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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번역/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4장 93. 불합리한 불꽃

by 린멜 2020. 1. 23.


93. 불합리한 불꽃






벽 속에서 빠져나온 츠구미는, 떨어진 곳에 있는 고지대에서, 마수가 쓰러져 있는 곳을 관찰하고 있었다.


목을 부러뜨려 행동하지 못하게 했지만, 그것으로는 즉사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로 끝장을 봤으면 좋았겠지만, 그 좁은 장소에서 피를 흩뿌리는것은 망설여졌다.


――그 마수의 검붉은 피에, 불쾌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츠구미의 이런 감은, 유감스럽지만 잘 맞는다. 경계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지난번 이레귤러와 싸운 히츠기는, 독무를 들이마시는 바람에 마수에게 의식을 빼앗겼다.


그렇다면, 같은 이레귤러인 이 마수의 체액이 몸에 닿는 것은 좋지 않은거 아닐까? 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붙는 것도 어떨까 싶었지만, 다행히 하가쿠레 사쿠라의 전투복은 노출이 적어서, 마수에게 달라붙어도 직접 피부가 닿는 부위는 거의 없다. 목을 부러뜨린것은, 그것이 제일 간편했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조금 쇼킹했을지도 모르지만, 실로 잘라내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다.


마수의 방어를 뚫고 나가는데 약간의 대가는 치렀지만, 그래도 충분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목이 따끔거려. 더 깔끔히 잘렸으면 좋았을텐데."



바람에 날려 얼굴에 늘어진 옆머리를 귀에 걸면서, 츠구미는 어깨 언저리에서 난잡하게 헝클어진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그리고 머리를 만지고 있는 손의 반대쪽 손――왼손은 적지 않은 양의 피로 물들어 있어, 자세히 보면 몇 개 정도 손톱이 벗겨져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손가락 끝에 묶은 실로 지혈은 된 듯 하지만, 하얀 손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상처는, 보기만 해도 애처롭다.



"……그 꼴을 보니, 아무래도 약간은 길들인 것 같군."



귀찮은듯이 머리를 쥐고있는 츠구미에게, 벨이 그렇게 말을 걸었다.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팔짱을 낀 그 모습은, 자못 「불쾌합니다」라는 아우라를 자아내고 있다.



그런 벨의 모습을 보면서, 츠구미는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뭐, 예전에 비하면 나은 편이려나. 영혼까지는 가져가지 못했고말야. ――역시, 【폭식】 스킬은 강력하구나."



이 상처는, 마수에 의해 입은것이 아니라, 【폭식】의 제물로 바치기 위해, 츠구미 자신이 입힌 것이다.


반년 전의 라돈전 이후, 츠구미는 전투 종료후 이외에 【폭식】스킬을 사용하는 것을 벨이 금지시켰다.


하지만, 최근들어 벨도 생각하는 바가 있었는지, 순간적인 능력 강화――머리카락이나 손톱, 피부 일부 등, 간단히 복구할 수 있다면, 공물로 사용해도 상관없다고 말 한 것이다.



츠구미 자신도, 이레귤러 등의 마수의 존재에 위기감을 느낀 바 있어, 수단은 많은 것이 좋다고 생각해, 몇 번인가 실험적으로 【폭식】 사용법을 시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폭식】으로 강화한 것은, 당연히 【투명화】 능력이다.


『투명화』는, 모습과 기색을 감추고 적에게 다가가, 덫을 놓는 데 매우 효과적인 능력이지만, 등급이 높은 마수에게는 통하지 않는 일이 허다했다. 아마도 모습이나 기척 이외의 마수가 알 수 있는 요소――공간의 흔들림 등이 지워지지 않는걸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 변신하는 마수도 마찬가지였다. 저 마수는, 전이로 이동하는 츠구미의 움직임을 대략적으로 파악했던 적이 있다. 그 탐지를 속이기 위해서라도, 투명화 강화는 필수였다.



츠구미로서는, 이번 강화로 양 손의 손톱을 전부 먹힐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머리카락 반쪽과 손톱 세 개 정도로 넘어갔다. 이 정도의 부상이라면, 결계를 풀었을 때 자동으로 복구되므로 특별히 문제는 없다.



――하지만, 성공해서 정말 다행이다.


아무리 다소 컨트롤이 가능하게 되었다고는 해도, 이 【폭식】이 불안정하고 위험한 것임은 변함이 없다.



손발을 【폭식】의 입에 먹혔을 때의 일은,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 몸의 반쪽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과, 그것을 덮어버릴 정도의 고양감과 다복감. 몸을 먹히는 공포와, 혼이 없어지는 감각이 뒤섞이면서, 마치 뇌가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모든것을 맡겨 버리고 싶을 정도로.



……지금은 아직 물리적인 대가로 끝났지만, 방심하면 영혼까지 내 줄 수도 있다. 그것만큼은 절대 피해야 했다. 벨도 츠구미의 그런 위험함을 알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폭식】의 사용을 금하고 있었을 것이다.



"마수의 기색은 서서히 약해지고 있다. 곧 끝나겠군."



벨의 그 말에, 츠구미는 살짝 가슴을 쓸어내렸다. 장시간에 걸친 내구전 탓에, 몸은 벌써 완전히 지쳐 있었다.


마지막이 속임수여서 그런지, 왠지 소화불량인 듯한 느낌도 들지만, 이걸로 끝난다면 상관없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츠구미의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츠구미는 순간적으로 벨의 손을 잡고, 멀리 있는 나무 그늘에 숨듯 전이했다. 쿵쿵 커다란 소리를 내는 심장 위를 오른순으로 누르면서, 숨을 고른다.



"어이, 갑자기 무슨 짓을 하는게냐. 허락도 없이 나를 만디자니, 보통이라면 용서하지 않았을 거야."



신경이 곤두선 벨이 츠구미에게 불평하는 그 순간――눈아래 펼쳐지는 풍경이 폭발했다. 신사가 있는 해안선이 전부 흙먼지로 뒤덮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한 박자 늦게, 폭음이 츠구미의 귀에 들려왔다.



"……벨 님. 저녀석, 힘이 남지 않은거 아니었어?"


"그랬을 텐데……"



츠구미는 가만히 폭발의 중심지――마수가 있었을 장소를 응시한다. 어둠 속에서, 투두둑투두둑 소리를 내며 흙먼지가 걷힌다.



거기에 나타난 것은, 검붉은 불꽃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인간 형상의 마수의 주변에, 불꽃같은 것이 둘러싸고 있다. 그 인형은 휘청휘청 좌우로 흔들리면서, 마치 도깨비불처럼 주위를 그 몸을 태우는 불꽃으로 비추고 있다.



――아니다. 저건 아까까지 싸웠던 마수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마수에 얽힌 기색은 이질적이었다. 그 마수는 멧돼지의 모습이었을 때도, 히츠기의 모습으로 변신했을 때도, 본질인 검붉은 악의는 변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저 불타는 마수에게서는, 그 악의를 읽을 수 없다. 그저, 순수한 무시무시함만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그것은 변신이라기보다는, 다른 바수로 변질해 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가만히 쌀알처럼 작아 보이는 마수를 관찰하고 있는데, 시야 내로 붉은 불꽃이 어른거렸다. 무심코, 그 불꽃을 피하듯이 몇 걸음만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그것은, 거의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츠구미의 명암을 갈랐다.



무의식적으로 내디딘 곳에서, 노출된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츠구미는 그 자리에서 마구 헛디뎠다.


그리고 아주 잠깐 마수에게서 눈을 떼는 순간, 갑자기 몰아친 강풍에, 츠구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강렬하게 날아가고 말았다. 바람에 휩쓸려 데굴데굴 산기슭을 구르면서도, 어떻게든 자세를 취한다.



"큭, 대체 무슨 일이……"



혼란스러운 마음을 억누르면서, 츠구미는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륵, 하고 바위와 부딪친 이마에서 하염없이 붉은 피가 흘러나온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왼쪽을 보니, 계곡처럼 깊은 홈이 파여 있었다. 그리고 시선을 더 위로 향하자――뒤에 우뚝 솟은 산의 일부가, 다섯개로 갈라져 있었다.



"……하?"



갈게 잘린 산의 잔해들이, 큰 소리를 내며 바위사태처럼 무너져 간다. 덜덜거리며 자신의 몸이 떨리는 것을 싫어도 알 수 있었다. 그 때, 만약 왼쪽을 향해 움직였다면, 아마도 자신은 이 산과 같은 운명을 걷고 있었을 것이다.



――이건, 자칫 라돈보다도 공격력이 높을지도 모른다.



주륵, 하고 초조함과 공포로 몸에 땀이 흐른다.



이레귤러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놀이공원의 파란 도깨비처럼 부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머리 한 구석에 있었다. 하지만, 마수가 이렇게 강력해져서 돌아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절체절명, 그런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컨디션은 최악. 신력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츠구미에게도 오기는 있다. 아무리 상대가 불합리하다고 해도, 결코 삶을 포기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신과,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마음속으로 그렇게 각오를 다지고, 츠구미는 가는 실을 광범위하게 펼치면서, 조용히 정신을 집중시켰다. 제2라운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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