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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번역/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1장 2.시작의 날-

by 린멜 2019. 6. 9.


2. 시작의 날


――『그』의 운명이 왜곡된 것은 9월. 소녀가 마수에게 덮쳐진 날로부터 대략 두달 정도 올라가게 된다.




◆◆◆




그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있었던 일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을 등에 업고, 나나세 츠구미는 피가 흐르는 옆구리를 눌렀다. 교복은 찢어지고, 안에 입은 셔츠는 붉게 물들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오늘은 아침부터 운이 좋지 않았다.


츠구미는, 멍하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




자명종은 부서져 울리지 않았고, 쌍둥이 언니는 혼자 가버렸다. 뒤늦게 탄 전차는 인명사고로 인해 꼼짝 못하고, 게다가 마지막엔 역에서 학교까지의 짧은 길에서 게릴라성 폭우에 휩쓸려 홀딱 젖었다. 정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 하나만이라면 몰라도, 이렇게 몇 개나 불운이 겹칠 수 있나? 덕분에 학교에 도착한 것은 점심시간대. 아아, 하루를 허비한 기분이야……"



그러면서 오늘 아침 일을 푸념하자 말을 듣던 친구가 고개를 들며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럴 때도 있는거지. 츠구미의 평소 행실이 나빴던 거 아니야?"


"그런 말 하지 마. 딱히 난 이상한 일 한적 없어. ……게다가 난 너에게만큼은 평소 행실에 대해 듣고싶지 않아."



츠구미는 못마땅한 얼굴로, 친구――아마리 유키타카를 노려보았다.



"엣, 뜻밖인데."



마치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듯 유키타카는 투덜댄다. 짐작가는것은 전혀 없다고 말하는 듯한 모습이다. 어느 입으로 그런말을 하는건지. 츠구미는 피곤한 듯 한숨을 쉬었다.



"너말야, 어제 돌아가는 길에 후배 여자애에게 맞았잖아. 또 양다리라도 걸친거야?"


"어라, 츠구미 나보다 먼저 돌아갔는데, 어떻게 그걸 알고있는거야?"


"동영상이 왔거든. 보여줄까?"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며, 이거 꽤 좋은 각도의 뺨때리기인걸, 하고 츠구미가 웃자, 유키타카는 분개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뭐야 이거 너무해!! 이런거 찍은 범인 누구야!!"


"메부키 선배와 유쾌한 친구들."



망설임 없이, 간단히 발송인의 이름을 알려줬다. 별로 숨길 필요도 없다. 오히려 본인들이 더 신나있었으니, 장본인에게 말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망할 검은색 안경녀석…… 내가 여자애에게 인기가 있다고 해서 음흉한 짓을 벌이다니."


"아―, 응. 확실히 넌 인기가 있지만, 그건 별개라고 생각해."



분해하는 유키타마로부터 눈을 떼고, 츠구미는 생각했다.


――질투라든가 그런 이유가 아니라, 그저 단순히 네가 그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있는 것일 뿐이야.



"그럼 뭔데? 인터넷에 그녀석이 좋아하는 마법소녀들 죄다 불상사가 벌어지길 바라는 글을 썻으니까? 아니면 그녀석 친구의 여자친구가, 내가 더 좋다고 갈아탔으니까?"


"잠깐 기다려. 나 그거 한 번도 들은적 없는데……"


"에, 그럼 뭐때문이지. 뭐, 그치만 이 정도로 화를 내다니 그릇이 작잖아. 싫어지네."


"나, 언젠가 네가 누군가에게 찔려죽으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대답할거야.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라고."


"아하하, 그런 바보짓은 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호언장담하며, 유키타카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 모습에, 무서움마저 느껴졌다.


이 친구, 겉모습은 아주 반듯하다. 비유한다면, 홍안(紅顔)의 미소년이라는 존재가 그대로 현세에 나타난 듯 한 미소년 얼굴이다. 게다가 머리도 나쁘지 않고, 언동 자체는 상냥해서 호감이 간다. 뭐 그 실체에 대해서 말한다면,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사람이 싫어하거나, 화내는 얼굴을 아주 좋아해!"라고, 다른 사람의 눈도 신경쓰지않고 거리낌없이 공언하는 이 친구는, 당연하지만 적이 많다. 솔직히, 사이좋은 사람을 찾는게 어렵다고 생각한다.


외모에 이끌려 오는 여성이 적지는 않지만, 대게는 견디지 못하고 며칠만에 환멸, 혹은 격노하며 떠나간다. 개중에는 이상하게 심취하며 신자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기에 대해선 별로 접하고싶지 않다. 무서워.


――왜 그런지는 몰라도, 항상 내가 손해를 보는거같아.


츠구미는 작년에 휘말렸던, 유키타카에 얽힌 소동을 떠올리며, 쑤셔오는 위를 눌렀다.



"적당히 해. 나는 근처에서 살인이 일어나는건 싫다고. 괜히 말려들어 귀찮아질거 같고."



그렇게 말을 하자, 유키타카는 이상한 듯이 웃었다.



"아하핫. 거기서 『네가 걱정이야』라고 말 하지 않는게 츠구미 답네."


"그렇지만 너, 내 충고따윈 들을 생각 없잖아? 얼마나 알고 지냈다고 생각하는거야. 그 정도는 나도 학습하거든."



이렇게 보여도 꽤나 오래 알고지낸 사이다. 유키타카의 취급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말야, 츠구미. 너 정말 타이밍이 나쁘구나. 오늘만큼은 쉬었어야 했는데."


"뭐야. 그야 뭐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점심시간이 됐지만, 제대로 등교했다고? 여기서 오후 수업까지 빠지면 나중에 치도리에게 무슨 말을 들을지……"



그렇게 말하며 츠구미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치도리는, 츠구미의 누나다. 그 정의감이 강한 누나가, 남동생――즉 츠구미가 수업을 땡땡이 친 것을 알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할지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츠구미는 조례때 없어서 몰랐겠지만, 오후부터의 수업은 전교집회로 바뀌었어. 3학년에 꽤 유명한 마법소녀가 있었잖아? 그러니까, 사토 난챠라 씨. 그 사람이 어제 순직했다고 해서, 뭔가 송별회 같은걸 한다고 하던데, 츠구미는 흥미 없잖아?"


"……즉, 학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건가?"



사토, 뭐였더라. 확실히 미치코라던가 그런 느낌이었던 거 같았는데. 유명한 선배인 거 같지만, 교우관계가 워낙 좁은 츠구미에게는 희미하게밖에 인상에 남아있지 않다.



츠구미는 살며시 주위를 둘러보며, 유키타카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해도 순직인가.――큰 소리로는 말할 수 없지만, 꽤 오래버틴 편 아니야?"


"그렇지. 마법소녀가 된지 5년은 된거 같고, 평균보다는 우수려나."



마법소녀, 라는 것은 참으로 사랑스러운 호칭이지만, 그 실체는 상당히 살벌하다.


이들은 이른바 마수와 싸우기 위한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자――소위 신과 계약한 인간병기이다.


――30년 전. 갑자기 마수라는 괴물이 일본에 출현하게 되었다.


마수에 의해 라이프라인이 단절되어, 그대로 멸망을 맞이하는 것인가 하고 일본의 모든 사람들이 포기했을 때, 시작의 『마법소녀』는 나타난 것이다.


그 소녀의 이름은 사쿠라 아카네. 8년 뒤에 강대한 힘을 가진 마수와 맞부딪칠때까지 사람들의 절대적인 희망이 된 마법소녀이다.


돌연 나타난 그녀는, 무녀같은 의상을 입고, 수많은 전장을 돌아다녔다. ――모든 거은, 마수를 죽여,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그녀가 가져온 효과는 극적이었다.



"――마수를 쓰러뜨리고 다니는 여자아이가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그런 사소한 소문이었다. 그것이 한 명, 두 명, 목격자가 늘어나, 결국 그녀의 존재를 살아남은 누구라도 알게 되었다.


과연 그 존재는, 그저 두려워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분명 그녀가 도우러 온다. 그렇게 생각하는것만으로도, 내일을 살아가기 위한 힘이 되었다. 어설픈 종교보다 더 큰 우상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마법소녀』라는 존재의 탄생으로, 한가닥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존해 있던 정부 기관의 사람들은 사쿠라 아카네에게 컨택트 해, 그녀의 계약자――야타가라스 라고 하는 까마귀와 이야기를 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 해후에서 야타가라스는 자신의 위에 있는 존재, ――아마테라스의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대화의 상세한 내용은 국가기밀이 되어 일반적으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간추려 말하면, 이 나라가 다시 신――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지배하에 들어온다면, 비호해주겠다. 결국은 그런 이야기였다.


받아들인다면 히노모토를 지키기 위해서 힘을 쓰겠다, 라고 한 아마테라스의 말도 있어, 정부는 그 계약을 받아들였다.


교섭의 사이에 선 야타가라스로부터의 정보에 의하면, 놈들 『마수』는 생물의 악감정에 의해서 에너지를 얻는, 일종의 개념과 같은 생명체라는 듯 하다. 그러나, 본래 시공의 틈에 존재하는 그것들이, 어째서 일본에 나타나게 되었을까.


그놈들이 갑자기 일본에 나타나게 된 이유는, 앞에서 서술한 대로, 하늘이 갈라진 곳,…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야타가라스는 왜 하늘이 갈라졌는지까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한마디, "입에 담기도 역겨운……무언가 때문이다."라고만 고했다.



――그 『역겨운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 것 외에도 방대한 거래를 거쳐, 아마테라스는 마수에 대항하기 위한 결계 『아마노이와토(天ノ岩戸)』를 만들어, 일본 전역을 그 결계로 뒤덮었따. 그리고 아마테라스는 나라를 지키는 병사를 늘리기 위해, 독자적은 루트를 이용해, 자신과 같은 존재…에게 교섭을 제안한 것이다.



――그 결과 만들어진것이 『마법소녀』라는 시스템이다.



아마테라스가 말하길, 자신들은 하늘의 틈에서 새어나온 순수한 에너지를 핵심으로 하여, 현실사회에 현현한, 이른바 제신이라 불리우는 존재라는 것이라고 한다. 그 중에 가장 먼저 구현한 것이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였던 것이다.


그들이 그 에너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것은, 아마도 그들이 이 일본 고유의 유명한 신이었음에 틀림 없다. 필시, 대재해 때 사람들의 지푸라기에라도 매달릴 정도의 간절한 신앙심이 현현을 실현시킨 것 아니냐, 고 사람들은 추측하고 있다.


――본래 고대신은 사람에게 간섭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 측으로부터의 신앙심이 줄어든 것이나, 다른 종교가 생겨나면서 이단이라고 존재의 정의가 왜곡된 결과이기도 하다. 신으로 모셔진 존재가 지금 세상에서는 악마라 폄훼되고 있는 일도 적지 않다.


그런 그들이 인간 세상에 간섭한다면, 잘못하면 자신의 정의조차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운이 나쁘면 신으로서의 힘을 탕진함으로써 존재가 소멸될 위험성도 있다. 


그것은 신들에게도 불문율의 상식이며, 스스로의 존재를 걸고서까지 인간과 관련되고 싶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상식을 뒤집어 보인 것이 하늘의 틈에서 유출된 에너지의 존재이다.


그 무색의 에너지를 잘 이용한다면, 리스크도 지지 않고,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진 제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마수가 나타나는 메커니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마수라 불리는 것―― 사람의 절망을 식량으로 사용하는 개념 존재 또한 그 무색의 에너지에 의해 형태를 얻은 것일 뿐이니까.



――여기에서만 하는 이야기지만, 신이라 불리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남는 시간을 주체 못하고 있다. 그런 그들이 쉽게 현세를 활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틀림없이, 관광 차원에서 일본으로 올 것이다.



그 사실을 가장 먼저 꺠달은 아마테라스는, 자신의 부하인 야타가라스를 하계로 파견해 사람과 계약을 맺어, 토지의 정당한 권리자가 되었다. 게다가, 히노모토에 악의를 품은 신을 날려보내는 술식을 대지에 새겨두었다. 그것이 결계『아마노이와토(天ノ岩戸)』의 효과의 하나이기도 하다.


준비를 끝낸 아마테라스는, 상태를 보고 일본에 의식을 보내고 있는 신들에게, 이렇게 말을 건낸 것이다.




『좀 더 즐거운 일을 해 보지 않겠습니까』라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마법소녀』라는 제물이다.


제신으로 내려온 신들이 감수성 높은 소녀와 계약을 맺음으로써, 현세에 대한 간섭권을 얻을 수 있다. 그 대가로서 계약자――즉 마법소녀에게 마수를 퇴치시키는 것을 의무로 한다. 마법소녀는 뚜렷이 보이는 먹이인 것이다.



인간 입장에서 보면, 마법소녀가 되는 것은 명예로운 전사로의 전환이었고, 신들에게는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육성 게임 같은 것이었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신을, 신들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자신의 힘을 주었다.


그 대가를 정리해, 새로운 룰을 만들어, 누구나 이익을 볼 수 있도록 조정되고 짜여진 것이 『마법소녀』라는 시스템인 것이다.



뭐, 처음은 대충대충인 계약도 시간을 거듭할수록 섬세한 제약이 생겨, 신들에게 있어서는 움직일 수 있는 자유도가 줄어드는, 조금 불편한 형태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형태를 가지고 마음껏 현세를 돌아다닐 수 있다고 하는 메리트는 신들에게 있어서 컸다.



게다가 원래 일본이라는 나라는 다신교였다. 장소에 따라서는 악마라고 멸시당하는 존재라 할지라도, 이 나라에서는 난폭한 령도 온화한 령도 같은 신이며, 거기에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종교감도 있어, 다른 종교에 의해서 벽지로 내쫓겼던 옛 신들도, 공경할 마음이 있으면 협력하겠다고 많이 양보한 형태로 협력을 해 주게 된 것이다.



――마법소녀가 정부에 의해 관리되고, 정식 무대에 나오면서 천천히 국내 정세는 차분해졌다.



그런 가운데, 마수의 생체 에너지를 고형물로 변환시키는 방법이나, 그 에너지의 핵을 석유, 전기, 다양한 효능을 가진 약 등으로 만드는 방법이 확립되어 갔다.



그리고 하늘이 갈라진 날―― 통칭 『개벽의 날』으로 불리는 날부터 불과 10년이 채 되지 않아 일본은 훌륭하게 나라를 살려낸 것이다.



일본에 나타나는 마수의 수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마수가 쓰러졌을 때에 만들어진 에너지의 핵이, 일본에 만연되어있던 모든 문제를 해소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 자주 말하지만, 이렇게 행운과 불행이 역전된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일본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수록, 관계를 끊었던 나라들로부터 국교회복의 타진은 있었지만, 현 정부는 그 신청을 모두 거절했다.


물론 거기에는 여러 나라로부터의 비판도 있었지만, 한 나라에서 모든것을 조달할 수 있게 된 지금에 와서는, 그런 비판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죽음과 가까운 일상이나, 마법소녀가 된 소녀들의 고귀한 희생에 의해, 일본의 새로운 형태의 평화는 만들어진 것이다.



덧붙여서 마법소녀가 될 수 있는 나이는 12살부터 마련되어 있지만, 10년 이상 살아남는 자는 매우 드물다. 말은 좋지만 마법소녀는 한달에 수십명의 순직자를 내는 위험한 직업이다. 뭐, 대부분의 마법소녀는 5년 정도에 은퇴하고 떠나는 것이지만.



――단, 오래 살아남으면 지위도 명예도 돈도 벌 수 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요즘들어 유명한 마법소녀는 마치 아이돌처럼 취급받고, 인기투표라던가 여러가지로 일본의 평화를 지키는 일 이외로도 바쁘다고 한다.


그런 탓에, 시작의 지옥을 모르는 츠구미같은 조금 비틀어진 인간에게는 『마법소녀』라는 존재에 대해 별로 호감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이 영웅인 것은 알지만, 그것과 불신감은 또 다른 것이겠지.



……하지만, 그런 격전구 속에서 비교적 오래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선배도 정말이지 운이 나쁘다.



"그렇다고 해도 집회라……솔직히 귀찮아.」



귀찮은 듯이 츠구미가 중얼거리자, 유키타카는 재미있는 것을 봤단 듯이 눈을 가늘게 떳다.



"그러고보니 츠구미, 사람 많은곳 싫어했지."


"피난소에 비집고 들어가는것마냥 숨이 막혀. 이것만은 어쩔 수 없지만."



――한 사람정도 빠져도 들킬거같지 않은데, 땡땡이칠까.



"역시 나도 돌아갈까. 치도리도 내가 이런거 좋아하지 않는다는건 알고 있으니, 그렇게까지 화내지는 않을……앗."


"왜 그래?"


"아니, 일단 치도리에게 연락을 넣어둘까 했는데, 휴대폰 배터리가 없다는것을 잊고 있었어. 미안한데 대신 연락해줄 수 있어?"


"상관은 없지만, 하나 빚 진거다."



유키타카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핸드폰 카메라를 츠구미를 향해, 그대로 찰칵 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살짝 사진에 모종의 조작을 가해 츠구미의 앞에 내밀었다. 그 화면에는, 어딘가 창백한 얼굴을 한 츠구미의 모습이 담겨있다. 



"잘 편집했지? 『얼굴색이 안좋아서 돌려보냈다』고 연락해 둘게."


"……아, 응.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위장한 사진을 보내는것을 탓해야 하는건지, 츠구미가 누나에게 혼나지 않게 배려해 준 것을 감사해야 하는건지. 조금은 망설인 츠구미는 유키타카에게 감사를 표했다. 유키타카도 분명 악의는 없을것이다. 아마도.



츠구미가 감사인사를 하자 유키타카는 특별히 신경 쓰는 기색 없이 책상 위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자처럼, 쓸데없이 덕지덕지 늘어진 소지품을 가방에 가득 채우고, 츠구미 쪽을 향해 말했다.



"그럼 나도 슬슬 돌아갈까. 츠구미도 조심해. 뭐 경보도 가지고 있을테니 괜찮겠지만. ――아, 혹시 나기사를 만나면 내가 조퇴한 거 말해 줘."



유키타카는 그렇게 말하고 격려하듯 츠구미의 어깨를 두드린 뒤, 팔랑팔랑 손을 흔들며 교실에서 나가버렸다. 정말 자유로운 남자다.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니, 벌써 절반이 넘는 반 친구들이 사라져 있었다. 이건 너무한걸. 하지만 원래 츠구미가 소속된 2학년 F반은 문제아가 모인 반이다. 오히려 전교집회는 제대로 참석하는 사람이 적다.



츠구미는 이런이런 하고 어깨를 움츠리며, 창 밖의 비가 완전히 그친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비가 억수로 쏟아진게 맞나 싶을 정도로 맑고 화창하다. 아름다운 무지개까지 걸려있다. 왠지 불합리하다 느껴버렸다.



츠구미는 잠깐동안 씁쓸하게 하늘을 노려보았으나, 단념한듯 숨을 내쉬며 가방을 다시 메었다. 자연현상을 아무리 얄미워도 어쩔 수 없다. 이럴 떄는 잊는게 제일이다.


그렇게 생각한 츠구미가 교실 문을 열었을 때, 밖에서 교실로 들어오려던 사람과 부딪칠 뻔했다.



문에 손을 걸치지 못해 쓰러져버릴 듯한 사람을 무심결에 부축했다. 달콤한 향기가 콧구멍을 간질인다.



"어, 어머. 미안해요. 선생님이 정신을 깜빡 놓아서……"


"스즈네 선생님, 예전에도 그렇게 말하고 계단에서 떨어질 뻔 한 적 있지 않나요? 조심하세요."



츠구미가 그렇게 말하자, 교사――스즈네 나기사는 부끄러운 듯이 볼을 붉힌다. 츠구미는 질린 듯 주의를 재촉하며, 스즈네에게서 손을 뗐다.


그녀는 츠구미의 반 담임이지만, 도무지 미덥지가 못하달까, 도저히 눈을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위태로워 보인다. 그 때문인지, 문제아가 많은 이 반 안에서도, 반발하지 않고, 마치 의지할 수 없는 마스코트 같은 취급을 받고있다.


본인은 그 취급이 불만인 모양이지만, 4월에 있던 외부 오리엔테이션 때 학생을 제치고 가장 먼저 미아가 된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대접이다.


그런 걱정을 하면서도, 츠구미는 이 상황을 어찌할 것인가 하고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혹시 지금 없는 애들은, 벌써 돌아간걸까?"


"아, 그, 아마 그렇겠죠."


"에, 그런, 너무해……"


가냘픈 목소리로 스즈네는 그렇게 말하며,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 위험해. 그렇게 생각했지만, 한 발 늦었다.



스즈네의 눈으로부터, 반짝반짝한 큰 물방울이 중력에 패배해 툭 툭 눈에서부터 떨어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반 애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소리를 질렀다.



"아―! 나나세 녀석이 나기사를 울렸다."


"어이어이 뭐하는거야. 나기사 선생님이 불쌍하잖아?"



낄낄 웃으며 잠깐 남아있던 반 애들이 줄줄이 야유한다. 아, 이래서 싫었던 것인데.


내심 싫증이 나면서도, 츠구미는 반 애들에게서 돌아섰다.



"내 잘못 아니야. 그런 불평은 조퇴한 녀석들에게 말 해."



훌쩍훌쩍 본격적인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한 스즈네의 등을 가볍게 어루만지면서 츠구미는 불만스럽게 반 애들에게 투덜거렸다.



"그렇지만 너도 돌아가는거잖아? 그럼 동료잖아?"


"큭, 그건……그렇지만."



반 애들의 말도 맞다.


담임을 만난 이상 일단 조퇴의 뜻을 전해야 한다. 하지만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는 그녀에게 순순히 돌아가는 것을 알리는 것도, 조금은 마음이 아프다.



벌써 반의 절반 이상이 이 자리에서 없어져 버린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전교집회가 열리면, 나중에 담임인 그녀가 다른 교사들에게 한 소리 듣는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역시 불쌍하니 남는게 좋을까 하고 츠구미가 고민하기 시작하던 그 때, 스즈네가 젖은 눈빛으로 가만히 츠구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돌아가려고 말 하려는것을 탓 하려는 것인가. 츠구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스즈네의 입에서 나온 것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나나세 군. 괜찮아요?"



"하?"



그것은 아주, 걱정스러운 목소리였다. 무엇을 물었는지 의미를 알아채지 못한 채 츠구미는 무심코 되물었다.



"선생님, 왜 그러시는거에요?"



츠구미가 그렇게 묻자 스즈네는 조금 말하기 어려운 듯 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저기, 이런 말을 선생님이 하는건 좀 어떨까 싶긴 하지만, 나나세 군은 역시 돌아가는 편이 좋을거라 생각해요."



평소에는 반 애들이 쉬거나 조퇴하려 하면, 비장한 얼굴로 말리기 시작하는데,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분 걸까. 그런 스즈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츠구미는 입을 열었다.



"저기, 어째서요?"


"……나나세 군, 본인은 눈치 못챘다고 생각하지만,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아요. 아무리 저라도, 정말로 몸상태가 나쁜 아이를 무리해서 남으라고는 말 할 수 없는걸요."



스즈네가 그렇게 말하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반 애들이 츠구미에게 말을 걸어왔다.



"엣, 뭐야뭐야? 나나세 몸상태 안좋아?"


"아니, 별로 그렇지는 않은데……그렇게 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건가?"


"음―, 나는 잘 모르겠는걸."



이야기를 듣던 다른 반 애들도, 특별히 츠구미가 아파보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나기사의 착각이라고. 봐, 바보는 감기 안걸린다고 하잖아."



그렇지, 하고 즐거운 듯이 떠드는 녀석들에게, 츠구미는 무심코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몸이 안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취급은 납득할 수 없다.



"너희들 조금은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 게다가 난 바보가 아니라고!?"


"뭐야 엄청 건강하잖아."


"츠구밍은 유키타카 녀석에게는 별로 화 내지 않으면서 우리한테는 큰 소리 친다니까."


"어이, 츠구밍이라 하지 마."



더 이상 어울려도 결말이 나지 않을것이다.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반 애들을 무시하면서, 츠구미는 자신의 가방을 들고 교실에서 나가려 했다. 교사인 스즈네에게도 일단은 조퇴 허가는 나왔으니,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교실을 나서자, 잠시 후 츠구미의 등 뒤편에서 바스락바스락 발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하고 생각해 돌아보니, 급히 달려오는 스즈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 기다려요, 나나세 군."


"네?"



스즈네는 그리 먼 거리도 아닌데, 어째선지 헤엑 헤엑 하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운동부족이다. 조금 걱정이 된다.


하지만, 대체 무슨 일일까? 뭔가 할 말을 잊은게 있는건가?"



"하아, 하아, 다행이다. 시간에 맞춰서……"


"저기, 괜찮으세요?"



콜록거리며 어깨로 숨을 쉬는 스즈네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츠구미는 물었다. 그러자 스즈네는 뭔가를 츠구미에게 살짝 내밀었다.



"이거, 가져가세요."


"이건……부적? 아니, 이런 고급스러운 건 받을 수 없어요."



자그마한 검은색 천에 붉은 실로 꽃의 장식이 달려 있는, 어딘지 모르게 장엄함을 자아내는 부적을 보고, 츠구미는 고개를 저었다.


왠지, 내가 가지기에는 송구하다는 생각이 든다.



"괜찮으니까요."



스즈네는 부적을 츠구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 뜻하지 않은 억지에 츠구미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무리한 행동을 취하는 스즈네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싫은 예감이 들어요. ……선생님의 제멋대로라 생각하고, 이걸 가져가 주지 않을래요?"


"……엣, 뭔가요 그거. 조금 무서운데요."



츠구미는 납득이 가지 않으면서도, 건네받은 부적을 교복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딱히 가지고 다니는 정도라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미안해요. 이상한 말 해서."


"뭐, 별로 상관 없지만요."


"정말로,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걱정스러운 듯 몇 번이나 그렇게 외치는 스즈네에게 츠구미는 반쯤 질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몇 번이나 똑같은 말을 듣지 않아도, 어린 아이가 아니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텐데.



"괜찮아요. 몸도 그렇게까지 나쁜 것도 아니고."


"…그렇,네요."



어딘지 모르게 애매한 대답을 하면서도, 스즈네는 불안한 듯 한 시선을 츠구미에게 향했다.


그리고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이 입을 우물거리다, 뭔가를 망설이듯 깊이 눈을  감고 생각을 고친 듯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내일 봐요. 이번에는 지각하지 말고 학교로 오세요."


"……아하하. 안녕하계세요, 스즈네 선생님."



그렇게 츠구미는 스즈네를 등지고, 곧장 교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등을 가만히 스즈네가 바라보고 있던 것은 눈치 채지 못한 채――




◆◆◆



츠구미의 등이 보이지 않을 무렵, 스즈네는 아무게에도 들리지 않을 만큼의 작은 소리로 살며시 중얼거렸다.



"……저 아이, 온 몸이 새빨…겠어."



스즈네는 그렇게 말했지만, 만약 이 말을 반 학생들이 들었다면, 분명 고개를 갸웃거렸을 것이다. 츠구미의 겉모습은, 다른 학생들이 보기에는 보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테니까.


뭐 여성 쪽이 색을 느끼는 기관이 날카롭다 여겨지는 것도 있고, 그런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구태여 『온 몸』이라는 단어를 썼다.



――과연 스즈네에게는 대체 무언가가 보였던 것인가.



"그건 이제 어쩌면…… 아니, 그러니까……"


그리고 스즈네는 기도하든 손을 잡고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저는 기도밖에 할 수 없지만, 제발―― 죽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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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에 1만자가 넘어서 너무 오래걸려서 평일에는 잘 못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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