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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번역/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4장 92. 가짜 그림자

by 린멜 2020. 1. 17.


92. 가짜 그림자







회전하는 검은 상자가, 지면이나 건물을 깎아간다. 그 위력은, 정부에서 싸웠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즉 이 『히츠기 아이리』는, 힘에 제한이 걸린 그날의 재현이라기보다도, 마법소녀로서 풀스펙으로 활동하고 있는 상태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본래 히츠기의 능력 범위는 대략 300미터. 이 마수가 어디까지 히츠기의 능력을 재현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악의 경우 히츠기 그 자체를 상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능력으로 따지면 이쪽도 조건은 같다.


신체능력이나, 스킬 제한을 받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의 츠구미는 마법소녀로서 만전인 상태다. 연속된 전투로 조금의 피로는 쌓였지만, 그래도 질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날아서, 뛰어서, 피하고, 따돌리고. 츠구미는 공격을 하지 않고 피하기만 하며, 상대의 모습을 살폈다. 히츠기의 모습을 한 마수는, 자신의 주위에 상자를 돔 모형으로 전개해, 그것을 고속회전시킴으로써 불가침의 벽(배리어)같은 것을 만들고 있다.



정찰로 뽑은 실은 곧장 상자에 의해 끊겨버려 중심에 있는 마수에게는 닿지 않는다.



지금 남아있는 힘을 쏟아부어 실을 강화한다면, 저 벽을 돌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면으로 향한다고 해도, 금방 대응할 것이다.



그래도 노력하면 손발 하나 정도는 자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마수가 저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이 없는 이상, 기동력을 줄여봤자, 별 의미가 없다. 어떤 방법으로 눈치채지 않고 다가갈지가 과제인 것이다.



거기에다, 히츠기의 모습을 한 것을 필요 이상으로 상처입히는 것은 역시 저항이 있다. 상대가 마수인 이상 봐줄 생각은 없지만, 가급적 비참한 모습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덧붙여 말하자면, 사람의 형태를 한 것을 마법소녀가 상처주는 장면은, 세상에는 조금 자극이 강할지도 모른다. 경우에 따라서는, 터무니없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정말 귀찮다.



츠구미는 사방팔방에서 계속 쏟아지는 공격을 피하면서도, 찢어진 옷 조각이 흩날리는것을 보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이상은 헛되이 체력을 소모할 뿐이다.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역시 그 방법이 무난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츠구미는 마수가 있는 둠 모형의 벽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저 안의 상황을 살폈을 때, 생각해 낸 작전이 한가지 있다. 그것은 다소의 운의 요소와, 츠구미 개인적 감정만 무시해 버리면, 최선의 방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만약 그것이 실패한다고 해도, 또다른 작전을 생각하면 된다.



이 작전의 첫 단계. 마수가 눈치채지 못하기 위한 능력(스킬)― 투명화가 지금보다 조금만 더 강화된다면, 이 작전은 거의 성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츠구미는 지그시 자신의 양손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부탁이니까, 가능하면 과식하지 말아줘."






◆◆◆





히츠기 아이리의 모습으로 변신한 마수는, 안전한 방어벽 속에서 경박하게 웃으면서, 신나게 양손을 흔들고 있다. 마치, 수많은 관중 앞에서 지휘라도 하는 것처럼.



이 마수는 가까이 있는 인간의 기억에 간섭해, 실제로 그 인간이 『위험하다고 느낀 것』을 자신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존재로서는, 변신이라는 개념이 구현된 요괴라고 바꿔말해도 좋을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수많은 괴물을 상대해 온 마법소녀에게는 가장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 『마법소녀』라는 모습은, 생각 이상으로 쓰기 편리하다. 변신하는데 엄청난 힘을 써버렸지만, 그럼에도 남는 장사다.


실제로, 방금 전까지 우세했던 마법소녀도, 이 회전하는 상자의 벽을 앞에 두고, 덤비지 못하고 그저 도망치고만 있다. 저 마법소녀가 힘을 다 쓰는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수는 웃었다.



저 마법소녀에게, 전이의 능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 방어벽은 몸을 지키기 위한 배리어였고, 녀석을 몰아붙이기 위한 함정이기도 했다. 만약 녀석이 이 좁은 공간에서 실을 사용하면, 반드시 마수의 피를 뒤집어쓰게 된다. 그것이 마수의 의도였다.



변신에 특화된 이 마수의 혈육은, 인간에게는 극약이다. 언제나 어지러이 변질을 거듭하고 있는 마수의 피가 피부에 닿으면, 그 부분에서부터 세포의 침식이 시작되고, 나중에는 같은 이형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 마법소녀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싸울 때도 마수에게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였고, 내뿜어져 나오는 피도 일절 건드리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도망치는 모습을 보면, 그저 겁쟁이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마수는, 바깥의 위화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 마법소녀는, 어디로 갔지?



방어벽 밖으로 펼쳐져 있는 상자 주위에서는, 마법소녀의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다. 능력의 범위 밖 장소까지 도망쳐버린 것일까.


그렇게 판단한 마수는, 그 바보같은 선택에 비웃음을 날렸다.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면, 불리해지는 것은 자기 쪽일텐데.



마법소녀――녀석들이 신앙하는 신들은, 결코 패주를 허락하지 않는다. 비참하게 꼴사납게 도망다니는 것밖에 못하는 인간따윈, 일찌감치 버려지는 것이 고작이다. 실제로, 과거에도 목숨이 아까워 도망다니던 마법소녀가, 신에게 버림받아 신력 부족으로 죽어간 사례도 많이 있다.



어차피, 마법소녀같은건 신에게 있어서 심심풀이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 무사의 먹이로 죽어버려도 별 상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재미다. 마법소녀가 신에게 버림받고 힘을 다 쓸때까지, 이 주변을 파괴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렇게 마수가 마법소녀――츠구미의 탐색에서 한순간 신경을 끈 순간, 그것은 나타났다.



"――잡았다."



마수의 배후에서, 느닷없이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



초조해진 마수가 뒤돌아보려는 순간, 소녀의 팔이 마수의 목에 감긴다. 이른바 헤드록 같은 상태다. 껴안듯 다가온 얼굴에, 살짝 감미로운 피냄새가 풍겼다.



――기색은 느끼지 못했다. 아무리 전이로 이곳까지 온다고 해도, 전이 직전에는 반드시 공기의 흔들림이 생긴다. 그 위화감을, 마수가 눈치채지는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법소녀는 이미 여기에 있다. 그 모순에, 마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 늦어지고 말았다.



꽈악, 하고 목에 걸린 팔에 힘이 실린다.



"잘 가. ――가능하다면 두 번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기도할게."



힘을 가하는 팔이, 히츠기의 모습을 한 마수의 가느다란 목을 조른다. 마수는 변신한 것과 같은 신체구조를 흉내내기 때문에, 인간과 마찬가지로 호흡과 목의 피의 흐름이 멈추면,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대로 팔의 힘은 점점 강해져갔고, 마침내 마수의 목에서 마른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몸은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 그렇게 판단한 마수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뒤에 있는 마법소녀에게 공격을 가하려 했지만, 이미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일찍이 여기서 피난한 것 같다. 정말 솜씨가 뛰어나다.



어떠한 능력으로 마수가 눈치채지 못하게 등 뒤에 다다라, 목을 부러뜨리는 것으로 튀어나오는 피를 뒤집어쓰지 않고 마수를 확실하게 죽인다.  ――마치 마수의 피의 위협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아니, 이제 와서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패배는 패배다. 게다가 힘도 거의 다 써버려서, 더 이상 변신할 수도 없다.



축 늘어진 마수가 숨을 거두려는 그 순간, 마수의 머릿속에 마법소녀――츠구미의 닫힌 기억이 흘러들어갔다.



――붉은 불꽃이 둘러싸고 있는 제단의 중심에 서 있는, 한 여인. 무너져 내리는 천장. 어린아이의 울부짖는 소리. 피투성이가 된, 소중한 누군가의 모습.


그리고 본인이 기억을 잃었음에도, 마음속 깊이 숨어있는 무서운 적. 그 통렬한 이미지에 이끌리듯이, 마수의 몸이 변질되어 간다.



질척질척 몸이 녹고, 천천히 새로운 형태가 만들어져 간다.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자, 한 번 더 나아가라》



그런 목소리가, 마수의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마수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상자들이 땅으로 떨어져 간다. ――그리고 한 소녀를 본뜬 검은 그림자는, 천천히 그 자리에 일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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