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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번역/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1장 3. 살며시 다가오는 그림자 -

by 린멜 2019. 6. 10.


3. 살며시 다가오는 그림자



학교를 나와 인적이 드문 길을 걸으면서 츠구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전 스즈네의 모습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그 사람도 잘 모르겠어."



스즈네 나기사라고 하는 여성은, 교사라고 하기에는 조금 믿음직스럽지 못하지만, 어른으로서의 인격은 신뢰할 수 있다. 상담을 하면 친절히 협력해 주며, 결코 불합리한 일은 하지 않는다. 괴짜들밖에 없는 츠구미의 반에서도, 이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땅에 발이 닿지 않은 것처럼 불안하다. 이 쪽을 보고 있지만, 보고있지 않는…… 그렇게 느껴질 때가 가끔 있다.


――게다가 스즈네 나기사라는 교사는, 여러가지 소문이 있다. 그것도, 오컬트 방향으로.


원래는 은퇴한 마법소녀라느니, 유명한 신사의 후계자라느니, 수완 좋은 영능력자 등 바리에이션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사고로 죽은 인간을 맞췄다, 라는 이야기가 반에 퍼지고 있다. 뭐, 그것도 처음에는 유키타카가 재미있어 하는걸 보고, 츠구미는 진지하게 듣지 않았지만.


하지만 실제로 츠구미가 다니고 있는 사에가미 고등학교에는, 옛날부터 오컬트적인 소문이 끊기지 않는 모양이다. 밤중에 이상한 것을 봤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비교적 자주 들린다.


츠구미 자신은 그런 것을 만난적은 없지만, 누나인 치도리는 자주 학교에서 이상한 기색을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츠구미는 착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유령이 없다고 하는 것은 증명할 수 없으니 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뭐 어차피,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그런 배경도 있기 때문에, 츠구미는 곧장 역을 향해 걷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은거같다.



"……아, 맞다. 책을 가지러 가야지."



갑자기 떠올랐다.


실은 한달 전에 발주넣은 책이, 어제 도착했다고 고물상 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던 것이다. 이제는 입수하기 어려운 외국의 고서라서, 받아주는 가게를 찾는데 상당히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유키타카가 친절하게 가게를 찾아주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생일이 모레니까. 내일 방과후에는 유키타카와의 예정이 있고, 오늘 가는게 가장 나은데……"



모레는, 츠구미와 치도리의 열일곱번째 생일이다. 매년 특별히 협의하지는 않지만, 당일은 음식이나 케이크를 가지고 와, 서로 선물을 교환하는 것이 상례가 되었다.


츠구미의 누나 치도리는 해외 문학, 그것도 마이너한 어린이 책 수집을 취미로 하고 있으며, 학교와 동아리가 쉬는 날이면 헌책방 순회를 하는 일도 적지 않다. 그런 그녀가 전부터 갖고 싶다던 책을 이제야 구했다.


――모처럼 일찍 돌아가니까, 잠깐 들리는것도 괜찮지 않을까?



"……어떻게 할까."



하지만 그래도, 담임에게 허가를 받고 조퇴를 한 몸이다. 본래라면 가는 길에 들리는 것은 당치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가지러 가는데 가장 좋은것은 지금이다. 다행히도, 가게 자체는 가장 가까운 역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다. 걸어서 십분 정도의 거리. 그 정도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뭐, 분명 괜찮겠지."



――죄송해요, 스즈네 선생님


츠구미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스즈네에게 가볍게 사과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그런 과하게 생각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테니까.


실제로도 몸 상태도 별로 나쁘지 않고, 설령 마수와 조우한다 해도, 보통이라면 경보가 울리므로, 시간만 있으면 간단히 피난할 수 있다. 츠구미는 휴대폰 말고도 경보용 단말기도 갖고 있어 경보를 놓치는 일도 드물다.


마수의 출현 30분 전에는 경보가 나오니, 한 번은 놓치더라도 최소 10분이면 마수의 행동 범위 내에서 도망가는 정도는 쉽다.


츠구미는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스즈네가 한 말을 어기고, 역 반대방향으로 발길을 내디딘 것이었다.



――그 선택 때문에, 앞으로의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과 조우할 줄도 모르고.




◆◆◆




――옆구리를 눌러, 지혈을 시도한다. 위안에 불과하겠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날아온 잔해에 부딪혀 자유롭지 못하게 된 한쪽 발을 질질 끌며, 츠구미는 붕괴되지 않은 건물의 그림자로 숨었다. ……통증으로 의식이 날아갈 것만 같다.



"어째서 이렇게……"



츠구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회상했다.


스즈네 선생님의 말씀을 어기고, 역 뒤편의 고물상으로 발길을 옮겼을 떄, 어딘가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혹시 정말 감기에 걸린건가 하고, 내심 불안해하면서 발길을 옮기면서, 그 위화감의 원인이 명백해졌다.



――사람의 기척이, 너무 없어?



사람들이 피난한 뒤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이상하다. 경보도 울리지 않았고, 불과 몇 분 전에는 드문드문 사람도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이 없어진건가? 메리 셀레스트 호도 아니고, 그런 일이 현실에 일어날 리 없잖아?



――아니야, 다르다.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애초에, 여기는, 어디야?



목적의 고물상은, 역에서 가까운 신사까지 나아가다, 그 뒤는 계속 외길이었을 것이다.


몇 번이나 가게는 들렀으니, 길을 잘못 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은, 아무리 생각해도 본 적 없는 장소였던 것이다.



초조함을 느끼며, 일단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여기에 머무는 것만은 좋지 않을 것 같다.


――그 찰나, 마치 폭탄이라도 폭발한 듯한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설마 하고, 하늘을 쳐다본다.


――거기서 츠구미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보고 말았다.


어지러운 속도로 공중전을 펼치는, 마법소녀와 거대한 가고일처럼 생긴 마수.



"거, 거짓말이지!?"



――마수를 퇴치할 때마다 거리를 파괴해 버리면, 싸우는 의미가 없다.


최초의 마법소녀는 야타가라스에게 그렇게 호소했다.



30년 전에 갑자기 출현하기 시작한 마수――그것에 응전할 수 있는 것은 신들의 가호를 받은 마법소녀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싸움을 펼칠 때마다, 거리나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혀 버리는 건 본말전도다.


――야타가라스에게 그 보고를 받은 아마테라스는 『아마노이와토』 결계에, 격리 공간을 만드는 시스템을 추가했다.


그 이후, 마법소녀들은 마수와 싸우기 전에 결계―― 이른바 즉석에서 『이세계』를 만들게 됐다.


마법소녀가 계약한 신의 힘을 빌려, 현실의 경면(鏡面) 공간으로 마수처럼 이동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실의 피해를 줄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결계 내에서 파괴된 물건은, 마수가 쓰러짐과 동시에 원상태로 재생되므로, 마수가 일으키는 피해는 거의 제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녀들이 결계 속에서 아무리 화려하게 싸우고, 아무리 거리를 파괴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만능으로 보이는 그 결계에도 치명적인 결점이 있다.


마법소녀가 만들어내는 그 결계는, 마수, 또는 마법소녀 중 어느 한 쪽이 절명하지 않는 한 해제되지 않는다.


게다가 마수가 아니라 마법소녀가 먼저 목숨을 잃었을 경우, 그 결계 안에서 건물이 입은 피해는 고스란히 현실로 피드백된다.


――그렇기에 마법소녀에게 패주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기는가 죽는가. 어느 한 쪽밖에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외가 없는것은 아니고, 붕괴가 반영되는 아주 적은 시차 사이에, 다른 마법소녀가 결계를 다시 펼치면, 붕괴의 피드백은 지연된다.


예전에는 마법소녀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거리에 피해가 컸지만, 지난 10년 사이에 마법소녀의 움직임도 상당히 조직화되면서, 요즘은 큰 피해가 거의 없다.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그것과 츠구미의 현상은 또 다른 이야기다.


마법소녀의 싸우는 모습은, 일본 전역의 이곳 저곳에 있는 특수 모니터를 통해, 현실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츠구미가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당연하지만, 그 격리공간――즉 결계 안에는, 평범한 사람은 갈 수 없다.


마법소녀의 결계에 일반인이 연루되었다는 사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확실히 이상한 사태가, 츠구미의 몸에 일어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농담이지 어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건데!"



나도 모르게 소리쳐 버렸지만, 이런 상황에서 혼란하지 않는게 이상한거다.


……스즈네 선생님이 말 했던 『싫은 예감』이라는 진단은, 아무래도 최악의 것에 적중한 듯 하다.


――일단, 여기서 도망쳐야한다. 전투에 휘말리면 잠시도 버티지 못한다.


그리고 츠구미가 도망치려던 그 순간, 상공에서 싸우던 마법소녀가, 마수의 굵은 바위같은 팔에 의해, 멀리 튕겨나갔다. 오싹, 하고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아, 위험하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마수가, 길에 주저앉는 츠구미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뒷골목으로 도망칠 때 까지의 기억은, 매우 애매하다.


츠구미는 거친 호흡을 고르며, 콘크리트 벽에 체중을 맡겼다. 솔직히, 이젠 그냥 서 있을 기력도 없다.


이 이상은 움직일 수 없고, 무엇보다도 출혈이 심하다. 잘못하면 이대로 의식을 잃고 죽을 것이다.



――스즈네 선생님의 충고를 좀 더 진지하게 들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설마 이런 일을 당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만약 살아돌아간다면, 어떤 일인지 따지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그래, 살아서 돌아간다면……


츠구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최악의 가능성이 머리를 스친다. 이런 곳에서 헛되이 죽는건 딱 질색이다.


애시당초, 츠구미의 경보가 왜 울리지 않았던 것인가. 그리고, 여기는 어디인가. ……기묘한 세계에라도 잘못 섞여 든 기분이다.



"――제길."



그렇게 욕을 해도, 어쩔 수 없다.


이곳은 온갖 외계로부터 동떨어진, 마법소녀의 결계이다. 이것이 풀리이 않는 한은, 츠구미는 전투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전투의 중심에서 도망칠 수도 있었을 텐데, 마수에게 공격당해, 그 여파로 부서진 건물 파편이 운 나쁘게 다리와 옆구리에 박혀 버려, 이 모양이다.


몸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가며, 지면에 찰싹 달라붙으며 쓰러졌다. 조금씩, 눈앞의 경치가 희미해져 간다.



――이제 글렀나, 하고 멍한 머리로 생각한다.


하루에 수십 체씩 랜덤으로 마수가 출현하는 지금으로서는 마수로 인해 부상을 입는 것은 그렇게 드물지 않다. 비교하자면, 교통사고로 중상자가 생기는 건수와 크게 다를 바 없을 정도다.


츠구미의 경우, 상황은 희귀 케이스지만, 결과적으로는 변함없을 것이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자신은 짧지만 좀처럼 장렬한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이렇게 인생을 돌아보고 싶어지는것도 어떤 의미로 주마등이라고 부를 수 있는걸까?


――나나세 츠구미에게는, 7살 이전의 기억이 없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재투성이가 된 누나가, 츠구미를 껴안는 광경이었다.


10년 전에 일어난 특A급의 마수가 일으킨 대재난. 도시 하나가 멸망한 재해의 생존자들 중 한명이, 츠구미와 누나 치도리였다.


츠구미도 치도리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느것 하나 기억하지 못했지만, 서로가 가족이라는것 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보호된 뒤, 어떤 노인에게 맡겨져, 거의 누나와 단둘이 사는 형식으로, 지금까지 둘이 의지하며 살아왔다.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치도리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슬퍼할까. 아니면 말썽꾸러기 동생이 없어졌다고 기뻐할까. 하지만, 분명 그녀는 울겠지, 하고 츠구미는 쓴웃음을 지었다.


소중한 사람이다. 무슨 행동을 할 지는 읽을 수 있다.


그렇기에, 츠구미는 강하게 생각했다.



"――아, 직. 죽지 않아."



――츠구미가 죽어버린다면, 이번에야말로 치도리는, 누나는 외톨이가 되어버린다.


게다가 츠구미가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을 당한다면, 분명 치도리는 원인을 조사할테지. 그 과정에서, 그녀가 마법소녀를 목표로 한다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싸움이라니, 그 자상한 누나에게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되지. 어떻게 해야 이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걸까.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미루어보아, 마법소녀와 마수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결말이 나기 전에, 츠구미의 체력이 바닥나거나, 주변 건물의 붕괴에 휩쓸리는게 빠르겠지.


쾅, 하고 지면에 화를 낸다. 자신의 무력함에 구역질이 났따.



하지만, 아직 죽을 순 없다. 죽어서는 안 된다.


자신은 아직――누나에게 보답하지 못했단 말이다!



――10년 전, 활활 타는 거리에서 울던 츠구미의 손을 잡고, 그녀는 필사적으로 뛰었다. 자신도 무서웠을텐데, 그런 모습은 추호도 보이지 않고, 격려하듯 웃어주었다.



그 강인함과 상냥함은, 츠구미는 무엇보다도 값지다고 생각한다.


힘들 때도 괴로울 때도 계속 누나는 옆에 있어주었다, 츠구미는 아직 아무것도 치도리에게 갚아주지 못했다. 이대로 죽는다면, 반드시 죽은 후에도 영원히 후회할 것이다. 그런건 싫다. ……싫단 말이다.


그런 이기심과 비슷한 생각을 품고, 츠구미는 쥐어짜는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아, 주겠어. 이런 이유를 모르는 곳에서, 죽을까보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떨리는 발길로 일어선다. 피를 머금은 교복이 무거워 어쩔 수 없다. 츠구미가 서 있는 땅은 이미 피투성이이다. 하지만, 아직 나는 살아있다.


상황은 최악이며, 언제 다시 전투의 여파에 휩쓸릴지 모른다. 그런 상태인데, 츠구미는 미소지었다. 무엇 하나 포기하거나 하지 않은, 그런 결의가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런 만신창으로 걷기 시작한 츠구미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검은 그림자는, 마치 재미있는 것을 봤다는 듯, 탁 한번 화려한 꼬리를 흔들며 말했다.



"――이래서 인간은 어리석다니까."



하지만, 그것 또한 묘미인가. 그렇게 말 한 검은 그림자는, 천천히 츠구미 쪽으로 발길을 내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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