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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번역/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4장 99. 말의 칼

by 린멜 2020. 3. 14.


99. 말의 칼







"저기, 츠구미. 혹시 괜찮으면, 같이 쇼핑하러 가지 않을래?"



드물게 휴일이 겹친 날 아침, 츠구미는 치도리에게 그렇게 권유받아, 두 사람은 번화가까지 놀러 나왔다. 항상 함께 있어서 의식하고 있진 않지만, 이렇게 둘이서 함께 외출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2월의 놀이공원 사건 이후, 치도리는 정부를 돕느라 바빴고, 츠구미는 십화의 대응에 쫓기고 있었다. 게다가 치도리는 정부의 일에 더해, 시뮬레이터에서의 전투훈련, 검도부의 도움 등, 날마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기에, 더욱 외출할 시간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츠구미로서는, 조금 더 일량을 줄여 쉬었으면 하지만, 본인이 즐거운 것 같았기에 아무런 말도 못한 채로 있다.


……뭐 바쁘다고 하는 면에서는 츠구미――하가쿠레 사쿠라도 그렇게 차이는 없지만, 저쪽은 시간의 융통성이 있으므로, 아직 치도리보다는 낫다.



"다음은 어디 갈래? 아, 가끔은 영화같은것도 괜찮겠다."



츠구미의 상의의 옷자락을 고쳐주면서, 치도리는 즐거운 듯이 다음 예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치도리를 평온한 기분으로 바라보면서, 츠구미는 미소를 지었다.



"치도리가 가고 싶은 곳이면 좋아. ――그건 그렇고, 오늘은 왠일로 신 님은 같이 있지 않네. 평소 같았더라면 무조건 따라왔을텐데."


"시로 님은 같이 오고 싶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조금 볼일이 있는 것 같아서. ……불쌍할 정도로 애석해 하고 있었어."



선물정도는 사줘야 겠는걸, 하고 말을 하면서 치도리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시로는 상당히 침울해 했었던 것 같다. 정말로, 신답지 않은 신이다.



덧붙여서 벨 쪽은, 츠구미가 어디로 나간다 전해도 「그렇군」 한마디로 이야기가 끝나 버린다. 벨은 기본적으로, 츠구미 개인 용무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쓸데없이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횟수가 많아서인지, 정기적으로 상황보고를 하라고는 한다.


……결국, 그렇게 생각해보면 과보호의 정도는 그다지 변하지 않은걸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걸었기에, 잠깐 쉬려고 했던 츠구미들은, 도중에 먹음직스러운 젤라토를 사서, 그늘진 벤치에 앉아 최근에 방영중인 영화에 대해 대화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미스터리와 호러물이 인기인가 보네. 그로테스크 요소가 조금 많은것 같긴 하지만."


"피가 나오는건 좀…… 아직, 얼마 전에 쓰러뜨린 큰 쥐가 잊혀지질 않아서……"



치도리는 그렇게 말하고, 기분나쁜 듯이 살며시 입을 눌렀다.



"아아, 예의 E급 마수인가. ……너무 무리해서 싸울 필요는 없지 않아? 딱희 의무는 아니잖아?"


"하지만, 이대로라면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까. 실전을 몇 번 치러야 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는 것 같으니까, 그 때까지는 열심히 하고싶어."



그렇게 말하며 난처한 듯 웃는 치도리를 보며, 츠구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치도리는 얼마 전, 마법소녀로서 첫 실전에 나갔다. 그건 몸을 지키는 힘을 기르고 싶다는 본인의 희망과 전이 능력을 강화했으면 좋겠다는 정부 측의 뜻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츠구미로서는, 단호히 반대하고 싶었지만, 치도리의 진지한 간청에 꺾일 수 밖에 없었다. 다만, E급 이상과는 싸우지 않기로 약속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치도리는 일단 몇 번이나 시뮬레이터로 전투훈련을 거듭했고, 이 정도면 E급 상대로 여유로울 것이라고 보증을 받은 뒤 출동했는데, 역시 실전은 여러가지로 버거웠던 모양이다. 치도리가 싸우는 영상을 치도리도 나중에 봤지만, 마지막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했을 정도였다.



"그럼 이제 남은건 연애물과 코미디인가."



츠구미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치도리는 수줍은 듯 볼을 붉히며,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만약 츠구미가 싫지만 않다면 그 연애물로 괜찮을까? 실은 전부터 조금이지만 신경쓰고 있었어."


"그렇다면 그걸로 할까. 시간은 가장 빠른 3시부터니까, 그때까지 시간을 보내야겠는걸. ――난 잘 모르겠는데, 무슨 이야기야?"



츠구미가 그렇게 묻자, 치도리는 약간 당황한 듯 시선을 헤메다, 난처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 사전 정보가 없는 편이 재미있을거라 생각하니까, 직접 보고 즐기는게 좋지 않을까? 분명, 그 편이 좋을꺼야."


"그런가? 뭐, 치도리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뭔가 석연찮은걸 느꼈지만, 치도리의 말이기에 츠구미는 납득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시덥잖은 대화를 하고 있는데, 앞에서 잘 알고 있는 인물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라, 츠구미 짱이랑 치도리 짱이잖아. 우연이네."


"유키타카. 별일인걸, 오늘은 혼자야?"



불쑥 소탈한 모습으로 츠구미들에게 다가온 유키타카는, 실쭉하고 경박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무한걸. 나도 항상 여자애들하고 같이 있는게 아니라고."


"아니,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는걸……"


"뭐, 오늘은 볼일이 좀 있었을 뿐이야. 볼일은 다 끝났으니, 오늘은 그만 돌아가려고 했던 참이지. 도중에 싫은 것도 봤고 말야."



유키타카는 그렇게 말하고는,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했다.



"뭐야, 반 친구들이라도 만났어?"


"그게 차라리 낫지. 반대측 길에서, 예의 전입생을 봐 버려서 말야. 쉬는 날에는 봐 달라고."



유키타카가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말하자, 잠자모 있던 치도리가 입을 열었다.



"그, 전입생은 메부키 선배가 말했던 외국에서 온 애 말하는거지? 누군가와 같이 놀러 온걸까."


"글쎄? 딱 보기에는 혼자였던 것 같은데. 아, 하지만 뭔가 질나쁜 녀석이 끈질기게 말을 거는것 같더라. 뭐 그녀석 뻔뻔스러운 것 같으니, 그 정도는 어떻게든 하지 않았을까? 뭐, 나랑은 관계 없지만."



시원스레 고하는 말에, 자리의 공기가 얼어붙는다. ……가볍게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유키타카의 말대로라면 아자레아는 상당히 곤란한 상황인 것이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일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자레아가 혼자서 행동한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바쁜 메부키는 어쨌든, 같이 다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부자연스럽다. 놓쳐서 미아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만, 지금 그것을 생각해도 별 수 없을 것이다.



――메부키 선배가, 부탁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츠구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몰랐던 채라면 신경쓰지 않았겠지만, 알아버린 이상 움직일 수 밖에 없다. 귀찮은 것임은 알고 있지만, 이대로 못 본 척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안, 치도리. 나 잠깐 갔다올게. 아무 일 없으면 금방 돌아올테니까."


"응, 나도 그게 좋다고 생각해. ――하지만, 조심해. 요즘은 정말 뒤숭숭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으니까."



약간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치도리는 츠구미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츠구미는 벤치에서 일어섰다.



"어라, 정말 가는거야? 츠구미 짱은 사람이 좋은걸."


"거기선 적어도 상냥하다고 말해줘. ……치도리에게 이상한 짓 하지 마."


"네 네, 빨리 가라고. 시간은 유한하니까 말야."



그렇게 말하고 유키타카는 츠구미의 등을 두 손으로 밀더니, 상냥하게 손을 흔들어 츠구미를 보냈다.


――이 자리에 유키타카와 치도리 두 사람만 남겨두는 것이 조금 불안했지만, 치도리라면 분명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츠구미는, 뒤돌아보지 않고 반대편 길로 걸음을 옮겼다.





◆◆◆





달려가는 츠구미의 등을 바라보며, 치도리는 안타까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츠구미의 성격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알지만, 그래도 불만스런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모처럼의 외출인 것이다. 아쉬워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치도리는 바로 옆에 서 있는 아마리를 올려다보았다.



……츠구미에게는 말한 적이 없지만, 치도리는 아마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타인을 좋을대로 상처주는 경박한 성격과, 츠구미를 휘두르는 오만함. 그리고 무엇보다, 츠구미가 없는 곳에서 우연히 보이는, 그 눈. 치도리를 몹시 불쌍히 여기는 듯 한, 그런 싫은 눈. 치도리는, 아마리의 그 이해할 수 없는 태도가 참을 수 없이 불쾌했다.



"미안 치도리 짱. 왠지 방해를 해 버린 것 같네."


"……으응. 신경쓰지마."



전입생――아자레아를 도우러 가기로 정한 것은, 츠구미 자신이다. 아무리 그 원인을 만든게 아마리라고는 하지만, 그를 책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단, 귀찮은 일을 가져온 것만은 용서하기 어렵지만.



"그러고보니, 두 사람은 이 뒤에 어디 갈 예정이었어? 시간은 괜찮은거야?"


"영화를 보러 갈 예정이었어. 상영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


"헤에, 무슨 영화?"


"그, 최근에 개봉한 로맨스 영화인데…… 꽤나 평이 좋길래, 보고싶어서."



치도리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또 있다. ――츠구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보자고 말했던 영화는 남매의 사랑을 테마로 한 것이었다. 최종적으로 두 사람의 피가 다르다는 것이 발각되는데, 그런 영화를 보고 츠구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조금이지만 흥미가 있었던 것이다.



……딱히, 치도리는 츠구미와 그런 관계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가족으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분명 그것이 제일일 것이다. 하지만, 치도리는 불안해서 견딜 수 없던 것이다. 그 조바심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츠구미를 시험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게 만든다.



――가끔, 끔찍한 꿈을 꾸기도 한다. 츠구미의 친누나――사쿠라 언니가, 치도리의 앞에서 츠구미를 데려간다. 그런 무서운 꿈을.



치도리가 그렇게 대답하자, 아마리는 난처한 얼굴을 하고 치도리를 바라보았다. 그 어이없는 듯한 시선에, 치도리는 조금 멈칫했다. 마치, 뭔가를 책망받는 듯 했다.



"……아아, 그 남매의 이야기말이지. 으음, 그만두는게 좋을 것 같은데."


"왜?"


"――왜냐니, 일부러 상처입으러 갈 필요는 없잖아?"



당연한 말을 전하듯, 아마리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에, 아마리 군,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아무리 네가 츠구미 짱을 좋아한다 해도, 그녀석은 절대 같은 말을 돌려주지 않을거야. 그건, 누나인 네가 가장 잘 알 거라 생각하는데."



그 핵심을 찌르는 말에, 흡, 하고 숨이 막힌다. ――어떻게, 그가 그것을 알고 있는거지. 아무에게도――그야말로 신 정도에게밖에, 치도리의 진심을 말한 적이 없는데.


갑작스런 말에 치도리의 얼굴이 굳어지자, 아마리는 불쌍한 것을 보듯이 치도리를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츠구미 짱은 치도리 짱을 매우 좋아하고, 세상 누구보다도 소중히 생각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네가 츠구미 짱의 가족이기 때문이야. ――하지만 말야, 그 가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버리면, 네게 대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건데? 츠구미 짱은, 지금처럼 널 사랑해 줄 거라고 생각해?"


"무슨, 그런……"



마치 치도리의 마음속을 꿰뚫어보듯, 아마리는 말의 칼을 날린다.


――왜, 어째서 당신이 내 불안(악몽)을 알고 있는거야? 그런 사소한 의문은, 계속 꽂히는 말로 지워져 간다.



"네 소원은, 언젠가 츠구미 짱을 죽일거야. ……아―아. 너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런 잔혹한 일을 할 수 있는거구나. 정말 불쌍해."


"모르겠어…… 아마리 군은 내게 뭘 전하고 싶은거야? 뭘 알고 있는거야?"



움찔움찔, 알 수 없는 공포로 몸이 떨린다. 눈앞에 있는 아마리는 온화하게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뼛속까지 서늘함을 느꼈다. 마치――강대한 악마를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긁어 부스럼 하는 것은 득책이 아니라는 거지. 치도리 짱은, 츠구미 짱은 언제나 츠구미 짱인 채 있어줬으면 하잖아?"



재촉하듯 그렇게 묻자, 치도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마리는 훗 하고 예쁜 미소를 지으며, 슬며시 왼손을 치도리의 눈 앞에 내밀었다.



"아아, 미안. 감시자가 없어서, 말이 너무 많아졌어. ――이 일은 잊어도 좋아. 지금은, 때가 아니니까."



눈앞에서 빛을 뺴앗기듯, 점점 치도리의 의식이 멀어져 간다. 그리고 이윽고 눈꺼풀의 무게를 견딜 수 없게 되었고, 마침내 치도리의 의식이 어둠에 잠겼다.




――팡, 하고 귓가에 작은 소리가 나자, 치도리는 핫 하고 눈을 번쩍 떴다.



"어, 어라? ――츠구미는 어디 갔지?"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며, 치도리는 불안한 듯 그렇게 말했다.


――같이 있었을 치도리가, 어느새 사리지고 없다. 아까까지, 둘이서 벤치에 앉아있었을 텐데.



갑작스런 일에 혼란스러워하는 치도리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싫다, 치도리 짱이라면 아까 전입생의 상태를 보러 갔잖아. 벌써 잊은거야?"



조금 전 만난 직후의 아마리가, 걱정스러운 듯이 치도리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옅은 주황색 눈동자가, 치도리의 눈을 응시한다. 그러자 ,서서히 의식이 뚜렿새진다.



"에, 아, 그랬었지. 나 왜 잊어버린걸까…… 미안해, 아마리 군."


"오늘은 조금 더우니까, 햇볕에 당한걸지도 모르지. 수분은 확실히 섭취하는 편이 좋아."


"……그럴지도 모르겠네. 조심할게."


"응 응. 그럼 난 이만 가볼테니까. ――츠구미 짱에게 안부 전해줘."



아마리는 그렇게 고하고, 홱 하고 치도리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버렸다. 아무래도,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치도리는 이상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띄엄띄엄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이상해. 이상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래,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걸까.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이, 가슴 속에 남아있다. 마치, 무언가 아주 슬픈 일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치도리가 문뜩 발밑을 바라보니, 한 개의 작고 검은 깃털이 떨어져 있는 것을 눈치챘다. 푹신한 그 사랑스러움에 이끌려, 치도리는 깃털을 잡았다.



――나중에 츠구미에게도 보여줄까. 그렇게 멍하니 생각을 하면서, 치도리는 그 깃털을 수첩에 끼우고, 소중한 듯이 백 속에 넣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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