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엇갈리는 마음
병원에 도착한 츠구미는, 치도리를 만나러 가기보다도 먼저 유무를 따지지 않고 몸검사를 받아야 했다. ……직원의 눈 앞에서 쓰러져, 통증을 호소하듯 계속 울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츠구미로서도 지금의 정신상태로 치도리를 만나러 가는 것은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았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고마웠다.
그리고 혈액검사나 MRI 등 몇 가지 검사를 끝냈을 때는, 이미 완전히 해가 떨어져 있었다.
"일단은, 몸에 이상은 없는 것 같군. 이젠 머리는 안 아픈가?"
검사 결과를 보면서, 의사가 츠구미에게 그렇게 물었다.
"네. 일시적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전혀 아프지 않아요."
"그런가, 그거 다행이군. 하지만 만약 다시 통증이 일 것 같으면, 다음에는 병원이 아니라 정부의 술자에게 진찰을 받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어. 주술의 영향은, 평범한 의학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럼 몸조리 잘 하게나. 이 뒤에 네 누나의 병실까지 안내할 간호사를 보내줄테니, 이 층에 있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사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진찰실을 나섰다. 그러자, 문 바로 옆에 기대듯이, 한 명의 소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츠구미 군. 갑자기 쓰러졌다고 직원한테 들었는데,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소녀――스즈시로가 츠구미 쪽으로 달려왔다.
"아아, 응. 몸에 이상은 없었어. 걱정끼쳐서 미안."
"그렇구나, 다행이야!"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리는 스즈시로를 보고, 츠구미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저 순진하게 츠구미――친구를 걱정하는 그녀를 보니, 침울해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답답할 정도의 죄책감이 가슴을 누른다. 그 상반된 감정을 억누르며, 츠구미는 입을 열었다.
"스즈시로도, 여러가지로 고마워. 치도리와 다른 아이도, 무사히 구조되었다고 직원에게 들었어. ――정말로, 감사하고 있어."
츠구미는 깊이 고개를 숙이고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스즈시로는, 양손을 저으며 난처한 듯이 입을 열었다.
"에, 그렇게까지 감사할 필요는 없어! 친구가 곤란해하면 도와주는게 당연하잖아!"
"하지만, 감사하고 있는건 사실이야. ……아―, 토노 씨에게도 나중에 감사하다고 전해줘. 아마, 나나세 츠구미가 그 사람을 만날 기회는 이제 없을테니까."
――최소한, 이 건에 대해서는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츠구미는 낙심한 듯 눈을 내리깔았다. 츠구미가 생각해 낸 기억에 대해서, 토노에게는 물어봐야 할 것이 산더미같이 있다. 어째서, 그녀는 츠구미의 과거――혹은 기억에 대해 알고 있었는가. 그 대답에 따라서는, 이후의 처신을 재고해야만 한다.
……떠올려 버린 이상, 과거로부터 눈을 돌릴 수 없는 것이니까.
"응. 전해줄게. ――그러고보니, 검사 때문에 아직도 치도리 짱을 만나지 못했지. 내가 병실까지 안내해줄까?"
스즈시로가 츠구미에게 물었지만, 츠구미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선생님이 아직 치도리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으니까. 느긋하게 대기실에서 안내인이 오기를 기다릴게. ……게다가, 아직"
――아직 자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치도리를 만나야 할지 모르겠어. 얼굴을 직접 보고 안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과,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깊은 죄책감. 그것들이 츠구미의 마음을 빠득하게 조이고 있었다.
기억을 잃은 지금의 치도리는, 츠구미를 탓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기억을 되찾는다면?
그 상냥하고 부드러운 눈동자가, 증오의 색에 물들어 치도리를 꿰뚫는다. 토사처럼 내뱉는 원망의 소리. 거짓말쟁이, 하고 츠구미를 힐책하는 모습. ……그런 모습이 뚜렷히 상상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츠구미는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게 된다.
비록 피가 섞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치도리는 츠구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이라는 점은 변함 없다. 그 신의 말――『지켜라』라는 명령이 없어진다 할지라도, 츠구미는 무엇을 희생해서라도 치도리를 지키려 할 것이다. 그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변하지 않는다.
"츠구미 군, 괜찮아? 안색이 좋지 않은데……"
"아아, 계속된 검사때문에 좀 지쳤을지도 몰라. ――그러고보니, 영화관에 있던 내 일행과 옆에 있던 여자아이는 병원에 도착했어?"
불안한 듯 그렇게 묻는 스즈시로에게, 츠구미는 나쁘다 생각하면서도 얼버무리듯 화제를 돌렸다. ……이 일은, 아무리 친구라 해도 이야기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스즈시로 역시, 어두운 과거에 대한 고백을 들어도 곤란할 뿐이겠지.
"그 외국인 남자애랑, 중학생 애? 응, 왔어. 여자애는 다른 아이의 병문안 후에 부모님이 마중나와서, 이미 돌아갔을거야. 그리고 그, 아자레아 씨는 자고 있는 치도리 짱의 모습을 본 후, 직원가 뭔가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어디론가 가버렸지만. 어떻게 된 거지?"
"흐응? 뭐, 아자레아에게는 나중에 물어볼게."
아자레아는 직원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신경쓰이긴 하지만, 그걸 지금 논의할 여유는 없다.
"그리고, 납치범들은 모두 잡았어. 배후 관계는 이제부터 정부가 제대로 조사할것지만, 치도리 짱은 앞으로 좀 조심하는게 좋을거같아. 납치범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마법소녀의 적성을 간파할 수 있어. 그것이 소문이나 정보로 판단한 것이든, 어떤 주술에 의한 것이든, 싸울 힘이 없는 여자아이가 위험한 건 변하지 않으니까."
"……그렇네. 치도리에게는 잘 말해 둘게."
이제부터는 마수 뿐만이 아니라, 같은 인간에 대해서도 경계를 해야 한다. 귀찮은 일에 말려들기 쉬운 치도리에게는, 그 마음가짐은 필요할 것이다. 가능한 한 츠구미가 움직일 것이지만, 이번처럼 츠구미에게 보이지 않는 사이에 치도리가 해를 입을 가능성도 큰 것이다. 본인이 조심하는 것보다 더 좋은것은 없다.
"그럼, 난 이제 가볼게. 지금부터 잠깐 정부에 들러야 하니까. ――그리고말야, 츠구미 군."
살며시 다가온 스즈시로가, 츠구미의 차가운 손을 그 양 손으로 가볍게 잡으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만약 곤란한 일이 생기면 상담해 줄 테니까. 혼자서 고민하지 말아줘. 그, 츠구미 군이 슬픈 얼굴을 하고 있으면, 나도 슬프니까."
――필시 스즈시로는, 츠구미의 미미한 변화를 알아챘을 것이다. 아무리 츠구미 자신은 평소처럼 행동하려 해도, 낙심하고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스즈시로의 진지한 모습에, 츠구미는 가슴속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저 정직하게, 친구인 『나나세 츠구미(七??)』를 걱정하고 있다. 이름이 없는 『츠구미(つぐみ)』도 아니고, 『하가쿠레 사쿠라(葉??)』도 아닌, 등신대의 『츠구미(?)』를. 그것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응, 고마워. 스즈시로같은 친구가 있어서, 난 정말로 행복한 녀석이야."
츠구미가 미소지으며 감사인사를 하자, 스즈시로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스즈시로는 츠구미의 손을 놓고는, 수줍은 듯 웃으며 손을 흔들며, 「나중에 봐!」하고 그대로 복도를 달려가 버렸다.
살며시 온기가 옮겨진 오른손을 바라보며, 츠구미는 쓴웃음을 지으며 오도카니 중얼거렸다.
"이런 거짓말만 하는 내게는 아까운 친구야, 정말로."
그렇게 자조하면서, 츠구미는 고개를 숙였다. 스즈시로의 그 정직한 친절은, 지금의 츠구미에게는 너무나도 눈부셨으니까.
◆◆◆
――병원으로 옮겨진 치도리가 잠에서 깬 것은, 구출된 날의 심야였다.
온몸에 남아있는 권태감과, 둔한 통증. 컨디션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무리해서 움직인 결과치고는 가벼운 편일 것이다.
치도리는 멍한 머리로 병실을 둘러보니, 침대 바로 옆에 검은 덩어리가 보였다. 놀라서 눈을 부릅뜨니, 거기에는 둥근 의자에 앉은 채로 벽에 기대듯이 자고 있는 츠구미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치도리는 간신히 숨을 내쉬었다. ――아아, 자신은 무사히 돌아온 것이구나 하고.
……상당히 걱정을 끼쳐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치도리는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살며시 빨갛게 부은 눈가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그러자 간지러웠는지, 츠구미는 「으음……」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천천히 눈을 떴다. 미수 속에 잠긴 눈이 치도리를 바라본다.
"――치도, 리? 읏, 아, 우왓!"
츠구미는 깜짝 놀라 눈을 뜨고는, 놀란 듯 몸을 비틀고는 그대로 흘러내리듯 의자에서 떨어졌다. 그런 츠구미를 보고, 치도리는 참을 수 없어서 큰 소리로 웃었다.
"진짜,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되는데."
"깨어났구나. 그, 몸상태는 이제 괜찮아?"
바닥에 부딪힌 부분이 아픈건지, 츠구미는 어색하게 웃으며 치도리에게 그렇게 물었다.
"응. 조금 나른하긴 한데, 이 정도면 문제없어."
"그렇구나. ……정말, 다행이야. 의사 선생님은 상처도 깊지 않고, 사용된 약의 효과도 금방 빠질거라고 했지만, 역시 걱정됐으니까."
바닥에 앉은 채 안도한 듯 그렇게 말하는 츠구미를 보고, 치도리는 미안한 마음이 가득 찼다.
"……미안해. 내가 더 조심했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게다가, 여러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쳐버려서."
치도리가 처음에 제대로 대응만 했더라면, 유괴는 미연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나 바쁜 십화의 수고를 끼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츠구미가 우는 일 같은 것도.
그렇게 치도리가 침울해 하자, 츠구미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냐, 치도리는 아무 잘못 없어. 자, 침대로 돌아가자. 분명 내일은 조사니 뭐니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바쁠테니까, 지금 쉬어야지."
"하지만…… ――으응, 그렇네. 츠구미가 말하는대로, 지금은 쉴게."
츠구미에게 잘못이 없다는 말을 들은 순간, 치도리는 주저하듯 그것을 부정하려 했으나, 입을 다물고 츠구미의 의견에 동의했다. 지금 이 건에 대해 논의해도, 분명 답은 나오지 않는다. 츠구미도 피곤한 것 같고, 오늘은 서로 쉬는 것이 좋을것이다.
"자, 언제까지 거기에 앉아있을거야?"
치도리는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 앉은 채 있는 츠구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츠구미는 그 손을 바라보더니, 순간 겁먹은 듯 시선을 피하고는, 얼버무리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무거우니까, 치도리로는 지탱할 수 없어. 게다가 일어서는 정도는 스스로――"
츠구미가 단언하기 전에, 치도리는 츠구미의 손을 잡고는, 힘껏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대로 츠구미를 일으켜 세우고, 힘이 너무 지나쳐서 둘이서 침대로 쓰러진다.
"우왓, 어이 치도리, 대체 무슨……"
"――저기, 츠구미는 뭘 그렇게 무서워 하는거야?"
급히 치도리의 위에서 물러나려는 츠구미에게 매달리면서, 치도리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츠구미가 예전부터 내게 뭘 숨기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그건 딱히 상관없어. 아무리 가족이라도, 말하고 싶지 않은게 한두가지 정도는 있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말야, 그런 식으로 이상하게 거리를 두는건 절대 싫어. 왜냐면 내게는, 츠구미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치도리는 츠구미를 잡는 팔에 힘을 주었다. ――츠구미가 뭘 불안하게 생각하고, 뭘 무서워 하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 앞에서만큼은, 평소의 츠구미로 있어주길 바랬다.
츠구미는 당황한 듯이 눈을 뜨고는, 탁, 하고 치도리의 어깨에 머리를 얹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치도리는 말야, 만약에 내가 집을 나가 혼자서 살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마치 참회를 하듯이 고하는 그 말은, 치도리의 마음을 동요시켰다. 쿵쿵 뛰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치도리는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어째서? 무슨 이유라도 있어?"
"그건……그 편이 좋을거라 생각해서야."
츠구미는 우물거리듯 그렇게 말하고는, 말끝을 흐렸다.
――혹시, 츠구미는 과거에 대한 무언가를 떠올린 것일까.
그건, 치도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었다. 가족이라는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츠구미를 치도리의 곁에 묶어둘 이유는 아무것도 없게 된다. 『사쿠라 누나』라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 이상, 자기 자신이 친언니라는 확증을 가질 수 없는 치도리는, 츠구미의 곁에는 있을 수 없다. 츠구미가 진실을 떠올렸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자 살겠다는 것을 찬성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나는 반대야. 그런건 절대로 인정하지 않아."
병실의 침대 위에서 몸을 비켜서고, 마주보듯이 츠구미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고, 치도리는 꼼꼼히 츠구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밝은 달빛이, 츠구미의 불안한 얼굴을 비추고 있다.
"나는 말야, 지금이 제일 행복해. 츠구미가 함꼐 있어서, 웃으며 매일을 보낼 수 있는게 정말 기뻐. ――설령 나와 츠구미가 진짜 남매가 아니라고 해도, 그 마음은 변치 않아. ……왜냐면 우리는, 지금까지 계속 가족으로서 살아왔잖아. 이 12년의 세월은, 츠구미에게는 그렇게 가벼운 것이었어? 그렇게 나와 같이 있는게 싫어졌어?"
"그렇지 않아! 싫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하지만 치도리는, 언젠가 분명 나와 함꼐 있었던 것을 후회할거야. 그게, 너무나도 무서워."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츠구미는 자신의 마음을 토해내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런 츠구미를 바라보며, 치도리는 아아, 하고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츠구미는, 역시 뭔가를 떠올려냈어. 그래서 이렇게, 내 곁을 떠나려는거야.
딱히 치도리는 과거의 기억을 되찾고 싶지 않았다. 츠구미가 무엇을 떠올렸는지는 궁금하긴 하지만, 츠구미가 그것을 치도리에게 말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치도리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보다도, 행복한 지금을 사랑하니까. 어째서 츠구미는 그것을 이해해 주지 않는 것일까.
"츠구미가 뭘 그렇게 걱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걱정이 너무 심해. ――내가 츠구미를 싫어하게 되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하지만……"
"비록 그걸로 내가 후회하게 되더라도, 이건 나 자신이 결정한 일이야. 절대로 츠구미를 책망하지 않겠다고 맹세할게. 자, 그럼 걱정 없지?"
그렇게 말하며, 치도리는 미소지었다. 조금 억지스러운 말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말하지 않으면 츠구미는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치도리에 대해 츠구미는 마치 눈부신 것을 보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힘없이 웃었다.
"바보구나, 치도리는. ――정말로, 지독해."
도망치는 것조차, 허락해주지 않다니. 그렇게 작게 입 밖으로 내면서, 치도리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혼자 사는건 일단 보류할게. ――그럼, 난 수면실로 갈게. 계속 의자에서 잘 수도 없으니말야. 치도리도 빨리 자."
"어머, 침대는 넓으니까 같이 자도 되는데."
치도리가 그렇게 놀리듯 말하자, 츠구미는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초등학교 때면 몰라도, 커서는 한 번도 그러지 않았잖아."
"진짜, 농담이야. ――잘 자, 츠구미. 내일 봐. 만약 내가 늦잠을 자면, 깨워주면 기쁠거야."
암암리에 아침 일찍 찾아올 것을 약속시키면서, 치도리는 작게 손을 흔들었다. 츠구미는 커다란 한숨을 내쉬고――조금은 안심한 듯 미소를 지으면서, 병실에서 나갔다.
그리고 홀로 남게 된 치도리는 침대로 푹 쓰러지고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로 있을 수 없는걸까. ――나는 변화같은건 원하지 않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치도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츠구미의 마음, 그리고 치도리의 마음. 서로를 아끼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터인데, 왜 이렇게 꼬이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치도리는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아침이 되면, 깨우러 온 츠구미에게 이불을 덮고 잠들지 않았다는 꾸지람을 듣는 것을 모르는 채로.
――기억이라는 단추를 잘못 끼운 채 살아온 치도리는, 진실을 떠올린 츠구미의 고뇌를 이해할 수 없고, 현 상태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치도리의 마음을, 언젠가 찾아올 미래에 겁을 먹은 츠구미는 이해할 수 없다. 그 불쌍한 엇갈림은, 결국 비극밖에 될 수 없기에――.
---보충
츠구미 : 핏줄과, 과거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치도리와 보낸 10년간에 대해서는, 행복했던 기억보다 속이고 있었던 죄악감 쪽이 더 강하다.
치도리 : 기본적으로 끝나버린 과거보다 지금이 더 중요함. 어떻게 보면 현실적. 기억을 되찾았을때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츠구미를 진심으로 싫어하는 것은 아마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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