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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번역/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6장 140. 귀찮은 의뢰

by 린멜 2021. 5. 5.


6장





140. 귀찮은 의뢰





마화 사건으로부터 일주일째. 벨이 근신으로부터 해방되기까지 앞으로 며칠 남지 않은 미묘한 시기에, 츠구미는 히고로모――메부키의 선배에게 호출되어, 그의 연구실이 있는 제도대에 와 있었다.

대학 안은 방학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있진 않다. 하지만 일본 제일이라 할 정도의 대학인 만큼, 역시 건물이나 설비는 매우 훌륭하다.

평범한 학력밖에 없는 츠구미에겐 인연이 먼 대학이지만, 치도리나 몇몇 반 친구들은 이 대학을 1지망으로 삼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언젠가 축제 등으로 다시 올 기회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두서없는 생각을 하면서 츠구미는 이번 볼일에 대해 생각했다.


――히고로모에게 온 메일의 문면으로 보면, 불러낸 이유는 모호하지만, 아마도 【사쿠라 누나】에 대해 뭔가 진전이 있는 걸 지도 모른다.

츠구미가 기억의 일부를 되찾은 후, 만약을 위해 치도리에 관한 일 외에는 히고로모에게도 전하긴 했지만, 그래도 사건에 대해선 모르는 것이 더 많았다.

……본래라면 더 의욕적으로 기억을 되찾게 노력해야겠지만, 아무래도 그렇게까지 의욕이 솟지 않는다. 그것은 사쿠라 누나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관련되어 있다.


잃었을 터인 과거를 떠올리고, 츠구미의 안에서 사쿠라 누나에 대한 심증은 완전히 반전되어 버렸다.

사쿠라 누나――누나는 확실히 자신에겐 상냥했지만,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일으켰는지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대화재의 원인이자 치도리를 유괴해 어떤 권능을 가진 신을 불러내려고 한 것은, 틀림없이 사쿠라 누나였다. 거기에 어떤 의도가 얽혀 있었다 하더라도, 제정신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진실을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 않다. 그런 모순된 감정이 츠구미의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알아버리면, 분명 좋아했던 사쿠라 누나를 싫어하게 되어 버린다. 그런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음울한 생각을 하며, 츠구미는 메일에 첨부되어 있던 구내 지도를 의지해 지정된 방에 도착했다. 그리고 【히고로모 전용 자료실】이라 쓰여진 문을 가볍게 노크하자, 잠깐 시간을 두고 문에서 불쑥 나온 창백한 손이 작게 손짓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너무나 괴이하다. 츠구미는 미심쩍어하면서도 「실례합니다」하고 반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창백한 손의 소유자――히고로모는 다크서클이 진한 얼굴로 「들어와」라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벽가에 있는 책상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그대로, 컴퓨터로 무슨 작업을 시작해 버렸다. ……완전히 방치되었다.

그런 히고로모의 태도에 난감해진 츠구미가 「저기, 히고로모씨?」라고 말을 걸자 히고로모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잠깐 앉아서 기다려. 불러내서 미안한데, 갑자기 왜곡된 해석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아서."

"저기,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셔도……여기 어디에 앉을 자리가 있단 건가요?"


츠구미는 그렇게 말하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15 다다미 정도의 방 안에 어질러진 서류에, 무언가의 전문 서적. 그리고 빈 공간엔 잘 모르는 기재 등이 빼곡히 놓여 있다. 앉기는커녕 발 디딜 틈도 없다.

츠구미가 엉겁결에 그렇게 답하자, 히고로모는 언짢은 듯 혀를 차며 「그럼 대충 방을 치우고 기다려」라고 내뱉듯 말했다.

――갑자기 터무니없는 소릴 꺼내는구나 이 사람, 하고 생각하면서 츠구미가 히고로모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 히고로모는 담담하게 청소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서류는 날짜와 표제 페이지 순으로 나눠 쌓고. 책은 대충 구석에 정리해 두면 된다. 기재는……부수지만 않으면 어디에 둬도 상관없어. 이 방에 있는 기재는 별 가치도 없으니까."


그렇게 태연스럽게 말하는 히고로모에게, 츠구미는 초조한 듯 입을 열었다.


"아니, 저기, 정리하는 건 상관없는데, 여기 학생도 아닌 녀석이 히고로모씨의 서류를 봐도 괜찮은 건가요?"

"별 문제는 없어. 어차피 네가 봐봤자 내용은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시원스레 답하는 그 말을 듣고 츠구미는 윽, 하고 작게 신음 소리를 내며 가슴을 눌렀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너무 신랄하지 않나?

그렇게 수수하게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대꾸할 말이 없어 츠구미는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이제 됐나? 앞으로 두 시간 안에 이 안건을 끝내야만 한다."

"……아, 네. 그럼 저는 정리를 하고 있을게요."


히고로모에게 그런 냉정한 말을 듣고, 츠구미는 「왜 나는 매번 이런 걸까……」라 자문자답하면서도 방을 정리하기 위해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기서 팽개치지 않고 청소하는 것을 보면, 근본부터 성실하다고 할 수 있다.

이래저래 한 시간에 걸쳐 방을 어느 정도 치워놓은 츠구미가, 겨우 발견한 의자에 앉아 히고로모가 한가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히고로모가 지친 듯 커다란 한숨을 내쉬며, 작게 「끝났다……」라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일이 끝난 것 같다.

완전히 의자에 몸을 맡기고 탈진해 있는 것을 보면, 상당히 피곤해 보인다. ……그냥 다음에 이야기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츠구미가 히고로모의 등을 바라보고 있는데, 히고로모가 의자째 휙 돌아보며 겸연쩍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여러 가지로 미안하네. 변명을 하고 싶진 않지만, 급한 안건 때문에 철야가 계속돼서 조금 예민했거든. 화풀이를 해서 미안하다."


그렇게 말하며 히고로모는 지친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옷매무새를 가담을 여유도 없었던 건지, 색소가 옅은 갈색 머리는 윤기를 잃고 축 늘어져 있었다. ……이런 불쌍한 모습을 보면, 비난하고 싶어도 비난할 수 없다.


"아뇨. 별로 신경 안 써요. 게다가 히고로모씨 말대로 서류는 정말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요……"


츠구미는 하하하, 하고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답했다.

……서류를 정리하는 도중에, 아무리 그래도 말이 심했다는 반골 정신으로 서류의 내용을 약간 살펴보았지만, 정말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딱히 대항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건 이미 분함을 넘어 허무할 뿐이다.

츠구미가 마음속으로 충격을 받아 의욕을 잃고 있으면, 히고로모는 천천히 일어나 방에 비치되어 있는 세면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반에서 컵 같은 것을 꺼내 가볍게 물로 헹군 뒤 포트에 액체를 넣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더니 츠구미의 앞에 조용히 내밀었다.


짙은 녹색의 액체가 담긴, 작은 비커. 그래, 눈금이 달린 비커이다. 츠구미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순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침묵해 버렸다. 혹시 이건 차인가?

――만화에서나 봤지만, 정말로 비커로 마실걸 건네주는 인간이 존재했던 것인가. 그런 묘한 감동을 느끼며 비커를 받자, 히고로모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런 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네. 평소에는 이 방에 손님 같은걸 들이지 않아서 변변한 컵이 없거든. 아아, 그건 거의 미사용품이니까 안심하게."


츠구미는 그에 대해 「거의……?」라 생각했지만 말을 삼켰다. 세상에는 몰라도 되는 일이란 것이 있다.


"딱히 결박증은 아니니 전 이걸로 충분해요.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도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면서 살며시 비커에 입을 댄다. 그러자 묘하게 풋내가 나는 쓴맛이 입안에 가득 찼다. ……솔직히 굉장히 맛없다.


"도, 독특한 맛이네요. 무슨 차인가요?"


츠구미가 자기도 모르게 뱉을 뻔한 것을 참으면서 그렇게 물었더니, 히고로모는 죽은 눈으로 차를 홀짝거리며 조용히 답했다.


"선물이라 나도 잘 모르겠군. 아마 근처 숲에서 캐온 잡초인가 뭔가일까 싶은데."

"엑."

"뭐 걱정하지 않아도 효능만큼은 훌륭한 의사가 보증했으니까. 나쁜 건 들어있지 않아."


담담하게 그렇게 말하면서 맛없는 차를 다 비우는 히고로모를 바라보며, 츠구미는 「이 사람 정말로 괜찮은 걸까……?」하고 불안해졌다. 어쩌면 밤을 너무 샌 바람에 사고가 이상해져 있는 걸지도 모른다.

가만히 살펴보면 몸은 졸린 듯 흔들리고 있고 눈의 초점도 맞지 않는다. 모처럼 이야기를 들으러 온 것은 좋지만,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컨디션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저기, 혹시 괜찮으시다면 날을 다시 잡을까요? 히고로모씨 지금 좀 상태가 나쁜 거 같은데."


츠구미가 그렇게 걱정스레 말하자, 히고로모는 작게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가능하면 지금이 좋아. ――이 상태라면, 말실수를 좀 하더라도 눈감아 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히고로모는 느슨하게 턱을 괴었다.


"이번에 내가 관련하고 있던 안건은, 말하자면 예의 마화의 해석이다. 즉 정부의 의뢰란 것이지. 세부적인 일은 다른 연구기관에 맡겼지만, 결국 그것을 정리하는 일은 내가 해야만 하지. 귀찮은 것도 정도가 있지."

"저기, 그거 참 큰일이네요……?"


갑작스러운 푸념에 츠구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히고로모는 츠구미를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말해, 이것 말고도 내가 맡은 일이 많아서 말이지. 대화재 건을 알아볼 여유가 별로 없어."

"……즉, 조사는 중단이란 건가요?"

"그런 결론을 재촉하는 것이 아니야. ――대화재 건에 대해선, 현 단계에서 대략적인 개요는 조사가 끝났어. 하지만, 내게 조사를 의뢰한 사람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정보는 아직 입수되지 않았어. 즉 이 문제를 클리어하지 않으면, 나는 이 조사에서 손을 뗄 수 없어. 귀찮겠지?"

"이유는 알겠는데요, 왜 제게 그 이야길 하는 건가요?"


츠구미가 의아한 듯 그렇게 묻자, 히고로모는 피식 하고 예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메부키가 츠구미에게 장난을 칠 때의 얼굴을 닮아, 츠구미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왠지 싫은 예감이 든다.

그리고 히고로모는 의미심장하게 츠구미를 쳐다보고는 천천히 웃옷 주머니에서 은색 카드를 꺼내어 츠구미의 앞에 내밀었다.


"이건 정부 자료를 열람하기 위한 보안카드다. 관리자에게 말해서 등록만 완료하면 너도 쓸 수 있을 거야. 좋을 대로 쓰면 된다."

"응? 죄송한데, 말씀하시는 의미를 잘 모르겠는데요."


츠구미가 곤혹스러운 듯 그렇게 말하자, 히고로모는 천천히 고했다.


"나나세 츠구미 군. ――네가 대화재의 진상을 조사하는 거다."

"……하아?"

"대화재의 조사는 어떤 사정 때문에 내게 일임되어 있어. 하지만 정당한 이유만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순 있을 터. 뭐 사정이 사정인 만큼 어중간한 사람이 내 자리를 대신할 순 없겠지만, 이 일에 관한 한 자네가 적임이겠지."

"자, 잠깐만요. 히고로모씨는 이전에 만났을 때 『대화재에 관한 사항은 은닉 사항이라 일반인에게 말할 수 없다』고 하셨잖아요. 아무리 히고로모씨가 허락한다 해도 일반인인 제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리 없잖아요!"


정보 관리를 위해 계약서까지 썼던 사항을, 아무리 담당자――히고로모가 허락했다 해도 일반인이 이어받을 순 없다. 그렇게 생각한 츠구미가 소리를 지르자, 히고로모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아. 아무리 대화재의 관련자 신분이라도, 자네가 정부와 아무 관련이 없는 일반인이라면 도저히 무리겠지. 하지만, 그것이 십화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렇지 않은가, 나나세 츠구미――아니, 하가쿠레 사쿠라 씨?"


그렇게 말하며, 히고로모는 아름답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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