸어간다. ――그 모습은, 마치 지옥의 간수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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