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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번역/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4장 94. 나비의 날갯짓

by 린멜 2020. 2. 2.


94. 나비의 날갯짓





츠구미는 불시에 습격해 오는 참격――아마 커다란 공기의 칼날에 의한 공격을 피하면서, 잔해가 굴러다니는 거리를 숨듯이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수는, 츠구미의 위치를 어떠한 능력으로 감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흘끗 먼발치에서 본 마수는, 어딘지 모르게 여자같은 몸을 하고 있었다. 바람을 조종하는 능력을 생각하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소녀를 원형으로 하고 있는걸지도 모른다.



인물의 판단을 할 수 없는것은, 마수의 전신이 심한 화상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로 생생하게 남은 그 화상은, 아직도 검붉은 피와 타는 냄새를 퍼뜨리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좀비영화보다 더 무서운 모습이다.



――애초에 이 마수는, 대체 무엇을 재현한 것일까?


마수가 지금까지 모습을 바꿔 온 것은, 츠구미가 조우한 상대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마수의 모습은, 그 조건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저 화상 모습이 예외거나, 혹은 츠구미가 그 여성의 존재를 잊고 있거나 둘 중 한가지이다. 만약 그것이 후자일 경우, 저 여성은 대화재에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보를 원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타이밍이 아니어도 좋았을텐데. 아무래도, 정말 불행 체질인 것 같다.


몸집으로 판단하면, 적어도 『사쿠라 누나』일 가능성은 없어 보였지만, 그런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현재 상황은 별로 좋지 않다. 움직이는 데는 문제 없지만, 부상도 심한 상태다. 신력이 얼마 남지 않은 이상, 내구전을 펼치기는 어렵다. 즉, 불리하더라도 치고 나갈 수 밖에 없다.



저 마수는 공격은 화려하지만, 그 몸 자체는 그다지 튼튼해 보이지 않는다. 한 가닥의 실만 닿는다면, 승기는 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자신을 고무하며, 츠구미는 똑바로 앞을 응시했다.


탐지용 실을 통해 전해지는 마수의 발걸음은, 느리지만 착실하게 츠구미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원거리 공격이 메인인 마수가 왜 이쪽으로 다가오는지는 의문이었지만, 행동의 방향을 알 수 있다는 것은 고마웠다.



"아무래도, 저 바보같은 위력의 참격 외에도, 몸 주위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둘러싸고 있는 것 같네. 숨겨둔 실이 끊어지는걸 보니. ……히츠기 씨의 상자보다는 낫겠지만, 단순한 공격은 통하지 않겠는걸."



히츠기의 그것이 상자의 결계라면, 저건 바람의 결계이다. 손발을 봉하려 했던 실은 전부 바람에 의해 잘려날라가, 허무하게 공중을 날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라고 하는 부가가치를 생각하면, 질이 나쁘다는 건 그대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는 방향을 알고 있다면, 얼마든지 방법은 있다. 언제나 같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잘 생각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최선의 수를 찾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츠구미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런 상황임에도, 츠구미의 머릿속은 무척이나 냉정했다.



"좋아, 가자. ――반드시 살아남겠어."





◆◆◆





벨은 마수의 공격이 닿지 않는 상공에서, 냉엄한 얼굴로 츠구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언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조용히 눈 아래에 펼쳐지는 참상을 내려다본다.



"흠, 설마 B급 정도에 고전할 줄은. ……방법은 있다고 말 했지만, 어떨련지."



그렇게 불손하게 말하는 벨이었지만, 그 표정은 굳어 있었다. 상대가 이레귤러임을 알면서도, 츠구미에게 싸울 것을 강요한 것은 벨 자신이다. 그 일에, 아주 조금이지만 겸연쩍음을 느끼고 있는걸지도 모른다.



지상에 있는 츠구미는 마수를 유도하듯이 달리면서, 해안――오오토리가 있는 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마도 능력 관계상, 지나치게 넓은 산보다는 시내 쪽이 좋겠지만, 솔직히 그 부근은 여신의 욕하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벨은 가까이 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나중에 고쳐진다 해도, 자신이 모셔져 있는 곳이 철저하게 파괴되는 것은 견디기 힘들겠지. 여신들의 심정은 알 수 없지만, 그 날카로운 목소리는 신경에 거슬린다.



――그건 그렇고 저 마수,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화상으로 뒤덮인 얼굴은 추악해 차마 볼 수 없지만, 신의 눈을 가지고 있으면, 원래 얼굴도 어느정도는 보인다. 다소 모습이 다르고, 둘러싼 분위기는 다른 것 같지만, 아무래도 그 얼굴에는 기시감이 있었다.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한 인간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왠지 마음에 걸린다. ……이 싸움이 끝나면, 츠구미에게 이야기 해 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벨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벨은 상대가 아무리 강적일지라도, 츠구미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틀림없는 믿음이었다. 벨은 믿고 있다. 츠구미가 저 마수를 쓰러뜨리고, 자신의 곁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해안 부근까지 도달한 츠구미는, 참격을 전이로 피하며 분주하게 실을 둘러치고 있었다. 그런 츠구미의 아래에, 비로소 마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수와 마주선 츠구미는 조위를 둘러보며, 잔해와 나무의 배치를 확인하는 듯 했다. 그 모습에, 긴장이나 공포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째선지 마수의 모습이 이상하다. 츠구미의 얼굴――하가쿠레 사쿠라를 정면으로 바라본 마수는, 꼭두각시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며, 달그락달그락 온몸을 떨고 있다. 떨림이 멈추는 순간, 주위를 둘러싼 도깨비불이, 적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했다.



『아, 』



――그것은 작은 목소리였다. 타버린 목구멍에서 나온 그 목소리는 쉬어 있어, 껄끔껄끔한 불쾌감이 귓전을 맴돈다.



『아아, 아』 『돌, 려줘』 『나의』 『돌려줘』 『어째서』 『용서 못 해』 『절대로』 『미워』 『미워』 『미워』 『――죽여, 버리겠어』



세상의 슬픔을 졸인 듯 한 원망의 소리가, 해안에 울려 퍼진다. 마수는 불에 탄 피부를 쥐어뜯으면서,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츠구미를 노려보고 있다. 그런 마수에 대해, 츠구미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경계를 풀지 않았다.



마수가 오른손을 치켜올렸다. 그 찰나, 팔 주위에 방대한 양의 힘의 파동이 소용돌이쳤다. 의미를 다하지 못하는 포효와 함께, 바람의 칼날이 내려쳐진다. 그래――산을 가를 정도의 강대한 참격을.



――츠구미는, 그것을 보고 작게 미소짓고 있었다.



"아아, 그걸 기다렸어."





◆◆◆





닥쳐오는 바람의 참격을 피부로 느끼며, 츠구미는 오른손의 실을 크게 당겼다. 그와 동시에, 나무나 잔해를 경유한 실이 츠구미의 몸을 옆으로 멀리 날리면서, 아슬아슬하게 참격을 회피한다. 옷이 좀 찢어지긴 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참격에 의해 모래사장이 갈라지는 것을 시야의 끝으로 인식하면서도, 공중에 뜨면서, 츠구미는 피가 밴 왼 손을 살짝 옆으로 후려쳤다.



그와 동시에, 마수를 둘러싸듯 모래 속에 배치되어 있던 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굳이 전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실을 얽힌 채로 두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 공격을 스무스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계속 봤어. 넌 공격할 때에만 바람 방패가 사라져. ――잘라 버려, 나의 칼! 모든 것을 먹어치워버려!"



빙그르르 회전하면서, 손가락을 접는다. 마수는 놀ㄹ나 듯이 눈을 떴지만, 이미 늦었다.



둘러친 실이 얼마 남지 않은 힘에 의해 강화되어, 마수에게 덤벼든다. 이쯤 되면, 더는 계책은 필요 없다. 뇌가 처리할 수 있는 한계까지 실을 조종해, 마수를 몰아넣어 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후의 일격으로는 부족하다.



"큭……!! 힘이 부족해, 이제 조금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미 실은 마수를 붙잡고 있다. 밀착돼 있는 이상, 이제 바람의 결계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마수의 몸은 단단했다. 피부에 실은 닿았지만, 그 살을 잘라내는 데는 이르지 못한다.



――【폭식】을 사용해야 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입술을 깨물고 부정한다. 폭식은 비장의 카드이자, 자신을 좀먹는 저주이기도 하다. 이 이상의 사용은, 영혼도 먹힐지도 모른다.



손발은 이미 너덜너덜했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아마 뼈도 몇 개 부러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츠구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폭포같은 땀이 흐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실을 강화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그 한 걸음이 너무나도 멀었다.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실을 조종하는 츠구미의 발밑에, 파도의 물방울이 걸렸다. 아마도, 마수가 내지른 참격에 의해 큰 파도가 일었을 것이다. 젖은 발에 의식을 돌렸을 때, 츠구미는 어떠한 것을 깨달았다.



"……신력이, 조금 회복됐어?"



아주 미미한 양이지만, 츠구미 내의 신력의 회복되어 있었다. 그저 바닷물에 닿았을 뿐이었는데. 그리고 츠구미는, 어떠한 일을 떠올렸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 벨은 그 막강한 힘을 바다 위에서 해방시켰다. 그렇다면, 벨의 힘이 다소 바다에 녹아있었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이판사판, 걸 수 밖에 없다.



츠구미는 고개를 들고, 바다로 달려나갔다. 그 등을 쫓듯, 마수가 묶인 손을 움직여 중간 규모의 공격을 가해 왔지만, 그것을 감각만으로 계속 피한다. 그리고 츠구미는, 파도가 밀어닥치는 곳――물이 완전히 빠진 오오토리 앞에 도착했다.



……운이 좋다면, 실을 강화할 수 있을 정도의 신력은 회복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위험이 높아도 폭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지금은,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



매달리는 듯한 기분으로, 다리를 바닷물에 담근다. ――물이 닿은 곳에서, 서서히 온몸으로 스며들듯 신력이 차오른다. 그 따뜻함에, 저도모르게 눈물이 글썽거렸다.



――굉장한걸. 역시 신 님이 하는 일에는, 확실히 의미가 있어.



만약 그 때 벨이 바다 위에서 힘을 해방하지 않았더라면, 츠구미가 손 쓸 방도는 더 이상 없었다. 단순한 우연이란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런건 상관없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벨은 츠구미를 구해주었다. 비록 그것이 의도한 바는 아닐지라도, 벨은 언제나 츠구미를 절망에서 구해주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런 벨이, 츠구미는 너무 좋았다.



"벨 님, 고마워. ――덕분에 난 아직 싸울 수 있어."



츠구미에게 연결된 실이 흔들리며, 반짝반짝 금빛을 내기 사작한다. 해면에 빛이 난반사하면서, 츠구미를 중심으로 환상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급격한 신력 보급으로 날아갈 겉 같은 사고를 어떻게든 유지하면서도, 츠구미는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 ――이번에도, 내 승리같네."



오오토리를 등진 츠구미는, 오른손을 똑바로 마수에게 뻗어, 그 윤곽을 손가락으로 덧그렸다.



――먹어라, 하고 지휘자처럼 손가락을 내리친다. 빛의 라인이 종횡무진 달려나가, 나사의 태엽을 감듯이 금빛 실이 마수의 몸을 옥죄고 있다. 원망스러워 하는 듯한 마수의 표정이, 왠지 머리에 남았다.



아련한 시야 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마수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츠구미는 천천히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아, 직. 아직일지도, 몰라. 눈을 감으면, 안 돼."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필사적으로 열면서, 츠구미는 손톱이 떨어져나간 왼손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흐릿한 시야는 더 이상 의미가 없지만, 마수의 소멸이 확정되지 않은 이상, 아직 의식을 잃을 수는 없다.



그렇게 츠구미가 모라사장에 웅크리고 있는데, 눈 앞에 작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이제 됐다, 네놈은 잘 해냈다."



하늘에서 내려온 벨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벨, 님. 마수는……?"


"죽었다. 지금은 【폭식】이 잔해를 먹고있다. ――흥, 네놈은 언제나 너덜너덜이군."



그런 평소와 같은 벨의 내뱉는 말에, 츠구미는 안심한 듯이 미소지었다.



"에헤헤, 미안해. 그래도, 노력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좀처럼, 변하질 않네."



숨이 끊어질 듯 그렇게 대답하는 츠구미의 머리에, 벨은 살짝 손을 얹었다. 손이 닿은 부분에서 비가 내리는 듯한 소리가 머릿속에 울려퍼지며, 점점 의식을 빼앗겨 간다.



"……네놈은 네놈 그대로가 좋다. 그러니 그대로 변하지 마라. ――자 자거라, 나의 무녀여. 밤은 짧으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츠구미의 의식은 완전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잠자는 얼굴은 온화하고, 작은 미소를 띠고 있다.



――토벌 시간, 총 15시간. 대장정의 싸움이, 드디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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