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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번역/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4장 108. 기억의 열쇠

by 린멜 2020. 5. 11.


108. 기억의 열쇠





토노의 발치에서, 서서히 붉은 불꽃이 퍼져간다. 그 불꽃은, 순식간에 컨테이너 안을 침식했다. 치도리의 바로 옆에도 불길은 번졌지만, 이상하게도 뜨겁지는 않았다.



――하지만, 납치범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뜨, 뜨거워, 아퍼!!"


"그만!! 날 불태우지 말아줘!!"



납치범들은 필사적으로 그런 말을 외치며, 달아날 곳 없는 컨테이너 안을 기어다니고 있다. 그런 아비규환의 풍경 속에서, 토노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컨테이너 중앙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자애의 성모와 같으면서도, 무서운 단죄자처럼도 보였다.


치도리는 그 광격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불길의 바다를 건너듯 컨테이너 안을 달려온 낯익은 소녀에 의해, 현실로 되돌아갔다.



"치도리 짱 괜찮아!? 아아, 피가 이렇게나……"


"스즈시로, 씨?"



치도리가 적잖이 아는 상대――스즈시로 란은, 매우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물이 스며든 수건으로 치도리의 얼굴을 부드럽게 닦았다. 순식간에 검붉은 색으로 물든 수건을 보고 슬픈 듯 눈썹을 찡그린 스즈시로는, 위로하듯 치도리의 등을 어루만졌다.



"――미안해, 늦어서. 우리가 좀 더 빨리 왔더라면, 이렇게 다치지 않아도 됐을텐데."



그 스즈시로의 말에 치도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 상처는, 스스로의 약함 때문에 생긴 것이다. 도와주러 온 그녀들의 잘못이 아니다.



"전 괜찮아요. ……그보다도, 이 아이가 걱정이에요. 그 납치범이 말하는걸 들었는데, 아무래도 의식을 빼앗는 약물을 사용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저도 같은 것을 투여받은 듯 해서, 솔직히 이제 의식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서……"



치도리는 그렇게 말하며, 팔에 안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이 소란 속에서도, 도무지 깨어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약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몸에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응, 알았어. 여기에서 나온 후에, 병원에서 제대로 조사받도록 하자. 경우에 따라서는 내가 안전한 해독약을 준비해 줄 테니까 안심해! ――그러니까, 이제 푹 쉬어. 뒷 일은, 우리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비틀거리며 겨우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치도리에게, 스즛히로는 밝은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분명, 이 쪽을 안심시키기 위해 일부러 밝게 대해주는 것이겠지. 그 마음씀씀이가, 울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네, 잘, 부탁드려요……"



그렇게 말하고 긴장을 푼 순간, 치도리는 쓰러지듯 의식을 잃었다. 사실, 치도리의 몸은 이미 한계였던 것이다. 머리의 부상에, 투여된 약. 그리고 무리해서 능력을 사용한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앗, 위험해. ……그래, 치도리 짱도 힘들었겠지."



스즈시로는 바닥에 쓰러질 뻔한 치도리를 간발의 차로 받치고는, 걱정스러운 듯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납치범들은 토노의 불꽃――술자에게 지정된 것 이외를 태우지 않는 특수한 불에 의해서 기어다니고 있어, 스즈시로가 나설 자리는 없다. 토노는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으로 납치범들을 바라보며, 손에 든 총――고무탄으로 그들의 의식을 끊고 있다.


……만약을 위해 돌입용으로 즉효성의 수면제를 준비했지만, 그보다 먼저 토노가 컨테이너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려서, 그것도 소용없게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재빠른 행동 덕분에, 피해자인 그녀들이 괜한 상처를 입지 않은 것은 다행일 것이다. 여자의 몸에, 큰 상처따윈 어울리지 않으니까.


――어떻게든 배에 실리기 전에, 두 사람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은 그다지 좋지는 않다. ……빨리 이 두 사람을 병원에 데리고 가야만 한다.


그러나 스즈시로의 완력으로는, 두 사람을 운반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한 스즈시로는, 능력을 이용해 자신의 옆에 물덩이를 불러냈다. 그리고 그 물을 능숙하게 손 형태로 만들어, 치도리와 또 다른 소녀를 안아올렸다.


그렇게 기절해 있는 납치범들을 피해 출구를 향해 나아가는데, 눈 앞에 쓰러져 있던 남자가 천천히 일어섰다. 군데군데 벌레에 물린듯 한 상처를 입은 것 같지만, 화상이라고 할 정도의 부상은 없었다. 아무래도, 너무 큰 상처를 입지는 않도록 토노가 화력을 조절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남자는 멍한 눈으로 고개를 들고는, 핏발이 선 눈으로 물의 손을 바라보았다.



"무, 물? ――그 물을, 내게 넘겨――!!"



그것은, 아마도 본능에 의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매달리듯 치도리들을 태우고 있는 물의 손을 향해 비틀비틀 뛰기 시작했다.



"좋아, 원하는 만큼 마셔도 좋아? ――마실 수 있다면 말이지."



스즈시로는 그렇게 말하고 남자를 향해 손을 뻗어, 무엇인가를 꽉 쥐는 동작을 했다. 그러자 남자의 주위의 공기가 흔들리며, 물덩이가 남자의 얼굴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 물은 남자의 목에 감겨붙어, 마치 생물처럼 꿈틀거리며 남자의 목을 조여간다.



"아, 윽, 숨이……"


"물 같은건 조사 뒤에 천천히 마시면 되잖아. ――아아, 여자아이에게 몹쓸 짓을 하는 놈들따위, 다 없어졌으면 좋을텐데."



산소 결핍으로 쓰러진 남자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며, 스즈시로는 빠른 걸음으로 컨테이너 밖을 향했다.



"저기, 이 두사람을 서둘러 병원으로 옮겨줘! 부상도 입었고, 뭔가 이상한 약을 썼다고 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스즈시로 씨와 토노 씨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난 같이 병원에 따라갈게. 토노 씨는 아직 좀 바쁜것 같으니, 긴급할 땐 먼저 이동해도 괜찮다고 했으니까."


"그런가요. 그럼 이쪽으로."


스즈시로는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정부 직원에게 말하고, 두사람을 전이관리부의 마법소녀가 있는 장소로 옮겼다.


전이관리부의 여성은 피투성이의 치도리를 보고 약간 동요하는 행동을 보였지만, 그것을 꾹 눌러 담담하게 전이의 준비를 진행했다. ……분명 아는 사람의 이런 모습은 참기 어려울 것이다.


――그녀의 이 모습을 보면, 그(츠구미)는 어떤 생각을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스즈시로는 두사람이 빨리 회복되기를 빌며 눈을 내리깔았다. 지면에 떠오른 마법진이, 스즈시로들을 병원으로 옮겨간다. 빛이 사라진 뒤에는, 아무도 없는 공간만이 남아있었다.





◆◆◆





"그러면. 이걸로 전부 정리가 끝난걸까."



그렇게 말하면서, 토노는 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겼다. 탁 하는 소리가 나면서, 동시에 컨테이너 안의 불이 꺼져간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납치범――어느 나라의 공작원들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토노는 뇌쇄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돕는 것이 조금 빠듯했어. 반성해야겠는걸. 뭐, 내가 조금 늦었다고 해도, 어차피 당신이 움직였겠지만 말야. ――그렇지, 하가쿠레 씨?"



토노의 말에 재촉하듯, 덜컹, 소리를 내면서 나무 상자 뒤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토노 씨. 당신은 대체, 어디까지 알고 계신 건가요?"



심한 두통을 견디려는 듯 왼쪽 눈을 누르는 하가쿠레 사쿠라――츠구미는, 신음하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토노의 편지를 따라 이 장소에 도착한 츠구미는, 건실해 보이지 않는 패거리들이 드나드는 컨테이너로 전이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츠구미가 나무 상자 뒤로 전이했을 때, 치도리는 이미 납치범과 맞서고 있는 중이었다.


츠구미는 순식간에 실을 둘러쳐, 치도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은발의 여인의 오른손에 극세사를 감았다. 만약 그 방아쇠를 당기기라도 하면, 그 손을 총채로 잘라내 버리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의 츠구미는, 냉정하지 못했다. 능력을 사용해 인간을 상처입힌다――그것에, 일절 주저하지 않았을 정도로.


하지만 그 계획은, 갑작스레 나타난 토노에 의해 막혔다. 총을 든 여자를 감싼 실은 불길에 태워졌고, 총은 초콜릿처럼 녹아버렸다. 그리고, 츠구미가 멍하니 주위를 응시하는 사이에, 토노는 순식간에 납치범들을 제압해 버린 것이다.


그 뒤에는 숨죽이며 스즈시로가 치도리를 데리고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츠구미는 쥐죽은 듯 컨테이너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하지만, 치도리의 주위가 불타는 광경을 봤을 때부터, 어떻게 해도 머리의 통증이 다스려지지 않는다. 마치, 뇌가 그 광경을 보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그런 고통을 참고있는 중에, 츠구미를 간파한 듯 토노가 말을 걸어온 것이다. ――츠구미가 토노를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디까지, 라고 말해도 조금 곤란한걸. 난 어디까지나, 야타가라스의 지시에 따르고 있을 뿐이니까. 하지만, 그렇네――당신에게는 안쓰러운 짓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왜냐면, 분명 생각나지 않는 편이 행복했을테니까."


"……하?"


"어머나, 무서운 얼굴이네. 모처럼 예쁜 얼굴이 엉망이 됐어."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꺼내는 토노에게, 츠구미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렇게 되받았다. 하지만, 토노는 그것을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기억의 열쇠는 이미 열렸어. 하지만 여기에 오기로 정한건 당신 자신이니까, 후회는 없지?"


"기억? 무슨 소릴……, 읏, 윽……"



뇌를 휘젓는 듯, 시야기 흔들린다. 욱신욱신 단속적인 통증을 발하는 왼쪽 눈이, 거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렇게 걱정하지 마? 딱히 난 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할 생각이 없어. 그런 짓을 해봤자, 내게는 아무 이득도 없는걸. 그럼 안녕, 하가쿠레 씨. 앞으로도 변함없이 사이좋게 지내줬으면 좋겠어."



토노는 일방적으로 그렇게 고하고는, 빙글 하고 츠구미에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걷기 시작했다.



"기, 기다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기다리지 않을거야. ――안녕, 무격(巫覡)의 아이. 당신이 그 몸에 맺힌 죄를 떠올렸을 때, 다시 천천히 이야기하자."



그렇게 말하고, 토노는 떠났다. 츠구미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입구 쪽에서 다른 인간의 기색을 느끼고, 서둘러 몸을 숨겼다. 아무래도, 납치범들을 회수하러 정부 사람들이 들어온 것 같다.



……하가쿠레 사쿠라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된다.


그렇게 생각한 츠구미는, 머리의 통증을 억누르며, 정부 근처에 있는 인기척이 없는 곳으로 전이했다. 그곳에서 변신을 풀고, 불안한 발걸음으로 정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토노는, 대체 무슨 말을 한 것인가. 추상적인 표현이 너무 많아, 흡사 안개에 휩싸여 있는 듯 했다. 게다가, 기억을 잃기 전의 츠구미를 알고 있는 것 같은 그 말투. 의도하지 않은 사이에 손바닥 위에서 구르고 있는 듯한 감각에, 구역질이 났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누군가에게 의논하고 싶다. 벨은 이야기를 들어줄까. 잃어버린 기억이라면, 히고로모 쪽이 좋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시로에게 이야기를 해볼까.


빙글빙글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츠구미는 간신히 정부 입구까지 이르렀다. 문 앞에 있는 경비원에게 사정――납치된 마법소녀의 가족임을 알리고, 정부 직원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당신이 나나세 츠구미 씨 인가요?"



잠시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자, 엄격해 보이는 안경을 쓴 남성이 츠구미에게 그렇게 말을 걸었다. 그 목에는, 정부 직원임을 나타내는 카드가 걸려 있다.



"네, 그렇습니다."


"아아 잘 됐다. 조금 전, 나나세 치도리 씨가 무사히 보호되었다는 연락이 있었던 참입니다. 지금은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있습니다만,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합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지금부터 같이 병원으로 갑시다. 나나세 씨도, 분명 눈을 떴을 때 동생이 있어야 안심이 될 테니까요」라고 뒤이어 말했다.


츠구미는 그것에 안도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치도리는 무사하다. 살아 있다. 아아,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맥이 빠졌는지 머리의 두통이 심해졌다. 깨질 듯한 통증에, 자기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며 쪼그려 앉는다.



"나나세 군? 왜 그런가요?"


"아뇨, 머리가, 아파서……"


"머리가? ……혹시 예의 주구의 영향이 이제서야?"



직원이 당황한 듯 츠구미의 어깨를 잡았지만, 츠구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시야가 일그러지고, 의식이 몽롱해진다.



"…………아아, 미안해, 누나."



그렇게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고는, 츠구미는 잠에 몸을 맡겼다.



――기억의 열쇠는 열렸다. 토노의 그 말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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