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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번역/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3장 83. 과거로부터의 편지

by 린멜 2019. 12. 24.


83. 과거로부터의 편지






"오늘도 반응이 없어? 눈은 깨어있는거지?"


"네에. 깨어있고 의식은 있습니다만, 이쪽의 물음에는 전혀 반응하지를 않아서……"



히츠기가 입원해 있는 병실 앞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그런 대화를 하고 있었다. 히츠기는 어렴풋한 의식 속에서, 그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몸의 상처는 치유계 능력을 가진 마법소녀의 힘으로 거의 완치되었지만, 마수의 침식의 영향은 미지수기이 때문이지. 어떠한 정신장애가 남아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아. ……이것만은, 시간이 해결해지길 바랄수밖에 없군."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면회 신청이 다수 와 있는데, 거절하는게 좋을까요? 그중에는, 십화 분들도 계시는데."


"흠. 동료와의 만남은 좋은 의미로 자극이 될 수도 있겠지. 하루에 세 명까지라면 허가를 주게. 상대의 선정은 자네에게 맡기지."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의사는 떠났다. 병실에 들어온 간호사는 히츠기를 애처롭게 보면서, 히츠기의 팔에 링거를 교환하고 있다.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뭔가 아주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 마냥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히츠기가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간호사는 방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래도, 히츠기가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 작업은 끝난 것 같다.


――여기서의 시간의 흐름은 매우 불가사의하다. 문득 눈을 감는 순간, 하늘의 색이 바뀌어 있기도 한다. 둥실둥실, 흔들흔들 하고 의식이 안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현실을 인식하는 것을 마음이 거부하는 것 같았다.



눈을 감고, 다시 눈을 뜬다. 그 때, 덜커덕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히츠기 씨. 몸은 어떠신가요?"



그렇게 말하며 침대 옆 의자에 걸터앉은 빨간 머리의 소녀가,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히츠기에게 물었다.



"답신은 아직 못 하는 건가요. ……그럼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보고는 해 둘게요."



빨간 머리의 소녀――토노 스미레는, 조용히 말을 이어나갔다.



토노가 히츠기에게 고한 것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


첫째는, 이번 히츠기의 폭주는 『정부의 노후화로 인한 가스폭발』로 처리되었다는 것.


두번째는, 이 건에서 히츠기가 책임을 질 일은 없다는 것.


세번째는――앞으로, 히츠기가 마법소녀로서 복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한쪽 폐의 손상――그 자체는 그렇게까지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의 경우, 신력을 모으는 그릇이 마수의 침식에 의해 거의 파괴되어버렸습니다. 한번 망가져 버린 것은, 다시 원래대로는 돌아가지 않아요. 유감이지만, 마법소녀로서는 은퇴할 수 밖에 없겠네요."



담담하게 말을 자아내는 붉은 머리의 소녀를 바라보며, 히츠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이야기 내용은 그다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을텐데, 어째서인지 가슴속 깊은 곳이 아프단 느낌이 든 것이다.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끈, 하고 머리가 아파온다. 무의식중에 머리를 감싸고 얼굴을 찡그린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 둘까요? 조만간 또 오겠습니다. 그 땐,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말하고, 빨간 머리의 소녀는 일어났다. 그리고 문에 손을 대고, 소녀는 돌아보며 아름다운 입술을 열었다.



"히츠기 아이리. 당신은 훌륭한 마법소녀였습니다. ――전, 당신을 자랑스럽다 생각합니다."



그것만 말하고, 빨간 머리의 소녀는 발빠르게 병실을 떠나갔다.


――훌륭한, 마법소녀. 그 말을 마음속으로 반복하자, 잘 알 수 없는 따뜻한 무언가들이 히츠기의 가슴속에 퍼져나갔다. 둥실둥실해서, 어딘가 진정되지 않는다. 그렇지만――결코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 후에도, 몇몇 소녀들이 히츠기의 병실로 찾아와,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돌아갔다. 웃는 사람, 우는 사람, 화내는 사람, 반응은 다양했지만, 모두 마지막에는 「또 오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떠났다.



조금씩, 마음속에 작은 불씨가 쌓여간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몇 번이나 밤이 찾아왔는지 떠올릴 수 없게 되었을 무렵, 히츠기가 어렴풋이 창 밖에 흐르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자, 한 명의 방문객이 나타났다.



긴 검은머리에, 색소가 옅은 연갈색 눈. 앤틱조의 원피스를 입은 키가 큰 소녀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작은 종이봉투를 히츠기의 앞에 내밀었다. 초록색의 네잎(四葉)이 그려진, 사랑스러운 종이봉투다.



종이봉투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히츠기에게, 소녀는 억지로 종이봉투를 쥐게 하고, 옆에 있던 의자에 살포시 걸터앉았다. 그리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제, 신기한 꿈을 꾸었습니다."



소녀는 종이봉투를 가리키며, 「안을 보세요」라고 히츠기를 재촉했다. 시키는대로, 내용물을 꺼낸다.



――그곳에는, 구겨진 갈색 봉투가 들어 있었다. 겉에는, 번진 글씨로 【히츠기 아이리 님에게】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얼마 전 파티 때, 그 봉투의 발신인의 여동생에게, 당신에게 전해달라고 부탁받았습니다. ……실은 당신이 회복되고 나서 전해주려고 했습니다만, 사정이 좀 바뀌었으므로."



그렇게 말하며, 검은머리의 소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편지를 전해주러 온 여동생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여자아이가, 꿈속에서 제게 말하더군요. ――그 편지를, 히츠기 씨에게 전해달라고. 신기하지요, 저는 그 아이 본인은 만난 적도 없는데."



그렇게 말하는 검은머리의 소녀를, 히츠기는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의식은 평소보다 뚜렷했다.



손에 들고있는 봉투에는 물이 흘러내린 듯한 흔적이 있어, 어딘가 오래된 듯한 느낌을 들게 해준다. 그리고 히츠기는, 옆에 쓰여진 발신인의 이름으로 눈길을 돌렸다.



――유메지 요츠바(四葉). 그 이름은, 낯이 익었다.


흐릿한 사고 속에서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소중한 사람. 마법소녀로서의 『히츠기 아이리』의 원점이 된 귀여운 후배. ――지금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존재이지만.



뭔가 서글픈 기분이 들어, 고개를 숙인다. 잃어버린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것은,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나중에라도 좋으니, 그 봉투를 열어보셋요. ……간호사에게는, ㅎ마부로 버리지 말라고 전해둘 테니까요."



검은머리의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피곤해 보였다.



"……모두 히츠기 씨의 빠른 복귀를 바라고 있는 것 같지만, 조금 느긋하게 쉬어도 벌은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히츠기 씨는, 너무 열심히 일했으니까.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다음에는, 맛있는 과자를 가져올게요."



그렇게 말하고, 검은머리의 소녀는 병실을 빠져나갔다. 혼자 방 안에 남겨진 히츠기는, 봉투를 응시하며, 조심스럽게 봉투의 닫힌 부분을 찢었다.



지이익 하고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울린다. 히츠기는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꺼내려고 했다. 제대로 잡지 못한 작은 무언가가, 침대 위로 떨어졌다. 그것은, 남색의 책갈피였다.



――그 책갈피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세계가 선명한 연둣빛으로 물든 기분이 들었다.


눈꺼풀 속에서, 한 소녀가 옛날처럼 히츠기에게 웃고 있었다. ――아이리 선배, 하고 귓가에서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 아앗……"



쉰 듯한 목소리가, 히츠기의 목구멍에서 새어나온다. 그건 틀림없는 오열이었다. 닫혀있던 마음의 상자에서, 그동안 잠들어 있던 감정이 쏟아져 나오듯이 흘러나온다. 심장이 아플정도로 맥박이 뛰고, 가슴이 조여온다.



마치 열중하고 있는 듯이 떨리는 손으로, 히츠기는 편지를 펼쳤다.



『히츠기 선배에게


이 편지가 당신에게 닿을것을 믿고, 글을 남깁니다.



약속을 어기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결코 선배에게 책임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제 마음의 약함이 원인입니다. 저는 짓눌리는 중책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선배와 만난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습니다.



후보생 시절에 아이리 선배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저는 꿈도 가지지 못한 채, 더 일찍 자살을 선택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신과 함께 있을 때 만큼은, 저는 그저 【후배】로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제게 있어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는, 말만으로는 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선배만큼은 마음대로 살아주세요. 그것만이 제 소원입니다.



편지와 함께 들어있는 책갈피는, 원래 선배에게 주려고 했던 물건입니다. 괜찮다면 받아주세요.



당신의 못난 후배 유메지 요츠바』



히츠기는 편지를 다 읽고, 남색의 책갈피를 손에 쥐었다. 그 책갈피의 표면에는, 말린 네잎클로버가 박혀 있다. 아무래도 직접 만든것 같았다. 곳곳에 거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더욱더 소박함을 복둗우고 있었다.



"나, ――정말로 네 도움이 될 수 있었던걸까."



투명한 눈물을 흘리면서, 히츠기는 책갈피를 부드럽게 껴안았다.



――소중한 후배. 자신의 일. 지금까지의 일. 그리고, 저지른 죄. 히츠기는 그 모든것을 떠올렸다.



"있잖아, 요츠바. 나, 당신에게 당당해질 수 있게, 지금까지 계속 노력해 왔어. 아무리 마수퇴치가 힘들어도, 무서워도, 귀찮아도, 약한 소리같은건 한번도 내뱉지 않았어. 그렇지 않으면, 당신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재능이 있음에도 마법소녀가 되지 못한 그녀와, 재능이 없는데도 마법소녀가 되어버린 자신. 마치 정반대의 처지였지만, 그녀와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맞았다.



마법소녀의 길을 포기한 요츠바가 정부의 직원이 되겠다고 했을 때, 히츠기는 그녀에게 「그럼, 난 훌륭한 마법소녀가 될게」라고 약속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 약속이었지만, 그 얼마 뒤에 요츠바는 죽어버렸다. 히츠기는 그 약속을 깨지도 못하고, 질질 마법소녀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히츠기의 안에서 요츠바의 존재는 컸던 것이다.



그리고 히츠기가 마법소녀로서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헀을 무렵, 히츠기는 요츠바의 말을 떠올렸다. ――마법소녀를 그만둔다고 해도, 그녀 대신 정부의 직원이 될 수 있다면, 약속을 어기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엉뚱한 폭론일 뿐이다. 그러나, 그 때의 히츠기에게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눈물을 닦으며 옆을 향하자, 비치된 테이블 위에 많은 선물이 놓여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병문안을 온 후배 마법소녀들이 두고 갔을 것이다.



"내가 멍떄리고 있던 사이에, 많은 아이들이 병문안을 와 준 것 같아. ……내게는, 이제 걱정받을 자격따윈 없는데."



일념으로 노력해, 계속 달려나가, 히츠기는 요츠바의 소원을 이루려고 했다. 정부로부터의 신임도 받았고, 다른 마법소녀와의 관계도 양호. 모든것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은퇴를 목전에 둔 히츠기에게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정부 습격범이라는 터무니없는 오명이었다.



……토노 스미레는, 히츠기에게 책임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지금까지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거의 확실했던 정부로의 내정도, 취소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마수에게 의식을 빼앗기고 있었을 때의 일은, 어렴풋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유키노와 하가쿠레들을 공격했던 것만은 기억한다. 흩날리는 핏빛만이, 뇌리에 새겨진 것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미안해, 요츠바. ……나, 마지막에 실패해버렸어."



참회하듯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무릎을 감싸며 고개를 숙인다.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요, 선배. 이제, 약속같은건 신경쓰지 마세요. ――이 이상, 죽은 사람에게 얽매이지 마세요』



오열하며 계속 우는 히츠기의 귀에, 그런 작은 목소리가 닿았다. 핫 하고, 얼굴을 들어올린다. 하지만 그곳에는 당연하듯이 아무도 없다. 히츠기는 낙담한 듯 한숨을 내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겠지. 잘못 들은게 당연――"



그 때, 은은한 금목서의 향기가 났다. 그녀가 즐겨 쓰던 향낭과, 같은 향. 이끌리듯이, 입원복의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손가락 끝에, 작은 물건이 닿았다.



"――아,"



엄지손가락만한 크기로 꺾인, 철 지난 금목서. 그 가지 끝에는, 작은 네잎클로버가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여기에 있어, 라고 말하고 싶은 듯이.



"후, 읏, 으아아아앙!!"



――견딜 수 없었다. 소리지르듯 거칠게 날뛰는 감정을 토해낸다. 병실로 달려온 간호사가 「괜찮으신가요!?」라고 묻지만, 그마저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 누구도 믿지 않을게 틀림없다. 하지만 자신만은 믿자. 요츠바는――이렇게 못마땅한 선배(나)를, 죽고 나서도 소중하게 생각해주고 있었다고.



그날 울며 매달리던 히츠기는, 의식을 잃듯이 잠이 들었다. ――꿈의 세계에서 두 사람이 만났는지는, 신만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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