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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번역/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4장 86. 예상 밖의 만남

by 린멜 2020. 1. 1.


86. 예상 밖의 만남






계절은 장마철에 접어들어, 어딘가 쌀쌀한 공기가 감돌고 있다. 그런 휴일이던 어느날, 츠구미는 주륵주륵 내리는 빗속, 자양화가 아름답게 핀 정원에 홀로 서 있었다.



푸른 자양화가 활짝 피어있는 정원에는, 한 군데만 붉은 자양화가 군생하는 장소가 있었다. 그 선명한 색채는, 마치 피를 그대로 꽃으로 만든 듯한 섬뜩함이 느껴졌다.



"――예쁘지? 실은 그 빨간 자양화의 아래에는, 특별한 비료가 사용되고 있어."



츠구미가 멍하는 붉은 꽃을 바라보고 있는데, 등 뒤에서 그런 말을 걸어왔다.



"저기, 설마 시체라고 하지는 않겠죠?"


"아하하. 벚꽃나무 아래의 이야기도 아니고, 그럴리가 없잖아. ――정답은 조개껍질. 조개껍질에 포함되어 있는 성분의 영향으로, 이곳의 자양화만은 파랗게 물들지 않아. 잘 되어 있지?"


"조금 불길하긴 하지만요. ――그래서, 오늘은 대체 무슨 용건이 있어서 이런 곳에까지 저를 불러낸건가요, 메부키 선배."



츠구미가 어이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자, 메부키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뭐, 조금 네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말야."



그리고 츠구미는, 신난듯이 근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메부키의 뒤를 따라, 정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여전히 바쁘게 지내는 것 같다.



자양화의 길을 빠져나간 끝에는, 앤틱조의 호사스러운 건물이 보인다. 크기로 판단하면, 호텔 같은 걸지도 모른다.


호텔에 인접한 유리로 된 카페 테라스에는, 품위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각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그 상류 사회의 분위기에, 왠지 조금 주눅이 드는 것만 같았다.



츠구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천천히 메부키가 츠구미의 오른손을 잡았다. 그리고 선도하듯이 손을 잡고, 호텔 입구로 걸어간다.



"……혹시 여기에 들어가는건가요?"



설마하는 생각에 츠구미가 그렇게 묻자, 메부키는 역시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응?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니, 보기만 해도 고급스러운 곳이라…… 사복을 입었는데, 입점거부같은건 안하나요?"



주저하며 츠구미가 그렇게 묻자, 메부키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큭큭 하고 작게 웃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여기는 그렇게까지 격식이 높은 곳도 아니고, 애초에 우리 계열이 운영하는 장소니까말야. 사전에 개인실 좌석도 예약했으니, 아무 걱정할 필요 없어."



시원시원하게 세레브한 발언을 하면서, 메부키는 호텔 입구로 발을 내디딘다.


……이런 자리를 마련할 정도의 『조금 부탁할 것』은, 대체 어떤 터무니없는 것일까.



츠구미는 귀찮아질 것 같은 낌새를 느꼈지만, 상대는 여러가지로 은혜를 입은 선배다. 역시 이야기도 듣지 않고 거절할 수는 없다. 이렇게 츠구미는, 호텔 안에 있는 찻집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







"유학생, 인가요?"


"맞아. 며칠 전에 외무성을 통해 연락이 왔는데, 내 먼 친척이 갑자기 일븐으로 유학을 오게 된 것 같아서 말야. 기간은 3년 정도지만, 그동안 집에서 돌보게 되었어. 감시라는 명목도 있지만, 이러니저러니해도 친척이니까말야. 가능한 한 도와주고 싶어."



그런 메부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츠구미는 주문한 초콜릿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역시 이런 곳이 내놓는 과자라 그런지, 매우 농후하고 맛있다. 다만, 메뉴표에 가격이 실려있지 않은 것이 무서운 부분이지만.



――그런데 유학생이라. 일부러 일본에 오다니, 꽤 근성이 있구만.



현재 일본은 쇄국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외국과의 연결을 완전히 끊은것은 아니다. 극히 미미하지만, 이렇게 유학생을 받는 경우도 있다. 뭐 그건 메부키의 먼 친척같은, 신원이 확실한 인간에 국한되는거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세간의 눈은 외국인에 대해 곱지 않다. 아무리 유학이라는 명목이라지만, 사람들로부터 심한 대우를 받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이야기를 제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게말야, 츠구미 군. ――그 애의 전입처가 네 반이라서말야. 마침 나이는 너희 학년과 같으니까. 사능하다면 사이좋게 지내주길 바라."


"……진심이에요?"



얼굴을 경직시키면서, 츠구미는 그렇게 되물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츠구미가 소속된 3학년 F반은 소문난 문제아 반이다. 그런 장소에 여러가지 의미로 민감한 존재――유학생을 넣다니, 머리가 이상하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심한 소리를 하네. 나로서도, 사실은 내 대학에서 돌보고 싶었거든? 그런데 본인이 어떻게든 동년배 애들과 고등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간청하고 있어서말야. 편차값이나 통학을 생각하면, 내 모교밖에 선택지가 없어."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제 반을 지정하지 않아도……"



츠구미가 걱정스럽게 말하자, 메부키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츠구미 군이 보기엔 F반은 귀찮은 반일수도 있겠지만, 거기에는 나같은 『외톨이』에게 있어선 꽤나 편한 반이었어. 적어도 내 대의 F반 애들은, 이상한 색안경으로 사람을 보는 일은 없었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거야."



그렇게 말하며 상냥하게 미소짓는 메부키에게, 츠구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확실히 F반에는, 이상한 실험이나 잘 모르는 장난에 휘말리거나, 시시한 일로 싸우기도 하지만, 츠구미 자신이 어쩔 수 없는 것――유소년기의 기억이 없는 것이나, 부모가 없는 것으로 야유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폐를 끼치는 인상이 강하기 때문에 잊어버리기 쉽지만, 그런 사람으로서 중요한 부분은 비교적 잘 되어있는 것이다.



"……뭐어, 메부키 선배의 친척이라는 것을 미리 말해두면, 그렇게까지 이상한 시비는 걸지 않을거라 생각하지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말야. 그렇지만 봐, 츠구미 군의 반에는 저게 있잖아? 그것만 걱정돼."



저거, 라고 메부키가 말한, 한 인물이 츠구미의 뇌리에 떠오른다.



"아아, 그러고보니 유키타카 녀석이 있었구나. ……아―, 설마라고는 생각하지만 『조금 부탁할 것』이라고 하는건……"


"아하하, 이해가 빨라서 좋네. 츠구미 군――네가 아마리 녀석이 그 아이에게 간섭하는지 못하게 지켜봐 줬으면 좋겠어. 부탁해도 될까?"


"치사해요, 이 흐름에서 싫다고는 할 수 없잖아요. ……뭐, 할 수 있는 데까진 하겠지만요. 너무 기대하지는 말아주세요."


"응 응. 지금은 좋은 답변만 받아도 충분해. 갑작스럽지만, 다다음주 월요일쯤부터 등교할 예정이니까, 잘 부탁할게. ――게다가 그 아이의 사진을 봤는데, 꽤 귀여운 아이더라. 어떤 의미론 이득 아닐까?"



귀엽다는 말에, 츠구미의 어깨가 들썩인다. 귀찮은 일을 껴안는데 있어서, 그건 모티베이션을 좌우하는 중요한 정보이다.



"헤에, 역시 생긴건 선배를 닮은 느낌인가요?"


"눈매같은건 비슷할지도 모르겠네. 선이 가늘어 보였으니까, 운동같은건 별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사진에서는 꽤 온화한 인상이었으니까, 그것만이 조금 걱정되지만."



――어른스러워 보이는 메부키 선배를 닮은 여자아이와 보내는 학교생활.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츠구미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똑똑똑, 노크 소리가 울렸다. 메부키가 「들어오세요」라고 대답하자, 정장을 입은 장년의 남성이 인사를 하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메부키 님. 사전에 전해주셨던 손님이 오셨는데, 이 자리로 모셔도 괜찮겠습니까?"


"아아, 이제 왔구나. 안내해도 괜찮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러고는 퇴실하는 남자의 등을 보면서, 츠구미는 메부키에게 물었다.



"뭔가 다른 약속이 있으셨나요? 혹시 방해가 된다면 저는 자리를 비울게요."



메부키는 바쁘다. 츠구미와의 예정 후에, 다른 사람과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해, 츠구미가 선의로 그렇게 말하자, 메부키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좀 곤란해. 내 손님이라기보다는, 츠구미 군의 손님이라고 말하는게 맞거든."


"저의?"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갸웃했지만,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혹시, 아까 이야기했던 먼 친척 여자애가 얼굴을 보여주러 온 걸까. 선배는 사람을 놀래키는 것을 좋아하니,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생각한 츠구미가 두근거리며 기다리고 있는데, 노크와 함께 개인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츠구미는, 문으로 들어온 인물의 언굴을 보고, 자기도모르게 오른손으로 입을 막았다.



"……굉장히 귀찮은 곳을 예약했구만. 길을 잃을 뻔 했다고."


"죄송해요. 이 계절은 자양화가 매우 예뻐서, 부디 한번 여기 정원을 봐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히고로모 씨는 연구실에서 나오려 하질 않잖아요? 다들 걱정한다구요."



눈살을 찌뿌리고 무뚝뚝하게 말하는 남자에게, 메부키는 기 죽지 않고 그렇게 답했다.



……보기만 해도 사이가 좋아 보이는 것도 신경이 쓰이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메부키는 이 남자를 『히고로모』라고 불렀다. 그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히고로모 유키. 마법소녀의 활동 및 생태이론, 그리고 마핵 에너지 전환에 있어서의 효율성 등,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는 유명한 연구자이다. 바쁘기 때문에 좀처럼 미디어에는 나오지 않지만, 츠구미도 얼굴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런 인불이 이런 곳에?



츠구미가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 츠구미의 존재를 알아챈 히고로모가 다가와, 느릿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아, 네가 그 【나나세 츠구미】인가. 메부키에게 이야기는 들었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오늘은 잘 부탁해."



그렇게 말하고 내밀어진 오른손과, 옆에서 웃고 있는 메부키를 번갈아 본다. ……확실히 예전에 메부키와 만났을 때 히고로모의 이야기는 나왔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마주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서프라이즈 치고는, 질이 좀 나쁜 거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츠구미는 히고로모의 오른손을 잡았다. 이렇게 된 이상, 별 수 없다.



"저기, 저야말로 잘 부탁 드립니다. 히고로모 씨."



츠구미가 굳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대답하자, 히고로모는 별난 것을 본 것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모습은 마치, 츠구미를 통해 다른 누군가를 보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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