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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번역/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4장 91. 셰이프 시프터

by 린멜 2020. 1. 13.


91. 셰이프 시프터







――때가, 왔다.



기우뚱 하고 시야가 흔들리며, 경치가 반전되어 간다.


주변에 결계가 펼쳐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츠구미는 작게 숨을 몰아쉬고 마수의 기색이 느껴지는 쪽――5층탑의 상공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검은 금이 간 듯한 것이 있었고, 그 갈라진 틈에서 뭔가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다.



"――저건, 검은 여우?"



눈을 가늘게 뜨고, 그렇게 중얼거린다.


시선의 끝에는, 바람에 흔들리듯 검은 여우 같은 마수가 떠 있었다. 그 꼬리는 여러개로 갈라져 있어, 보기만 해도 재앙이 넘쳐보였다.



검은 여우는 그대로 탑 지붕에 착지해 이쪽을 언뜻 보고는, 지붕 위에서 한바퀴 회전했다. 그 순간, 연기가 뿜어져 나오듯 여우의 몸이 검은 그림자에 휩싸인다.



――어떤 공격이 온다. 그렇게 생각한 츠구미는 방어자세를 갖추었지만,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3미터가 넘는 거구에 단단해 보이는 체모. 흉기라고 할 수 있는 큰 어금니를 가진 생물. ――검은 커다란 멧돼지가 거기에 있었다. 강함으로 비유하자면, 크게 어림잡아도 D급 정도의 압력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맥빠짐을 느끼면서도, 츠구미는 방심하지 않고 전투태세를 취했다.



"……B급의 마수 치고는, 생각했던 것보다 약한걸까. 뭐, 별로 상관없지만."



다행히도 저 커다란 멧돼지에게서 강한 힘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판단한 츠구미는, 붉은 오층탑을 파괴하면서 뛰어내려온 멧돼지에게 전이로 다가가, 실을 얽히게 한 뒤, 솜씨좋게 몸을 잘게 베어갈랐다.



너무나 허망함에 당황했지만, 왠지 꺼림칙한 예감이 들어 뒤로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피를 뿜어내고 있는 멧돼지의 몸이 진흙처럼 녹았다. 멧돼지의 살조각과 선혈은 검게 물들어 질량을 늘려가며,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간다.



"과연. ……이건 질이 나쁠 것 같네."



그렇게 중얼거리는 츠구미의 눈 앞에는, 4미터 급의 거대 사마귀가 손낫을 세우며 서 있었다. 멧돼지의 몸이 변화한 것이다. 아무래도 이번 마수는 변신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건 조금 오래걸릴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츠구미는 실을 뽑았다.






◆◆◆






멧돼지에서 시작해, 사마귀, 가고일, 만티코어, 와이번 등,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마수들이 차례로 나타났지만, 츠구미는 단조로운 작업을 하듯이 그것들을 베어나갔다.


한번 검은 그림자가 몸의 형태를 바꾸고 있을 때 공격을 시도해봤지만, 실은 그림자를 빠져나갈 뿐, 특별히 데미지가 가해진 모습은 없었다. 아무래도 변신하는 동안은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 마수는 츠구미가 싸운 적이 있는, 아니면 조우한 적이 있는 상대의 모습을 흉내내는 것 같다. 변신한 마수가 사용하는 기술도, 거의 츠구미의 기억 그대로이다. 그것도 일부러 등급순으로 모습을 바꾸고 있는것을 보니, 쓸데없이 재주가 꼼꼼하다.



만약 그 변신 대상이 시뮬레이터의 가상대전을 포함한다면, 이 후에 수십체의 A급 마수를 상대하게 된다. 그리고 이대로 순조롭게 쓰러뜨려 나가다 보면, 마지막에는 일찍이 사투를 벌였던 이레귤러――라돈을 마주할 것이다.


지금의 츠구미라면, 만전의 상태라면 그 라돈을 상대해도 이길 자신이 있지만, 역시 다른 A급과의 연대 후에는 체력과 신력이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걱정을 하면서, 츠구미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 마수를 격파하자, 마수의 그림자가 조금이지만 흔들리는 것 같았다.



거리를 잡으면서 관찰해보니, 일정 이상의 크기를 넘어가면 형태가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추측의 범위는 낼 수 없지만, 저 검은 여우는 그렇게까지 큰 것으로는 변신할 수 없는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이지만 마음이 놓였다.



"만약 그렇다면, A급과 B급의 대부분은 부피 오버로 변신하지 못할거야. ……이건 어떻게 할 수 있을지도."



그렇게 조용히 중얼거리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이 마수――검은 여우의 등급은, 정부로부터의 정보에 의하면 B급이다. 아무리 마수라 해도, 힘의 리로스에는 한계가 있다. 이대로 변신에 의해 힘을 쓰다보면, 몸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소멸할 가능성이 높다.



――즉, 이것은 지구전이다. 츠구미가 쓰러지는 것이 먼저인가, 마수가 힘이 다하는 것이 먼저인가. 목숨을 건 치킨 레이스다.



과거 츠구미가 싸웠던 마수, 그리고 시뮬레이터에서 싸웠던 마수의 수나 크기를 시산하면서, 페이스 배분을 생각한다. 시뮬레이터로 싸웠던 것 중에는 소형 A급 마수도 몇 구가 있었지만, 비록 연전일지라도, 한 번 싸운 상대에게 질 생각은 조금도 없다.


작전을 정한 츠구미는, 전이 횟수를 줄이고, 가능한 한 실을 다루는 수완을 이용해 마수를 쓰러뜨려 나갔다. 이따금 섬뜩할 때도 있었지만, 다행히 이 이쓰쿠시마는 차폐물이 많다. 힘을 온존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장소다.



……신사의 일부나 거리의 경관이 부숴질 때마다 여성의 비명 같은 것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특별히 인기척이 없기 때문에 신경쓰면 지는 것일 것이다. 결계가 무사히 해체되면 원상복구가 되므로, 가능하면 다소의 파괴행위는 눈감아 주길 바란다.



"이걸로 백체 째!! 아―진짜, 밖이 벌써 깜깜한데……"



숨을 헐떡이며, A급 마수로 변신한 검은 여우를 잘게 썰어간다. 해가 떨어져 시야가 나빠지고 있지만, 마수가 있는 곳은 둘러친 실로 파악하고 있으므로 문제는 없다.



다행히도 원래 등급의 문제인지, A급 마수로 변신하더라도 검은 여우는 그 능력을 완전히 재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미노타우로스가 좋은 예일 것이다. 여우는 손발의 부분 전이나 어둠화 등은 재현할 수 있지만, 이쓰쿠시마에 그 거대한 미궁을 만들어 내는 것 까지는 할 수 없다. 능력이 부족한 A급 따위는, 지금의 츠구미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슬슬 변신하는 마수도 막바지일텐데, 정말 그걸로 끝이날까. 만약을 위해 여력은 남겨두고는 있지만, 명확한 토벌 방법을 찾지 못하는 이상, 이 지구전을 계속할 수 밖에 없다.



"……벨 님은 어떻게 생각해?"



마수가 변신을 하고 있을 때――싸움의 중간중간 츠구미는 벨에게 그렇게 물었다. 흑표범의 모습에서 고양이의 모습으로 돌아온 벨은, 츠구미의 어깨에 걸터앉아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아마도 네놈의 판단이 틀린것은 아닐 것이다. 당초보다도, 확실히 저 여우는 약해졌다. 정말이지, 합리성을 생각한다면 수에서 승부하는 것보다 A급의 재현도를 높이는 것이 의미가 있었을텐데, 바보같은 놈이로군."


"그러면 이쪽의 부담이 많이 늘어나는데요…… 싫다, 만전의 A급의 적과 몇 번이나 싸운다니."



단조로운 지구전이 보기에는 재미없다는 건 알지만, 난이도를 올리려는 건 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검은 그림자 덩어리는 형태를 바꾸려고 꿈틀거리고, 구불구불 땅을 기어다니고 있다. ……왠지 보고 있으면 소름 끼치는 풍경이지만, 이 상태일 때 공격해도 의미가 없기 때문에,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



드디어 변신할 것이 없어졌나――츠구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볼에 날카로운 통증이 달렸다.



"읏!! 대체 뭐가!?"



백스텝으로 거리를 잡고,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장소를 살펴본다. 그곳에 있던 것은, 야구공만한 크기의 작은 상자였다. 그 형상에 기시감을 느껴, 츠구미는 반사적으로 전이로 멀리 떨어진 고지대로 이동했다.



――그 찰나, 츠구미가 방금 전까지 있던 곳에서 모래먼지가 일어났다. 아니――저건 토네이도이다.



그리고 서서히 폭풍처럼 거칠게 불어대던 모래의 베일이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 검은 그림자의 모습을 인식한 츠구미는, 짜증을 감추치 않고 혀를 찼다.



"웃기지도 않는 짓을…… 하필이면, 그 사람으로 둔갑하다니."



――나타난 그림자는, 인간 형상을 하고 있었다.


쭉 뻗은 키에, 곧은 생머리. 얼굴은 그림자가 걸려 있어서 보이지 않지만, 그 의연한 모습을 츠구미는 잘 알고 있었다.



끓어오르는 분노의 충동을 억제하고,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수 있도록 자세를 가다듬는다. 이것은 용서하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다. 명확한 살기를 가지고, 츠구미는 마수를 노려보았다.



"――마수 따위가, 이 이상 히츠기 씨를 폄훼하지 마."



분노를 토하듯 고하는 말에, 히츠기 아이리의 모습을 한 마수는, 하현 달처럼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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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일 기준 연재분 다 따라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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